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2008.08.19

여름도 쉬어 가는 ‘에어컨 마을’

  • 글·사진=양영훈 한국여행작가협회장 blog.naver.com/travelmaker

    입력2008-08-13 11: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여름도 쉬어 가는 ‘에어컨 마을’

    해발 1272m의 매봉산 능선에 늘어선 풍력발전기.

    삼복염천의 불볕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은 복사열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찜통 속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해수욕장이나 계곡 같은 물가를 찾는다.

    하지만 물가가 아니어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100m씩 고도가 상승할 때마다 기온은 0.6℃씩 떨어진다. 그러니 해발 1000m의 고원지대는 해발 0m의 바닷가보다 무려 6℃나 낮은 셈이 된다. 게다가 맑고 상쾌한 산바람이 쉼 없이 부는 탓에 때로는 오싹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해발 1330m의 만항재가 바로 그런 곳이다.

    만항재는 함백산(1573m)에서 태백산(1567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굵은 등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개다.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대는 만항재는 요즘 같은 한여름에도 25℃ 이상 되는 날이 별로 없다. 또한 고갯마루 주변에는 낙엽송 조림지가 조성돼 있고, 낙엽송 숲의 바닥에는 동자꽃 이질풀 산꼬리풀 말나리 마타리 기린초 노루오줌 등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린 산상화원이 형성돼 있다. 스스로 나고 자란 자생식물이 제철을 맞아 형형색색의 꽃부리를 활짝 펼친 모습은 어떤 인공화원보다도 아름답다. 이 산상화원에는 조붓한 산책로가 나 있어 찬찬히 걸으며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매년 여름철이면 만항재 일대와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에서는 ‘백두대간 함백사 야생화 축제’(추진위원회 033-592-5455)도 열리는데, 올해는 8월8일부터 17일까지 열흘 동안 개최된다. 축제 기간에는 가족과 함께 캠핑을 즐기며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볼 수 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는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만항재 정상에 차를 세워두고 찬찬히 걷는 게 좋다. 길의 거리와 경사가 걷기에 적당한 데다, 울창한 활엽수림 속의 숲길과 시야가 훤한 진입로 양쪽에 도열하듯 늘어선 야생화를 꼼꼼히 관찰할 수 있어서 좋다. 함백산 정상 아래의 산등성이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도 있다.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고 서 있는 고목의 자태가 불끈불끈 치솟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만큼이나 우람하고 당당해 보인다.



    함백산 정상은 천혜의 전망대다. 이곳에 올라서면 영월, 정선, 태백 일대의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시야를 가득 채운다. 운이 좋으면 장엄한 해돋이와 화려한 일몰까지 감상할 수 있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조차도 빤히 건너다보일 정도로 조망이 시원스럽다. 서쪽에는 고한역과 고한읍내, 하이원리조트가 또렷하고 북쪽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매봉산(1303m)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백두대간의 봉우리 중 하나인 매봉산의 북쪽 산등성이에는 대규모의 고랭지 채소밭이 자리잡고 있다. 엄청난 면적의 천연림을 사라지게 만든 고랭지 채소밭이지만, 그 풍광만큼은 퍽 이국적이어서 관광객과 사진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태백시가 해발 1272m의 매봉산 능선에 8기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뒤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1년 열두 달 중 어느 때 찾아가도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주지만,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여름날의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매봉산 진입로가 시작되는 피재(삼수령) 아래에는 태백시 황연동 구와우마을이 있다. 해발 850m에 자리한 이 마을에는 태백고원자생식물원이라는 사설 식물원이 있다. 총면적 66만㎡(20만여 평)의 식물원에는 약 16만㎡(5만여 평)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해바라기 꽃밭이 꾸며져 있다. 3.5km의 탐방로를 걸으며 300여 종의 야생화 꽃밭 등 대자연과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숱한 고봉들이 끝없이 중첩한 백두대간의 고원지대에 수만 그루의 해바라기꽃이 만발한 광경은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를 능가하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해바라기꽃이 만개하는 8월에는 한 달 내내 ‘태백 해바라기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이곳의 해바라기꽃은 8월15일 전후에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그리고 해바라기꽃이 절정을 넘어설 즈음부터는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인 벌개미취가 제철을 맞이한다.

