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0

2009.04.07

봤지! 크로스오버 명품야구

WBC 한국팀, ‘빅볼+스몰볼+근성+팀워크’로 실력 발휘

  • 윤승옥 스포츠서울 기자 touch@sportsseoul.com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4-03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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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막을 내렸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야구 종가 미국을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일본조차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로 한국 야구는 세계 정상권의 실력을 뽐냈다. 베이징올림픽에 이은 선전으로 이제 한국 야구는 국제무대에서 ‘옵서버’ 신분을 벗고 강력한 발언권을 갖게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지는 대신 ‘메이드 인 코리아 프리미엄’이 당분간 세계 야구의 판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독특한 야구 색깔은 이번 대회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1~2점 차의 살얼음판을 걷는 경우 경기를 세밀하게 운영하는 일본식 스몰볼(Smallball)을 펼치다가도, 힘과 힘 대결이 필요할 때는 선 굵은 미국식 빅볼(Bigball) 스타일로 맞불작전을 벌였다.

    “야구의 교본” 최고의 히트 상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정체는 스몰볼과 빅볼을 섞고, 여기에 근성과 팀워크 등 한국적 정서를 가미한 ‘크로스오버’다. 서구 문화를 한국의 미학으로 해석해 동아시아 문화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한류(韓流)’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ESPN의 한 해설가는 “한국 야구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야구는 하나의 교본이었다. 미국 고교 야구팀이 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해 향후 한국 야구 열풍의 기대감을 나타냈다.

    홈런 3개, 11타점으로 가공할 장타력과 득점권 타율을 보이며 만장일치 대회 올스타에 뽑힌 김태균(27), 홈런 3개를 뽑아내고 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타를 날린 이범호(28)는 빅볼의 핵심이다.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연달아 홈런포를 쏘아올린 추신수(27·클리블랜드)와 이대호(27)도 언제든지 힘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빅볼의 선두주자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교한 배트 조절 능력과 빠른 발을 이용한 주루 플레이로 상대를 괴롭힌 이용규(24)와 어떤 투수라도 자신만의 스윙으로 부챗살 타구를 날리는 김현수(21), 그리고 명석한 작전 수행능력, 폭넓은 수비와 도루 실력에 정교한 타격까지 갖춘 이종욱(29)과 정근우(27)는 대표팀 스몰볼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역시 빠른 발과 폭넓은 수비에 장타력까지 겸비한 이진영(29), 고영민(25)은 빅볼과 스몰볼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로 꼽힌다. 이들이 동시에 나서면 감독 처지에선 상황에 맞게 다양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다.

    투수진에서도 크로스오버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표팀의 새로운 ‘홀드맨’으로 깜짝 활약한 정현욱(31)과 마무리 임창용(33)은 묵직한 150km대 강속구로 상대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반대로 사이드암 정대현(31)은 다양한 변화구와 체인지업으로 상대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았다. 이번 대회 주요 경기에서 맹활약한 윤석민(23), 봉중근(29)은 파워와 함께 절묘한 코너워크, 볼 배합 능력까지 고루 갖췄다.

    일본을 진정 넘어서야 최강자

    그동안 국제무대를 호령하던 미국 쿠바 등 기존 강호들이 침몰하고 한국과 일본이 그 중심에 섰다. 이는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세계 야구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 야구가 정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히 일본을 넘어서야 한다. 1, 2회 WBC에서의 한국 성적은 12승4패인데, 4패 모두가 일본에게 당한 것이다. 전력상 일본이 약간 우위에 있고, 게다가 일본이 한국전만큼은 철저히 준비하고 나온다는 점에서 일본에 연승하거나 큰 점수 차로 이기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다. 매 경기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을 각오해야 한다.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려면 폭넓은 선수 자원 확보가 필수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 주전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백업 요원들의 대결에서 일본에 크게 밀렸다.

    일본은 똑같은 수준의 국가대표팀을 여러 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대표급 선수 자원이 풍부하다. 주전과 백업의 기량 차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주전 3루수이자 4번 타자인 무라타가 부상으로 중도 이탈했지만 가와사키가 4강전부터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반면 한국 대표팀은 특히 유격수 박진만이 빠지면서 내야수 쪽에서 공백이 드러났다. 박기혁이 박진만을 대신해 수비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지만, 내야수 백업 자원이 한정돼 있어 선수 운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오른손 선발급 투수와 포수 포지션의 대안도 시급하다. 윤석민이 맹활약했지만 김광현(21), 류현진(22), 봉중근으로 구성된 왼손 선발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무게가 떨어진다. 일본은 오른손 삼각 편대인 마쓰자카, 다르빗슈, 이와쿠마가 막강 위용을 과시했다. 노장 박경완(37)이 홀로 지키다시피 한 포수 포지션에서도 대안 발굴이 시급하다. 박경완은 투수 리드는 문제없었지만 타격감이 최악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써야 했다. 일본은 승부처에서 타격감이 좋지 않은 박경완을 집중 공략했고, 결국 기회가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강민호(24)가 버티고 있지만 투수 리드 면에서 아직 불안한 구석이 많다.

    일본의 ‘분석 야구’에 대응하는 것도 과제다. 일본은 두 번 패한 한국전에서 적당한 수준의 스몰볼이 통하지 않자 결승에서는 나노(Nano·10억분의 1)급이라 할 만큼 세밀함을 강화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일본 킬러로 위상을 높인 김광현이 일본과의 첫판에서 무너진 건 우연이 아니다. 우리 야구는 일본에 비해 아직 거칠다. 그게 장점도 되지만, 약점도 된다. 이번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긴 했어도 더 다듬어야 한다.

    장외 지원의 절실함도 느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국제 야구계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번 대회의 10여 개 스폰서 모두 자국 기업으로 채워져 발언권이 강했다. ‘더블 엘리미네이션(Double Elimination)’이라는 독특한 대회 방식은 주최국 미국과 ‘돈줄’ 일본이 예선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심판 배정과 판정 등을 보면 실제로 흐름이 그렇게 돌아갔다고 짐작할 수 있다. 김인식 감독도 “결승 주심은 형편없었다”고 말한 데는 이 같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엇비슷한 실력의 상대를 누르고 정상에 서려면 실력과 함께 다른 부분에서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위상을 한껏 높인 한국 야구는 장내·외에서 적잖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됐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 있어야 ‘위대한 도전’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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