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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판’ 바뀐 자동차시장 현대車 질주 계속될까?

글로벌 업체들 M&A·전략적 제휴 살아남기 몸부림 신흥시장 공략 전쟁 가열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판’ 바뀐 자동차시장 현대車 질주 계속될까?

‘판’ 바뀐 자동차시장 현대車 질주 계속될까?

르노가 2011년부터 양산할 뉴SM3형 전기차 ‘조이 Z.E’(왼쪽)와 다임러벤츠 로고.

세계 자동차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다. 지난 12월9일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이 2225억 엔(25억 달러)을 투자해 일본 스즈키 지분 19.9%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됐다. 스즈키는 그 매각대금의 절반으로 폭스바겐 주식을 매입했다. 자동차업체 세계 3위 폭스바겐과 세계 9위 스즈키가 합병 수준의 강력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이다.

지난 7월 말 포르셰를 전격 인수한 폭스바겐은 이로써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연간 생산규모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특히 이번 제휴는 최고 수준의 저(低)연비차량 기술을 보유한 폭스바겐과 소형차 분야의 강자인 스즈키 간 전략적 제휴라는 점에서 세계 자동차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극심한 판매부진과 경영악화에 허덕

이탈리아 피아트는 지난 6월 미국 크라이슬러 지분 20%를 인수했다. 파산보호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한 크라이슬러에 고연비 경·소형차 엔진과 플랫폼을 이전하는 대가다. 피아트는 그 대신 북미시장 진출이 쉬워졌으며, SUV와 픽업 등 대형차 라인을 확보하는 효과도 얻었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두 회사는 플랫폼 공유를 통해 비용절감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전통의 라이벌인 독일 BMW와 다임러벤츠도 손을 잡고 비핵심 부품 공용화와 플랫폼 공유, 상호 지분스왑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다임러벤츠는 또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위해 도요타와, 스마트 4인승 신형모델 개발을 위해 르노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프랑스 푸조 시트로앵(PSA)은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전기자동차를 공급받아 푸조와 시트로앵 브랜드로 판매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자동차업체 간에 이처럼 폭발적인 인수합병(M·A)과 전략적 제휴가 이뤄진 원인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동차 시장구조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가톨릭대 경영학부 김기찬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자동차 시장구조가 선진국 중심에서 중국과 인도 등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중심으로 바뀌었다”면서 “미국 유럽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내년에도 미국 시장이 과거만큼 회복되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높은 생산단가에도 극소수의 최상류층을 겨냥해 고품질을 유지해온 ‘하이엔드 마케팅(high-end marketing)’ 전략을 포기하고 비용과 품질을 낮추려는 현상이 그중 하나다. 이를 위해 미국 유럽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전략적 제휴를 시도하고 있는데, 자체적으로 비용과 품질을 낮추기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기보다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현상은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기술에서 유럽 업체와 일본 업체가 서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극심한 판매부진과 경영실적 악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동차업계의 ‘생존전략’이나 다름없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원 정준화 주임연구원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동차산업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올해 9월까지 1년간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판매대수가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특히 주요 11개 업체의 전체 판매대수는 3534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의 판매대수 4420만대보다 19.8% 급감했다.

판매율 하락이 가장 큰 업체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 크라이슬러와 GM. 크라이슬러는 40%, GM은 28.6%의 판매율 하락을 기록하면서 결국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계 ‘빅3’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포드의 판매율도 18.1% 하락했다.

그동안 고연비 경·소형차를 무기로 승승장구하던 도요타(-24.4%), 혼다(-20.2%), 닛산(-20.8%), 스즈키(-17.2%) 등 일본 업체들의 판매율도 곤두박질쳤다.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시장 브릭스(BRICs)에 대한 공략을 강화해 그나마 선전하던 유럽 업체들도 대부분 마이너스 두 자릿수 판매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자릿수 마이너스를 기록한 업체는 -5.2%의 폭스바겐이 유일했다.

판매량 급감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포드는 수년 전부터 적자를 보이던 북미사업부의 적자폭이 확대된 데다 지난해까지 흑자를 유지하던 유럽사업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서 적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판매 비중이 큰 북미 수요가 급감하고 엔화 강세로 수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는 등 이중으로 타격을 받아 결국 적자를 기록했다. 르노와 푸조 시트로앵 등 프랑스 자동차업체들도 유럽 수요가 크게 줄면서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됐다. 흑자를 본 업체는 폭스바겐, 피아트, 스즈키 3사 정도에 불과했다.

‘판’ 바뀐 자동차시장 현대車 질주 계속될까?

폭스바겐(아래)과 포르셰 로고. 지난 7월 폭스바겐은 포르셰를 전격 인수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몸살

결국 세계 자동차업계는 최근 1년 사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 GM은 북미 공장 17개를 폐쇄하고 생산직 종사자 2만3000명을 감원했으며, 크라이슬러는 북미공장 7개를 폐쇄하고 생산직 종사자 7000명을 줄였다. 파산 이후 이처럼 강도 높은 구조조정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했다. 포드는 올해 상반기 생산량을 42%나 감축하면서 인력을 1만4000명 줄였다.

