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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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보은? 4대江 지원?

MB ‘운하맨’들 속속 컴백 … 4대강 첫 삽 뜨면 강한 입김 예상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12-29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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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대통령선거(이하 대선)와 2008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시기까지 ‘대통령의 남자들’로 불리며 이명박(MB) 정권으로부터 ‘보증수표’를 받은 듯한 이들이 있었다. MB의 대통령 후보 시절 가장 큰 공약이던 ‘한반도대운하’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거나 홍보에 나선 사람들로, 운하 반대세력에겐 ‘대운하 전도사’로 불리는 이재오 류우익 곽승준 박승환 장석효 이지송 윤건영 윤진식 김영우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국회에 진출해 MB계 초선의원 그룹을 형성했지만, 나머지는 운하 반대여론에 밀려 풍파와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운하 반대여론 땐 줄줄이 쓴맛

    뒤늦은 보은? 4대江 지원?

    대선을 앞둔 2007년 8월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 함께한 이명박 후보. 훗날 정권 실세가 된 ‘운하맨’들이 연단에 모두 모였다.

    대선 때 자전거를 타고 4대강 전 구간을 다니며 운하 홍보에 열을 올리던 이재오 전 의원(인수위 한반도대운하태스크포스 상임고문 출신)은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운하 극렬 반대론자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12년 텃밭인 서울 은평을을 내준 뒤 미국으로 떠났다. 대선 당시 운하정책의 메카 격인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을 맡았던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와 운하 반대여론의 책임을 지고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 서울대 교수로 돌아갔다.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도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선 때 GSI 정책기획실장을 맡았던 곽 전 수석과 함께 운하에 대한 경제적 이론을 제공했던 윤건영 전 의원은 2008년 선거에서 낙선의 쓴맛을 봐야 했다.

    ‘충주를 대운하의 중심으로 만들자’며 선거에 나섰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대선 당시 한반도대운하추진위원장으로 운하정책에 깊숙이 몸담았던 박승환 전 의원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청계천 복구공사 실무를 맡아 ‘리틀 이명박’으로 불리던 장석효(인수위 한반도대운하태스크포스 팀장 출신) 전 서울시 부시장은 거센 반대여론 속에서도 한반도대운하연구회를 민간조직으로 운영했지만, 끝내 정권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운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토목·환경 관련 교수 집단도 마찬가지 신세. 이들의 이름은 2008년 8월 이 대통령이 핵심 대선공약이던 한반도대운하 건설계획을 최종적으로 접으면서 완전히 잊히는 듯했다. 대부분 교수나 야인으로 지내면서 ‘운하’라는 말을 일절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언론 노출도 삼갔다.

    야인서 MB 정부 실세로 등장



    하지만 2008년 9월 한반도대운하 사업이 전면 폐기되고 녹색성장의 핵심 키워드인 4대강 살리기 사업계획이 태동하면서 이들은 속속 정권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2009년 1월 곽 전 수석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부활했고, 윤 전 장관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됐다. 이 전 의원은 9월 3개 대통령직속 위원회가 합쳐 만들어진 국민권익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에 올랐다. 류 전 실장은 11월 중국 대사에 임명됐다.

    이 전 의원이 돌아오기 직전인 2009년 8월 또 한 번의 파격 인사가 있었다. 이 대통령의 현대건설 회장 시절 같은 회사 토목본부장이던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이 한국토지공사와 한국주택공사가 합쳐 만들어진 초거대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초대 사장에 임명된 것. 이 사장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장 부시장과 손잡고 청계천 사업을 완성한 바 있다. 당초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장관 출신이나 토목학회 인사가 사장이 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지만 청와대는 ‘가신 인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정면 돌파를 택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반도대운하에서 말만 바꾼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던 지난 11월 환경부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국환경자원공사와 환경관리공단의 통합으로 2010년 1월 출범을 앞둔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으로 박승환 전 의원이 내정된 것이다. 박 전 의원이 대선 당시 한반도대운하 추진위원장을 하면서 ‘환경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한 게 큰 이유가 됐다는 후문. 한국환경공단은 기후변화 대응 및 온실가스 관리 업무를 맡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관된 물환경 개선사업도 수행한다.

    운하와 관련성 적지 않은 자리

    뒤늦은 보은? 4대江 지원?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대운하 자전거 탐방에 나섰다.

    사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된 환경·수질 분야로 ‘운하맨’들이 진출한 것은 2008년 8월부터다. 한반도대운하 자문교수로 참여한 부산대 박태주 교수가 환경정책 수립과 분석을 담당하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에, 역시 자문교수로 일한 인하대 김계현 교수와 홍익대 송재우 교수도 한국수자원공사 이사에 선임됐다. 한반도대운하의 물동량 계산 등을 맡았던 홍익대 황기연 교수는 한국교통연구원장에 올랐다.

