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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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없고 무능한 아버지의 권위 찾기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09-06-11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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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 없고 무능한 아버지의 권위 찾기

    주인공 조필성 역을 맡은 김윤석은 영화 ‘추격자’에서와는 전혀 다른, 촌스럽고 엉뚱한 형사로 변신한다.

    조필성은 잘하는 일도, 열심히 하는 일도 없는 형사다. 네 살 위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집에서는 낡은 냉장고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정직까지 당한 필성은 아내의 쌈짓돈을 훔쳐 소싸움에 일생일대 내기를 건다. 어, 그런데, 이런! 필성이 딴다. 게다가 판돈의 여섯 배를.

    문제는 운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것. 필성은 운 없는 놈의 대명사라, 1800만원을 땄는데 만져보지도 못하고 전부 도둑맞는다. 게다가 상대는 희대의 탈주범. 필성은 돈만 뺏긴 것이 아니라 실컷 얻어맞고 형사 이름에 먹칠까지 한다. 가장으로서 형사로서 수모를 당한 필성은 이제 인생의 목표를 바꾼다. 탈주범 송기태 잡기!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기는 것밖에 못하던 거북이가 끝끝내 토끼를 잡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형사 조필성의 이미지에는 ‘추격자’ 중호의 흔적이 있다. 중호가 미로처럼 복잡한 서울의 변두리 골목길을 뛰어다닌다면 필성은 허허벌판 예산 논두렁을 뒤지고 다닌다.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서울이 ‘추격자’의 중요한 배경이라면 ‘거북이 달린다’에선 촌구석 ‘예산’이 주인공 노릇을 해낸다. 이 영화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촌’의 정서가 없다면 아예 성립되지 않을 작품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영화 장르는 코미디와 드라마 가운데 놓여 있다. 무능한 아버지를 둘러싼 일화, 범인을 쫓는 바보의 집념이 드라마를 맡고 있다면 코미디는 촌의 정서에 바탕을 둔다. 촌티, 촌의 정서는 대략 이런 것이다. 향토예비군인지 로터리클럽 회원인지, 그냥 백수인지 알 수 없는 동네 중년들이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배회한다. 그들은 흰색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고 타지 사람들이 오면 거들먹대면서 위세를 과시한다. 옆집의 강아지가 새끼를 낳은 것부터 누구네 집 마누라가 돈 떼먹히고 도망간 이야기까지 하루면 동네에 소문이 다 퍼진다. 증거물 수집을 통한 과학수사보다 이웃집 건너보는 눈썰미가 더 유익한 단서가 된다.

    ‘거북이 달린다’는 이런 촌의 정서를 활용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영화를 차별성 있게 만드는 것은 끈질긴 추격전이라기보다는 어설픈 검거작전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시골 중년 백수들은 검거대를 자청해 얼토당토않은 작전을 수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휘뚜루마뚜루 뭉친 백수 검거대가 서울에서 내려온 특수 검거대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늘 2등이라고 멸시받던 ‘곰이’가 유력 우승 후보인 ‘태풍’을 물리치고 우승 소가 되듯, 실패한 아버지 필성은 날고 기는 기태를 잡아 영웅이 된다. 소 싸움장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대결이 곰이와 태풍이 싸움과 오버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연우 감독은 ‘소싸움’ 그리고 ‘충청도’라는 코드를 통해 끈질기게 오래, 천천히 해내는 근성을 그려내고자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근성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무능한 아버지의 권위 회복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무능한 형사가 아니라 무시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필성을 무능한 형사로 낙인찍은 것은 바로 그의 아내다.

    이런 점에서 속옷 바람으로 아내에게 쫓겨났던 필성이 제복을 차려입고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다. 딸들과 아내는 멋지게 사회적 제복을 입고 돌아온 가장을 환대한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 담긴 무의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버지는 속옷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있을 때에야 아버지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필성이 그토록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이 ‘돈’이 아니었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부모, 남편으로서 당당히 걷고 싶은 이 시대 아버지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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