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경제

박근혜 정권의 CJ그룹 잔혹사 | 끝도 안 보이는 터널 특검 끝나면 불운도 끝날까

3년간 검찰 수사와 재판, 영문 모를 사정 칼날…저조한 매출, 인수합병 무산, 콘텐츠사업 큰 타격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7-02-17 16:48:0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근혜 정권 들어서고 4년간은 친MB(이명박) 계열로 분류된 옛 공기업뿐 아니라 일부 대기업에게도 수난의 기간이었다. 특히 CJ그룹이 겪은 일은 한 편의 잔혹동화를 보는 듯하다. 정권 시작과 거의 동시에 개시된 수사로 총수가 구속됐고, 이후 3년 동안 이어진 관련 수사와 재판으로 CJ그룹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영화 같은 악몽의 시작은 2012년 9월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였다. ‘광해’는 그해 말 대통령선거(대선) 정국과 맞물려 입소문을 탔다. 개봉 한 달 후 박근혜 대선후보의 유력한 경쟁자였던 문재인 후보가 관람했다. 문 후보는 ‘광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 CJ그룹은 당시 대선 유세 기간 가십 정도에 불과했던 이 일이 후일 어떤 폭풍으로 다가올지 미처 알지 못했다. 몇 달 후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재계에선 ‘정권 초 대기업 사정 1순위는 CJ그룹’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광해’뿐 아니라 대선후보를 풍자했던 정치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 ‘여의도 텔레토비’ 등에 대해 대선캠프에서 내내 불쾌해했다는 소문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내몰렸던 이재현 회장

    박근혜 대통령 취임 석 달 만인 2013년 5월 21일 올 것이 왔다.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는 ‘CJ 길들이기’의 신호탄이었던 셈. 검찰 수사 시작 한 달 반도 지나지 않은 7월 1일 CJ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이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구속됐다. 유전병에 신장질환 악화까지 겹친 이 회장은 부인의 신장을 이식받는 대수술을 하는 등 투병생활과 재판을 3년여 동안 이어가게 된다.

    최근 국회에서 이뤄진 국정농단 국정조사와 박영수 특별검찰팀 수사에선 이 회장뿐 아니라 이미경 부회장, 손경식 회장에게까지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이 회장이 구속된 7월 당시 조원동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은 손 회장을 만나 이 부회장을 물러나게 하라는 청와대의 뜻을 전했다. 그 일로 손 회장 자신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부회장은 이듬해 1월 박 대통령이 참석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의 밤’에서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꾀했지만 오히려 청와대 측이 괘씸하게 생각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건강상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다.



    2013년 5월 21일 새벽 CJ그룹 본사와 CJ인재원, CJ경영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하며 시작된 검찰 수사는 유례없이 신속하고 강도 높게 진행됐다. 검찰은 그다음 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일주일 사이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신한은행 본점, 이 회장 자택 등을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칼춤’에 언론에선 미확인 추측 기사가 쏟아졌다. 나중에서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재산 해외 도피, 주가 조작,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재산 변칙 증여 등의 의혹이 확산되며 이 회장을 궁지로 몰았다. 수사 개시 두 달도 안 돼 검찰은 이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금액은 2078억 원. 이 회장은 ‘문화기업 CJ’를 일군 유능한 경영자에서 일순간 영어에 갇힌 신세로 추락했다.



    정권 내내 계속된 사정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 기소에 상당한 거품이 있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심 과정에서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이중기소 논란이 있던 일본 부동산 관련 기소 내용을 줄여 전체 혐의금액을 1657억 원으로 변경했다. 결국 1심은 1342억 원에 대해 유죄로 인정했고, 2심은 더욱 줄여 기소 당시 혐의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한 675억 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아 해외에 보유하고 있던 차명주식과 관련해 검찰이 역외탈세 혐의로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검찰이 횡령으로 기소한 603억 원의 부외자금도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회사 운영을 위한 인센티브, 사업거래 비용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인정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항소심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배임 혐의를 받은 일본 부동산과 관련해 금액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며 이를 파기환송했다.

    수사 개시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15년 12월 15일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 회장은 장기간 이어진 재판 기간 신장이식수술의 후유증과 유전병이 악화돼 심신이 많이 피폐해 있었다. 사법부의 선처가 있다면 집행유예를 바라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다수의 예상과 달리 2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휠체어에 앉은 이 회장은 눈을 꼭 감았다.  

    심각한 건강 상태로 수감생활을 감당할 수 없던 이 회장은 재상고밖에 길이 없었다. 문제는 재상고가 받아들여져 감형된 사례가 국내에선 거의 없다는 점. 지난해 7월 결국 재판을 계속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이 회장은 가망 없는 재상고를 취하하고 형을 확정한다.