    비중 있는 ‘운하맨’ 중 아직 정권의 부름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장석효 전 서울시 부시장뿐이다. 장 전 부시장은 “쓸모없으니 부르지 않는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면서도 “그러고 보니 같이 일한 사람 중 남은 게 정말 나뿐이네…”라며 씁쓸해했다. 시민단체에선 장 전 부시장이 정권과 건설사를 잇는 연락처 노릇을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그는 “일감이 없어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인데 무슨 그런 억측을 하느냐”고 반박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의 변형이라거나 운하를 만들기 위한 기반조성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청와대가 ‘운하맨’들을 대거 요직에 앉힌 배경은 뭘까. 한나라당 MB계 의원들은 이에 대해 “대선 당시 많은 일을 같이 했고, 실제로 능력이 검증된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MB계 한 초선의원은 “정권 출범 이후 극심한 운하 반대여론에 떠밀려 신경을 못 쓴 사람들에 대한 인사가 뒤늦게 이뤄진 것으로 보면 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인사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뒤늦은 보은? 4대江 지원?

    박승환, 윤진식, 황기연, 이지송(아래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계 의원과 야당, 시민단체에선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운하로 변질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며 의문을 품고 있다. 사실 핵심 ‘운하맨’들이 복귀한 곳은 한반도운하와의 관련성이 적지 않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추진한 실질적 주체였고, 한국교통연구원은 운하의 물류가치를 검증하는 기능을 하던 곳이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인 한국토지공사는 운하 주변 지역의 토지보상과 개발을 담당한 바 있다. 4대강 살리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한 한나라당 의원은 “4대강 살리기 논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왜 하필이면 운하와 관련된 곳에 자기 사람을 심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는 ‘운하맨’ 복귀 인사와 관련해 4대강 살리기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주장이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4대강 살리기의 핵심 키워드는 홍수예방과 수질개선, 취수원 확보. 따라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본격 추진을 앞두고 홍수예방 차원의 보 설치와 준설 등을 위해 토목공사 담당기관, 주변 지역 개발 담당기관, 수질개선 업무 담당기관에 ‘전문성 있고 검증된’ 이들을 미리 포진시켰다는 것이다.

    과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예정대로 2010년 첫 삽을 뜰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4대강 사업이 시작만 된다면 돌아온 역전의 ‘운하맨’들이 커튼 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점이다. 4대강 살리기 예산안 난국이 수습되더라도 ‘운하맨’의 권토중래를 둘러싼 논쟁은 이래저래 계속될 전망이다.

    홍수예방, 수질개선 vs 대운하 기반 조성
    끝없는 논쟁 속 예산안 타결 난항 계속될 듯
    2010년 새해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격돌이 점입가경이다. 민주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반도 운하의 부활”이라며 관련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에선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 “양보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협상론이 제기되면서 한 가닥 희망이 보이고 있다. 12월23일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 의장이 “야당이 4대강 사업을 인정한다면 예산을 양보할 용의가 있다. 수자원공사 이자 지원분 800억원과 국토해양부 예산 3조5000억원에 대한 삭감 협상 여지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꽉 막힌 예산 정국에 돌파구를 뚫어보려고 했다.
    민주당 내 일부 중진의원 사이에서도 “운하로 의심되는 부분의 예산만 확 줄이고 4대강 살리기 예산은 인정해주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미 한 차례 회동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 바 있다. 민주당이 운하로 의심하는 예산은 하도 준설과 보 설치 예산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준설을 많이 하고 보를 많이 만들면 화물선 등 큰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이후 거기에다 갑문(도크)만 설치하면 운하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 그래서 일부 중진의원들은 “4대강을 도저히 운하로 사용할 수 없도록 준설량 및 보의 숫자와 높이를 줄여 예산을 감액 편성하면 되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문제는 민주당이 삭감을 요구하는 ‘운하로 의심되는 예산’이 한나라당으로선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 예산안 감액에 동조하는 한나라당 소장파 중진의원들도 “준설과 보 설치 관련 예산은 절대 줄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 키워드는 홍수예방과 수질개선, 취수원 확보인데, 이를 위해선 강물의 유속을 줄여 수량을 풍부하게 해야 하므로 현재의 준설량 및 보의 숫자와 높이를 줄여선 안 된다는 것. 한나라당 정책위가 전체 예산 중 디자인이나 수변 지역 조성, 조명 설치 사업비 등 준설 및 보 설치와 무관한 예산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자고 제안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즉, 예산안 타결의 핵심 키는 4대강 살리기 예산의 삭감액이 아니라 준설량 및 보의 숫자와 높이를 얼마나 줄이느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랑이는 4대강 살리기 계획이 나오면서부터 제기된 해묵은 논쟁거리다. 토목분야에서 30년 이상 일한 장석효 전 서울시 부시장은 “지금 책정된 보의 숫자와 높이, 준설량은 홍수를 막고 물을 확보할 최소한의 수치다. 이걸 조금만 더 줄여도 4대강 살리기 사업 자체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주당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운하의 전단계로 보는 시각을 거두지 않는 한 예산 정국뿐 아니라 사업 자체도 파행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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