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2

2009.06.30

‘盧風’에 접힌 정동영 복당의 꿈

‘盧정국’ 이후 친노그룹 신당 창당 움직임 … 鄭-丁 갈등까지 겹쳐 ‘컴백’ 첩첩산중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06-25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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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風’에 접힌 정동영 복당의 꿈

    6월11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무소속 정동영 의원(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6월16일 늦은 오후, 국회 정동영(무소속) 의원실에서 정 의원과 기자 몇 명이 마주앉았다. 정 의원이 모처럼 국회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자리가 마련된 것. 근황을 묻자 정 의원의 반응이 허허롭다.

    “무소속이라 오라는 데도 없고…. 뭐, 바쁠 게 있겠어요?”

    정 의원 측에 따르면 정 의원은 요즘 자신이 맡게 될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활동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지역구인 전북 전주를 찾는다. 4·29 재·보궐선거 때 도움을 준 지지자들에게 당선사례를 하고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 혁신도시 등 지역 현안을 살피기 위해서다.

    기자들과의 대화는 잔뜩 경색된 남북관계와 그날 밤에 열릴 한미정상회담 이야기로 이어졌다. 정 의원은 4년 전 통일부 장관 시절의 남북관계와 비교하면서 얼어붙은 현 상황에 대해 걱정을 쏟아냈다. 민주당 복당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로 자신의 복당 문제가 정치적 관심 대상에서 멀어졌으니 답답할 만했다. 정 의원의 답변에 그 속내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엄 기자, 좋은 방법 좀 있으면 알려주쇼.”



    민주당 안팎에선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의 가장 큰 피해자로 정 의원을 꼽는다. 일단 정 의원은 아직 공식적인 의정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본회의에서 의원선서를 해야 비로소 공식 의정활동이 가능한데 여야 대치로 6월 임시국회가 언제 열릴지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입지 축소 당혹스럽고 답답

    더욱이 그의 복당을 위한 정치적 수순에 급제동이 걸렸다. ‘노(盧) 정국’이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그룹의 화려한 부활을 가져온 반면, 정 의원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축소시킨 것. 여기에는 정 의원과 노 전 대통령 및 친노그룹 사이에 남아 있는 악감정이 작용한 측면이 크다.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장관을 역임했지만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둘러싸고 격한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치달았다.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해 “국민의 뜻은 열린우리당 사수가 아니라 범여권 통합”이라면서 열린우리당 해체에 이은 통합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열린우리당 경선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여전히 ‘통합노래’를 부르면서 떠날 명분을 마련해놓은 뒤 당을 나갈지, 말지를 저울질하는 사람”이라며 정 의원을 비난했다. 한발 더 나아가 “당내 경선 참여를 포기하겠다는데, 가망 없을 것 같아서 노력할 가치도 없다 싶으면 그냥 당을 나가면 될 일” “정말 당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 “정치는 잔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盧風’에 접힌 정동영 복당의 꿈

    5월29일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되는 동안 손학규 전 대표(맨 오른쪽)가 이해찬 전 총리(가운데)와 명복을 빌고 있다.

    이에 정 의원은 “2·14(열린우리당 전당대회의) 합의정신을 깨고 대선을 포기하려는 듯한 패배주의적 발언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은 현재 당적 이탈 상태다. 우리당의 틀을 고수한다는 것은 시대 요구와 맞지 않는다”고 반격했다. 결국 6월 정 의원이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해체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이 일로 틀어져버린 정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의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 의원은 4·29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서 또 한 번 당내 친노그룹과 각을 세웠다. 정 의원에 대한 친노 진영의 감정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봉하마을을 찾은 정 의원을 “뭐 하러 왔느냐”며 막아선 ‘노사모’ 회원들의 거센 항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 의원 측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측근은 “솔직히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 데다 서거 정국에 우리가 먼저 복당 문제를 꺼낼 수도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복당은 명분과 시기가 중요한데 지금은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변수가 생기기까지만 해도 복당 문제는 쉽게 풀리는 듯했다. 4·29 재보선 직후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서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이강래 의원이 당선됐기 때문. 이 원내대표는 당선 이후 최근까지도 정 의원과 자주 연락하면서 정치적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원내대표도 지금 상황에선 정 의원의 복당이나 정치적 복귀를 위한 마땅한 수(手)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이 원내대표의 기본적인 생각은 정 의원의 복당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민주당에 굴레로 작용해 곤란하게 만들 수 있기에 10월 재보선 이전이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이다라고 시점을 못 박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거 정국이 끝나고 지도부와 당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져야 정 의원의 복당도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민주당 안팎에는 손학규 전 대표를 정 의원 못지않은 서거 정국의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 전 대통령과 감정의 골이 깊었던 손 전 대표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계 복귀 일정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손학규 전 대표도 피해자?

    손 전 대표도 정 의원과 마찬가지로 2007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과 극한 감정싸움을 벌이면서 사이가 벌어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나온 손 전 대표를 ‘보따리장수’라고 일컬으며 비판했고, 이에 손 전 대표는 ‘무능한 바보’ ‘새로운 정치의 극복 대상’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자극했다.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등 당내 친노 인사들이 당을 떠난 것도 손 전 대표가 민주당 대표를 맡으면서다. 그만큼 손 전 대표에 대한 친노그룹의 반감이 심했던 것.

    하지만 손 전 대표는 4·29 재보선 때 정세균 대표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인천 부평을과 시흥시장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서면서 당내 친노그룹과는 어느 정도 관계 개선을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다. 손 전 대표의 봉하마을 문상도 당내 대표적 친노 인사인 백원우 의원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의 언론 접촉 창구인 송두영 민주당 부대변인은 “손 전 대표에게는 현재 정치 일정 자체가 없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차질을 빚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손 전 대표는 우리 사회가 과연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자신이 우리 사회에 정치인으로 기여할 것이 있는지 등의 큰 틀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 전 대표는 당 대표에서 물러난 지 10개월 남짓 강원도 모처에 칩거 중이다.

    최근 민주당 안팎에선 ‘MB악법 저지’와 ‘반MB투쟁’을 위한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등 친노그룹과 김근태 전 의원, 손학규 전 대표, 정동영 의원 등 과거 민주세력을 총망라해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빠르면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정 의원의 복당과 손 전 대표의 정계 복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친노그룹 내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해 별도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고, 당권과 호남 맹주의 자리를 놓고 ‘鄭(동영)-丁(세균) 갈등’이 예상되는 등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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