주간동아 719

2010.01.12

테러범 공격 패턴은 만국공통

강력한 힘과 마주했을 때 테러 감행 … 수학적으로 보면 ‘멱급수 법칙’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입력2010-01-06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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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저물어가던 2009년 12월28일(현지 시각) 파키스탄 수도 카라치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강력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슬람 시아파 최대의 종교 축제인 ‘아슈라’가 벌어지던 사원에서 발생한 이 테러로 43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과학자들은 이번 공격이 최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테러 공격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예측불허 상황을 겨냥해 벌인 기습공격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최근 미국, 영국, 콜롬비아 과학자들이 수학적 분석방법으로 테러 공격의 시점과 강도를 알아낼 수 있는 분석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교통체증이 벌어지듯 똑같은 방식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2009년 12월17일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콜롬비아, 페루 등 주요 분쟁지역에서 벌어진 저항세력의 공격 유형을 분석한 논문을 표지 기사로 소개했다. ‘일반 생태학이 정략적으로 분석한 인간의 저항’이라는 이 보고서는 미국 마이애미대, 콜롬비아 안데스대, 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물리연구소와 런던대 과학자들이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벌어진 각종 테러 공격의 규모와 시간을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팀은 2001년 평화협정을 맺을 때까지 영국과 오랜 갈등을 빚어온 북아일랜드공화군을 비롯해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이스라엘, 페루, 세네갈, 시에라리온, 그리고 현재도 내전 상태인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이 벌인 5만4679건의 크고 작은 사건을 자료로 활용했다. 여기에는 콜롬비아 보고타 거리에서 일어난 암살사건부터 2005년 폭탄테러 소문을 듣고 혼란에 빠진 군중 1000명이 압사한 사건까지 포함됐다. 즉, 1969년부터 2008년까지 벌어진 거의 모든 사건을 망라했다.



    분석 결과는 흥미롭다. 연구팀은 실제로 역사적 배경, 종족 및 지역적 차이가 있음에도 저항세력의 공격은 거의 동일한 패턴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역은 물론, 정치성향과 사건 발단 등이 모두 다르지만 폭력 양상이나 방식에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탈레반이나 이라크 반군이 비슷한 방식으로 테러 공격을 감행한다는 것. 마치 일본 도쿄, 영국 런던, 미국 마이애미에서 교통체증이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나듯, 세계 어디에서나 저항세력의 공격 유형은 똑같다는 것이다.

    실제 대다수 테러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일어나거나 특정 기간에 집중해서 일어났다. 과학자들은 대다수 테러가 특정 지도자나 뚜렷한 지휘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별적 결정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정교한 지휘계통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저항그룹들이 서로 의사소통 없이 행동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는 저항세력의 공격이 대부분 엄격한 성직자나 위계질서, 오밀조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내려질 것이라는 종전의 통념과 배치되는 결과다.

    테러의 강도와 시간 사이에도 일련의 법칙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테러의 강도와 시간의 관계를 알아내고자 통계물리학적 방법을 이용해 방대한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례들을 수학적으로 볼 때 ‘멱급수 법칙(power law)’ 분포를 보였다. 즉 테러 빈도에 반비례해 사망자가 10명, 100명, 1000명 단위로 급격히 늘어난 것.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테러가 일어날 빈도는 낮지만, 사망자가 적은 테러는 오히려 자주 일어난다는 뜻이다.

    멱급수 분포는 자연과 사회현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간의 관련성을 표현하는 모델이다. 그래서 멱급수 분포는 물리학뿐 아니라 지질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찰된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의 확대를 예고한 ‘황의 법칙’과 지진에서의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진의 주기를 알면 앞으로 일어날 지진의 규모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멱급수 법칙 덕분이다.

    저항세력의 테러 공격은 왜 공통점을 띠고 있을까. 9개 나라 사람들이 똑같은 폭력성향과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이나 동기, 사상, 정치, 지역 등에 상관없이 강력한 힘과 마주했을 때 저항이나 테러를 감행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저항세력의 공격 패턴이 시장에서도 관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행동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과 테러 감행 결정이 유사한 메커니즘을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뉴스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은 조화롭게 판단하기보다 뉴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저항세력 역시 테러 관련 뉴스를 보고 행동할지 말지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매스미디어에서 보도하는 피해 규모를 듣고 또 다른 그룹이 다음번 공격의 시기나 규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약 1만개의 가상테러 상황을 분석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저항세력 활동 분석하면 신약 개발도 가능

    이번 연구를 이끈 마이애미대 닐 존슨 교수는 “이 모델이 국제사회에서 저항세력의 활동 패턴을 보여주는 모델로 사용될 수 있다”면서 “실용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벌어질 테러공격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툴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 연구팀은 앞으로 유엔평화유지군 같은 제3의 인구를 분석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분쟁 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해 파견된 평화유지군은 해마다 수십 명씩 작전 중에 목숨을 잃는다. 과학자들은 평화유지군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지면 활동 과정에서 생기는 사상자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연구결과는 의학 연구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를 저항세력으로, 정규군을 면역체계로, 차단약물을 평화유지군으로 놓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면 신약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암세포의 전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상 세포와 돌연변이 세포의 반응도 저항세력과 이를 차단하려는 힘의 작은 전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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