    고원지대에 울긋불긋 야생화 천지 … 풍력발전기 이국적 풍광 더해

    여름도 쉬어 가는 ‘에어컨 마을’

    태백고원자연휴양림에서 야영을 즐기는 피서객들.

    만항재나 함백산을 오가는 길에서 함백산의 북동쪽 기슭에 자리한 정암사를 지나칠 수가 없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적멸보궁 뒤쪽의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진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한다. 높이 9m의 칠층모전석탑인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마노석으로 쌓았다고 한다. 이 탑이 자리한 산중턱에서는 정암사 주변의 비좁은 골짜기와 육중한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마다 단풍잎을 모두 떨군 만추에도 절집 주변의 숲은 여전히 짙은 초록빛을 띤다. 사시사철 푸른 전나무 고목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잠시 두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전나무숲 특유의 청정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태백까지 간 김에 황지연못과 구문소도 들러볼 만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발원지다. 세 개의 연못에서 하루 5000t의 샘물이 솟아나온다. 고원휴양림에서 멀지 않은 구문소는 낙동강의 물길이 통과하는 천연굴(窟)이다. 자연풍광도 독특하거니와 삼엽충 화석이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남조류 화석으로 이루어진 돌) 같은 자연사 유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추천일정

    첫째 날


    10:00 중앙고속도로 제천TG 통과 → 10:00~11:20 제천TG(5번 국도)~제천우회도로~송학IC(38번 국도)~영월터널~신동~사북~고한(414번 지방도) 등을 경유해 정암사(033-591-2469)에 도착 → 11:20~12:00 정암사 관람 → 12:00~13:30 정암사에서 5분 거리의 만항마을로 이동, 점심식사(토종닭 요리) → 13:30~16:30 만항재와 함백산 일대의 야생화 군락 탐방 → 16:30~17:00 만항재~태백선수촌~오투리조트(서학리조트) 입구~태백시 상장동(31번 국도)~문곡교~백산1교~철암1동 등을 거쳐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82-7238)에 도착 → 17:00~ 태백고원자연휴양림에 여장을 풀고 휴식.

    둘째 날

    11:00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출발 → 11:00~11:40 철암1동 삼거리(좌회전)~구문소 삼거리(우회전)~장성 등을 거쳐 태백시내 도착 → 11:40~13:00 황지연못 탐방 후 점심식사(한정식 또는 한우구이) → 13:00~15:30 황지~화전사거리(직진, 35번 국도)를 거쳐 구와우마을 태백고원자생식물원(033-553-9707)의 해바라기 꽃밭 구경과 해바라기축제 참관 → 15:30~17:30 구와우마을에서 피재 정상(좌회전)을 경유해 매봉산 능선의 풍력발전단지 구경 → 17:30~19:30 매봉산~피재(35번 국도)~화전사거리(우회전, 38번 국도)~두문동재터널~고한~사북~영월~제천우회도로 등을 경유해 중앙고속도로 제천IC 진입.

    여행정보

    숙박

    함백산 정상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려면 만항재 중턱의 도로변에 자리한 장산콘도(033-378-5550)에서 하룻밤 묵는 게 좋다. 펜션형 목조건물로 지어진 15동의 객실에는 깔끔한 주방과 욕실,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고, 부대시설로 하늘목레스토랑이 있어 식사를 해결하기 쉽다. 그리고 2005년에 개장한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82-7440)은 통나무집(단독산막), 산림문화휴양관(복합산막), 야영장 등의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고 물이 맑고 차가워서 피서지로도 안성맞춤이다.

    맛집

    만항재 정상 직전의 만항마을에는 만항할매닭집(033-591-3136), 함백산토종닭집(033-591-5364), 산골토종닭집(033-591-5007) 등 토종닭요리 전문점이 여럿 있다. 놓아 길러서 육질이 쫄깃하고 고소한 토종닭 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태백의 대표적인 별미로는 연탄불에 구워먹는 한우고기가 손꼽힌다. 태백시내의 시장실비식당(033-552-2085), 태성실비식당(033-552-5287), 황지실비식당(033-552-4458) 등에 가면 육즙 많고 살살 녹는 태백한우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그 밖에 태백시내의 너와집(한정식 033-553-4669), 승소닭갈비(033-553-0708), 초막칼국수(고등어찜 033-553-7388) 등도 권할 만한 맛집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