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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笑笑한 일상’

건강하게 태어난 둘째 아이, 고맙다, 고마워…

건강하게 태어난 둘째 아이, 고맙다, 고마워…

건강하게 태어난 둘째 아이, 고맙다, 고마워…
지난주에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새벽 3시 무렵 욕실에서 쏴~ 물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아내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밤중에 웬 샤워를 하고 그러냐? 사람 잠도 못 자게….”
잠에서 깨어나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묻자 대뜸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어, 둘째가 곧 나올 것 같아서.”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곤 여행가방을 꺼내 속싸개니 겉싸개니 하는 것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무춤, 허리를 세우고 제자리에 앉았다. 잠은 금세 달아나버렸다.
“정말? 신호가 온 거야?”
“응. 이슬이 비쳤어.”

나는 침대 아래로 내려가 양말을 신네, 머리칼을 정돈하네, 건강보험증을 챙기네, 한바탕 소란을 떨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그럼 나부터 깨워야지 왜 샤워를 하고 그래?”
“아니, 아이를 처음 만나는데 씻지도 않고 만나냐?”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첫째 아이부터 깨우려고 했다. 이제 막 두 돌이 된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산부인과로 갈 순 없는 일. 그러나 아내는 그것도 만류하고 나섰다.



“가만있어 봐. 이제 진통 온 지 한 시간밖에 안 됐으니까, 대여섯 시간 더 있다가 병원에 가도 돼.”
아내는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면서 말했다. 그 순간, 말은 안 했지만, 아내를 바라보며 속으로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내가 뭐 아이 처음 낳나?”

한 손으론 아내를 부축하고, 다른 한 손으론 아이 손을 붙잡고 산부인과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아내는 걸어가면서도 계속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진통 간격을 체크했다. 처음엔 30분 간격으로 오던 진통은 10분 간격으로 좁혀졌다.

장모님이나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할까 생각했지만 금세 접고 말았다. 항암 치료 중인 장모님이나 엊그제 백내장 수술을 한 어머니나 그 먼 거리를 달려오기엔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내에겐 오직 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인 나 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나는 계속 긴장됐다.

첫째 아이의 밥은 어떻게 챙겨줘야 하는지, 목욕은 또 어떻게 시켜줘야 하는지, 낮잠은 언제 얼마나 재워야 하는지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으며 앞으로 할 일의 목록을 챙겨보았다. 그러자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평상시 모두 아내가 해오던 일이었다. 어떤 가족이나 사회나 위기가 닥쳐오면 숨은 본질이 드러나게 마련. 나는 괜스레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아이가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나머지 한 손으로 엉덩이 한가운데를 쿡 찔렀다. 나는 다시 한 번 휴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가기 직전,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가족분만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 망설였지만, 아내는 단칼에 거절했다.
“더 방해만 돼요.”

아내는 진통을 참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가족분만을 한답시고 함께 들어갔다가 아내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쫓겨났던, 뭐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과거가 있었다. 그때 아내는 내가 밖으로 나간 지 5분 만에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분명 방해가 된 것이다.

“얼라를 네가 키우냐? 하늘이 키우지!”

아내를 들여보낸 뒤 아이와 함께 대기실에 멀거니 앉아 있다 보니 한 명 두 명,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보였다. 한 남자는 빠른 속도로 껌을 씹고 있었고, 또 다른 남자는 계속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해대고 있었다. 모두 피곤하고 걱정 가득한 낯빛이었다.

한 명이 휴우,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자 무슨 돌림노래라도 부르듯 나머지 두 명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새로운 인연을 만날 아버지들이지만, 그것이 마냥 기쁘고 설레는 일 같아 보이진 않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입원비와 산후조리원비 따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이너스통장이냐, 현금서비스냐 내겐 그 두 가지 방법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대기실 안으로 낡고 바랜 새마을 모자를 눌러쓴 중년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논일을 하다 달려온 사람처럼 무릎까지 오는 노란색 장화를 신고 있었다. 손자를 보러 왔나? 힐끔 그를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자는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계속 껄껄 웃었다.

“그래, 이 자슥아. 얼라 초등학교 졸업식 날하고 내 환갑날이 겹친다. 그때 동네잔치 할 거다, 이 호로자슥아.”

남자는 욕을 하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귓불 쪽으로 길게 올라가 있었다.
“장모? 베트남에 있는 장모를 어떻게 모셔와? 통화? 야 이 자슥아, 내가 베트남 말을 어떻게 하냐?”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남자는 우리를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큰 목소리로 통화했다.

“뭐? 아이 참, 이 답답한 자슥아, 그러니까 네가 낼모레 쉰이 다 돼도 장가를 못 드는 게야. 이 자슥아, 벼를 네가 키우냐? 하늘이 키우지. 얼라도 뭐 다를 게 있는 줄 아냐, 이 멍청한 자슥아.”

남자의 말을 안 듣는 척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남자 한 명이 피식피식,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다른 한 명도 웃어대기 시작했다. 내 옆에 있던 아이도 이 남자 저 남자 눈치를 살피다가 큰 소리로 까르르 웃었다. 남자는 그런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계속 웃으면서 통화했다.

“그래, 이 자슥아, 환장하게 좋다! 네 놈은 송아지밖에 못 받아봤잖아? 얼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긴 봤냐, 이 자슥아!”

그때까지 꾹 참고 있던 나도 풉,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도 저 새마을 모자를 쓴 남자와 똑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들에 마음을 주지 않고, 이제 곧 만날 ‘얼라’에게만 생각이 가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다른 남자들도 모두 웃을 수 있었으리라. ‘얼라’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좀 멍청해 보이기도 했고.
아내가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은 것은 그날 저녁 8시10분께였다. 아내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고는 한참 동안 아이와 눈을 맞추려 노력하다,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고마워. 그게 전부야….”



주간동아 2009.05.12 685호 (p76~77)

  • 이기호 antig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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