    생사기로에 서 있던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광복절 사면을 받게 됐지만, 그간 밖에선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타국을 떠돌던 부친 이맹희 명예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들의 실형 선고에 쓰러진 모친 손복남 고문의 건강 악화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정권 초기 사정 대상에 CJ그룹이 포함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은 특검 수사에서도 밝혀졌다. 특검에 따르면 2013년 8월 21일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 사정을 서둘러야 하며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3년 9월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선 또 박 대통령이 “국정 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의 문화 · 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2월 이미 세무조사를 받았던 CJ E&M은 7개월 만인 9월 국세청 조사4국의 심층(특별)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례적인 세무조사는 2014년 3월까지 6개월간 고강도로 계속됐고 세금 296억 원이 추징됐다. 2014년 6월에는 고(故) 김영한 당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고위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CJ E&M의 불공정거래 혐의를 조사해보라”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도 최근 알려졌다. 이 회장이 구속됐지만 CJ그룹에 대한 정권의 칼날은 거두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후 △CJ E&M 엠넷 시정명령(2014년 6월 음원 요금 인상 절차 관련) △CJ CGV 31억 원 과징금 부과(2014년 12월 상영·배급 차별 관련) △CJ대한통운 시정명령(2015년 6월 하도급거래 관련) △CJ헬로비전-SK텔레콤 합병 불허(2016년 7월) △CJ E&M 시정조치(2016년 7월 오디션프로그램 약관 관련) △CJ CGV 71억 원 과징금 부과(2016년 9월 스크린광고 관련) △CJ제일제당 10억 원 과징금 부과(2016년 10월 대리점 할인판매 금지 관련) 등 3년 동안 7건 이상의 제재가 계속됐다.

    특히 2014년 CJ CGV 과징금 부과 당시 공정위는 CGV가 제시한 300억~400억 원대의 소비자 후생방안이 포함된 동의의결 신청을 이례적으로 바로 기각했을 뿐 아니라, CJ E&M을 포함해 검찰에 고발하려 했다는 점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유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다른 그룹사와 비교해볼 때 유독 많은 제재를 받았다.



    비정상 경영의 한계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되자 손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경영위원회를 만들어 비상경영에 나섰다. 위기상황에서 집단경영체제로 전환한 CJ그룹은 주력 사업의 구조조정에 실패하며 이 회장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공격적으로 사세를 키워나가던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된 2013년과 2014년 단 한 건의 인수합병(M&A)도 성사하지 못했다. 2015년에도 중국 냉장물류회사 CJ로킨 1개사를 인수하는 데 그쳤다.

    투자실적도 2012년 2조9000억 원 이후 내리막길을 걷자 대한통운 인수 후 2012년 기록한 26조8000억 원의 사상 최대 매출에서 2013년 25조6000억 원, 2014년 26조8000억 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2015년 29조1000억 원 매출을 기록했지만, 당초 목표인 30조 원을 돌파하진 못했다(그래프1 참조)

    특히 CJ그룹의 차세대 먹거리인 콘텐츠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세무조사와 공정위 제재를 연거푸 받은 CJ E&M은 정권 코드 맞추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콘텐츠 창작 부진의 늪에 빠졌다. 논란을 예상치 못한 ‘광해’는 물론, 제작 및 배급도 하지 않은 영화 ‘변호인’이 CJ그룹과 관련 있다는 오해를 사면서 CJ E&M은 논란이 될 만한 소재를 애써 피했다는 게 영화계의 평가다.

    30% 전후였던 CJ E&M 영화 부문의 관객점유율은 현 정부 출범 이후 20%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지난해에는 11월까지 누적 관객점유율이 15.7%까지 떨어졌다. 매출도 2014년 2113억 원, 2015년 2383억 원에서 지난해 1896억 원으로 하락했다. 이는 국내에 진출한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등 해외직배사의 약진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영화의 국내시장 수성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다행히 최근 tvN 등 방송 부문에서 ‘응답하라 1988’ ‘도깨비’ 등이 히트하면서 CJ E&M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중국 한한령이 겹치면서 향후 콘텐츠 부문의 실적 개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그래프2 참조).

    지난해에는 경쟁력을 잃어가는 케이블산업의 위기 돌파 차원에서 추진한 CJ헬로비전-SK텔레콤 합병이 공정위 불허로 무산되면서 그룹 전체 사업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케이블TV방송 업계에서는 정보기술(IT)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양사의 합병이 당연히 허가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매각과 합병이 불허되자 일각에선 성장 한계에 도달한 케이블TV방송 업계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추후 진행된 특검 조사에선 SK텔레콤의 경쟁사가 박 대통령 독대과정에서 ‘합병을 무산시켜달라’고 요청한 정황도 나왔다.



    계속되는 악연

    CJ헬로비전은 매각 불발 후 2015년에 비해 매출이 6.9%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59.1% 하락했다. 공정위 불허 결정 전 1만4250원이던 주가도 현재 8620원(2월 16일 종가 기준)으로 폭락해 투자자들도 큰 피해를 봤다. CJ헬로비전 매각대금으로 콘텐츠 부문에 집중 투자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려던 CJ그룹의 계획도 무산됐다.

    정권 내내 수난을 겪었던 CJ그룹의 악몽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건강상 이유로 이 회장이 사면받으면서 정권과 악연도 끝난 줄 알았던 CJ그룹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다시 두려움에 떨고 있다.

    CJ그룹은 이 회장 사면 후 연말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 등을 시작으로 그룹 분위기를 추스르고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재도약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손경식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적극적인 M&A를 통해 주력 사업의 성장발판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재계 일각에서는 CJ그룹이 그동안 미진하던 성장을 만회하고자 5조 원가량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정권의 강압으로 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13억 원을 지원한 CJ그룹은 수백억 원을 지원한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손 회장은 국정조사 청문회에도 출석했다. CJ그룹은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지금도 ‘현 정부에서 이재현 회장이 사면됐다’는 이유만으로 언제 다시 조사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CJ그룹 임직원들은 3년간 시행하지 못한 연말 정기인사가 또다시 미뤄지고 올해 투자계획도 발표하지 못하게 되자 허탈해하고 있다. 도미(渡美) 치료 후 경영 복귀가 예상되던 이 회장도 칩거에 들어간 형편이다. 특검 수사가 끝나고 정국이 안정되면 CJ그룹의 악몽도 과연 끝날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