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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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단 금배지 … 몸과 마음 바쳐야죠”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04-30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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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만에 단 금배지 … 몸과 마음 바쳐야죠”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단상까지 25m 정도 됩니다. 그곳엔 국회의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죠. 그 거리를 가는 데 25년이 걸렸네요.(웃음) 주변 사람들이 다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더군요.”

    한나라당 비례대표 22번 이정현(50) 당선자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유일한 친박(親朴)계이자, 호남 출신 당직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국대 출신인 그는 공채가 아닌 특채로, 당내 학맥이나 인맥이 전혀 없는 영원한 비주류였다. 그런 만큼 그에게는 남모르는 인고(忍苦)의 시간과 사연이 많다.

    이 당선자가 정치권에 입문한 것은 1984년 12월쯤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구용상 전 의원(12대)이 총선 출마를 준비할 무렵 선거캠프에 합류한 것.

    “군 복무를 마치고 갓 복학했을 때였어요. 구용상 후보의 선거홍보물을 보고 너무 조악해 편지를 보낸 일이 계기가 돼 캠프에 합류하게 됐죠. 구 의원과 합숙하면서 연설문도 쓰고 선거 기획도 하고 그랬어요.”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진 1985년 총선에서 구 전 의원은 무난히 당선됐고, 이 당선자는 비서관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사실 이 당선자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골 합동유세장에서 후보들의 유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들의 연설 내용을 외워서 감나무나 바위 위에 올라가 마치 내가 유권자들에게 연설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곤 했죠.”

    1987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뒤 88년 처음 치러진 총선에서 평민당 바람은 호남지역을 휩쓸었다. 구 전 의원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 당선자는 그해 특채 형식으로 한나라당 전신인 민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첫 당직은 간사 ‘병’으로 말단이었다. 그때부터 간사 ‘을’ ‘갑’을 거쳐 차장, 부장 그리고 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가 맡은 업무는 대부분 기획과 홍보. 2004년 상근 자리 부대변인을 맡기까지 그가 거쳐온 직책은 전략기획팀장, 미디어기획단장, 자료분석팀장, 정세분석팀장, 정책기획팀장 등이다.

    이 당선자가 이 기간에 겪었던 시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혔던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당내 음해와 모략이었다.

    “한번은 어떤 당직자가 나를 불렀어요. 그러곤 대뜸 당 문건을 통째로 민주당 쪽에 넘기는 것 아니냐고 따지더라고요. 내가 호남 출신이라면서요. 그 자리에서 한바탕 싸웠죠. 그때 일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1997년 외환위기로 각 정당마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할 무렵, 그가 겪었던 ‘가난’도 그의 시련 가운데 하나다. 그의 좌우명은 ‘대공심(大空心) 대공심(大公心)’이다. 사심을 버리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쳐 봉사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정치란 창조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작업이다. 나에겐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라는 이 당선자. 그는 “지난 25년 동안 지켜본 정치는 소모적이면서 비(非)생산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태가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혼자서 할 수는 없지만, 한나라당 50년 집권전략을 세우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담대한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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