일본의 도요타, 혼다, 닛산도 대규모 생산량 감축과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도요타는 올해 생산량 30%와 비정규직 종사자 6000명 및 해외 공장 정규직 1000명, 혼다는 1월 생산량 24%와 비정규직 종사자 4300명, 닛산은 1, 2월 생산량 60%와 정규직 4000명을 포함해 2만명을 이미 줄였거나 줄여나가고 있다.

유럽 자동차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푸조 시트로앵은 올 생산량을 20~30% 감축하는 한편, 1만~1만2000명 규모의 감원을 진행 중이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흑자를 본 폭스바겐도 스페인과 슬로바키아 공장 조업을 중단하고, 비정규직 종사자 8000명을 내보냈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위기를 맞았다. 쌍용자동차는 현재 파산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2000여 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계획안을 마련했지만, ‘회생’과 ‘청산’을 놓고 채권단 사이에 이견이 생겨 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겨놓은 상태다.

이러한 금융위기 상황에서 그나마 토종 국내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이하 현대·기아차)가 유일하게 선전했다. 올해 1/4분기 현대차는 1538억원의 영업이익과 22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각각 71%, 43% 줄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감안하면 선방한 셈. 기아차도 같은 기간 88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글로벌 경제 및 금융위기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든 후반기로 가면서 현대·기아차의 경영실적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3/4분기 영업이익이 9000억원에 달한 것. 1분기 2420억원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적자를 본 도요타(-3000억원)나 BMW(-1000억원)와 크게 대비된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선전한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먼저 미국과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시장점유율이 높았던 점을 꼽을 수 있다. 그 덕에 이들 국가들이 경기회복을 위해 내놓은 ‘신차 구입 지원정책’의 혜택을 고스란히 보게 됐다는 것.

특히 신흥시장 이외에도 유럽 주요 국가들의 신차 구입 지원정책 대상이 주로 소형차에 집중되면서 저가의 소형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던 현대·기아차의 판매율 상승에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노후차 교체지원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도 현대·기아차였다.

여기에 원화 약세로 달러(엔)당 환율이 올라가면서 판매 감소에 비해 매출액 감소폭이 크게 줄었다. 상대적으로 일본 업체들은 엔화 강세로 가격 경쟁력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2010년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세계 각국의 신차 구입 지원정책이 거의 종료됐다. 국내 노후차 교체지원 정책도 올해 12월 말까지다. 원화도 달러당 1300원대에서 최근 1100원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또 내년부터 신흥시장에서 미국 유럽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된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업체 간의 M·A와 전략적 제휴가 그 신호탄이다. GM은 이미 중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상하이GM, 상하이GM울링에 이어 제일기차와 경상용차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포드는 인도에 5억 달러를 투자해 첸나이공장 생산능력을 연간 20만대로 확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에는 현지 생산능력을 연간 60만대로 늘리기 위해 제3공장 신설도 검토 중이다.

‘판’ 바뀐 자동차시장 현대車 질주 계속될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조합원들이 지난해 사측과 임금단체협약 협상과정에서 부분 파업을 벌이며 투쟁결의 집회를 갖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종사자들의 의식변화가 시급하다.

‘방심은 금물’, 새로운 위기 대비를

르노는 인도 첸나이에 공장을 신설해 글로벌 소형차 생산거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며, 다임러벤츠는 독일 이탈리아 미국 일본에 이어

5번째로 중국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중국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피아트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광주기차와 공동으로 5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최대 14만대까지 생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바이오연료자동차 라인업 확충을 통해 브라질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 태국을 동남아는 물론 새로운 글로벌 수출거점으로 삼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요타는 미국 중국에 이어 3번째로 태국에 하이브리드자동차 생산라인을 신설해 지난 8월부터 생산에 돌입했다. 닛산은 아시아와 중동, 호주 등을 시장으로 삼을 최대 픽업 생산기지를 태국에 세울 계획이다. 닛산과 스즈키는 인도에도 대규모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이들 신흥시장에 내놓을 ‘무기’는 바로 고연비 친환경 경·소형차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들 업체 간의 M·A와 전략적 제휴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등 차세대 기술에서 앞서 있음은 물론, 연구개발(R·D) 투자규모가 현대·기아차보다 적게는 3배, 많게는 6배 이상 큰 업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R·D 규모는 2조1200억원 정도인 데 비해, 도요타는 무려 12조원에 가까운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주력해 600만대 생산시설을 갖췄다. 이제는 시장경쟁력을 갖춘 마케팅 업체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 경쟁업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현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과 함께 종사자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막대한 생산시설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외국 업체들보다 경영사정이 좀 나았다고 방심하다간 한순간에 결코 되돌리기 어려운 위기에 빠져들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주간동아 2009.12.29 717호 (p64~66)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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