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2

2009.06.30

준비하는 자만이 ‘해피엔딩’을 맞는다

  • 김현진 기자bright@donga.com

    입력2009-06-25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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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입시 논술시험을 준비하던 고등학생 시절, 저를 가장 괴롭히던 논술 주제는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동물실험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생존율이 희박한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비윤리적인가’.

    논술 작성에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저 처지라면, 또 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떨까 요리조리 생각하느라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일쑤. 양측의 처지를 고려해 절충안을 모색하고 정-반-합의 논리 구조를 내세울 수 있는 일반적인 사회 이슈와 달리, 삶과 죽음의 문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기에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삶의 반대는 곧 죽음이니까요. 인간 수명의 연장으로 노년기 삶의 질과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내려지면서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정점에 오른 느낌입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일본의 존엄사, 웰다잉 논의는 우리보다 10~20년 앞서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논의가 속도를 내게 된 계기로 1989년 췌장암으로 숨진 히로히토 천황을 꼽습니다. 그는 의료진, 가족에게서 병명과 병의 진행 정도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연명 장치에 의존하다 눈을 감았습니다. 허 교수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을 천황의 마지막 모습에 일본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계기가 될 만한 사건으로 허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꼽습니다. 생전 의지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착용하지 않고 마지막을 맞은 김 추기경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자만이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존엄사는 물론, 존엄사 법제화를 따지기 전 거쳤어야 할 ‘죽음에 대한 이해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하물며 유난히 죽음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내가 죽은 뒤, 또는 죽음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할 경우’를 전제로 한 사전의료지시서, 유서 쓰기 운동의 확산이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불행한 변을 맞게 됐는데 내 몸이 나의 뜻과 반대로 다뤄지고, 내가 가진 것들이 원치 않는 이들에게 나눠진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인간은 모두 죽는다’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인생이라는 논픽션극의 ‘해피엔딩’은 대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인 듯합니다. ‘마지막 선택’의 내용을 담는 사전의료지시서, 생전 유서(리빙윌) 준비가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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