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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뜨는 CEO들 인문학과 바람났다

상상력과 통찰의 힘 ‘인문 경영’이 새 화두 … 인간과 관계 맺기로 기업 경쟁력 제고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뜨는 CEO들 인문학과 바람났다

뜨는 CEO들 인문학과 바람났다
두바이는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나라다. 바다 위에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을 띄우고 사막에 실내 스키장을 세웠다. 이제 세계인들은 두바이를 중동의 석유수출국이 아닌, 볼거리가 무궁무진한 즐거움의 도시로 기억한다. 이러한 두바이의 비상(飛上) 한가운데에 ‘두바이의 CEO(최고경영자)’라고 불리는 셰이크 모하메드 국왕이 있다.

모하메드 국왕은 통찰력, 도전정신, 상상력 등 오늘날 리더가 갖춰야 할 삼박자를 두루 갖춘 탁월한 리더로 꼽힌다. 그는 세계적인 경영컨설팅회사 모니터그룹에서 해마다 ‘국가 경영 컨설팅’을 받을 정도로 치밀한 사업가인 동시에 수천 편의 작품을 발표한 시인(詩人)이기도 하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경영학)는 “모하메드 국왕이 시인이 아니었다면 인공섬이나 사막 스키장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겠느냐”며 그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임직원들에게 그의 리더십을 배우라고 주문한 바 있다.

“소비자 이해 최고의 자양분” 잇따른 강좌 큰 호응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열렬한 팬이다. 독서광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인문학 없이는 나도 컴퓨터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2006년 7월21일자 ‘뉴욕타임스’는 ‘성공한 CEO들의 비결은 다름 아닌 서재에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들의 서재를 채운 것은 경영 서적이 아니라 소설, 시, 철학, 역사, 전기 관련 책들.

구글, 유튜브, 야후 등에 투자해 15억 달러를 번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 마이클 모리츠는 “아내에게서 책 욕심에 관한 한 이멜다 마르코스(구두 수집광으로 유명한 전 필리핀 영부인)라는 말을 듣는다”고 고백했다. 세계적 광고회사인 오길비 앤 매더의 CEO 셸리 라자루스는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지에 대한 시각을 얻기 위해 소설이나 전기를 읽는다”고 말했다.



외국의 CEO들만 ‘인문학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남중수 KT 사장은 노자의 ‘도덕경’을 신봉한다. 그는 이 책에 나오는 ‘동선시 거선지 여선인(動善時 居善地 與善仁· 움직임에는 때가 중요하고, 머무르기엔 낮은 곳이 좋으며, 더불어 함께할 때는 어질어야 한다)’이란 구절을 KT가 추구하는 상생경영의 기반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은 2007년 2월 취임하면서 승진 과목에 국사를 포함시켰다. 이 회사의 승진 대상자들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국사시험에서 일정 등급 이상의 자격증을 반드시 따야 한다. 이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익힌 사람만이 해외시장에서 상대 나라의 역사, 문화, 소비자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 사장의 평소 소신에 의한 것이다.

12월18일 성황리에 1기 수료식을 마친 서울대의 인문학 최고위 과정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AFP·Ad Fontes Program·라틴어로 ‘원천으로’라는 뜻)’은 인문학에 대한 한국 경영인들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 최영한 국민은행 부행장, 백경호 우리CS자산운용 사장, 이계안 국회의원 등 39명이 참가해 38명이 수료했는데, 평균 출석률 80%에 ‘개근 학생’이 10여 명이 될 만큼 알차게 진행됐다. 수료생들은 한결같이 “인문학 강의에서 들은 바가 경영 일선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 이 과정을 이끈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 순수 인문학을 논하는 강의 중심으로 인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세리CEO의 CEO를 위한 인문학 강의 ‘메디치21’도 3년째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인문학 조찬 강연으로 정진홍 박사(중앙일보 논설위원)가 리딩 멘토를 맡고 있는데, 초기 100여 명이던 참석자가 현재 매회 400~500명에 이를 만큼 대규모가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 강창희 미래에셋 소장, 강홍규 신한카드 부사장 등이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각종 경영 관련 수치를 분석하고 사업 현장을 뛰어다니기에 바쁜 CEO들이 일부러 시간을 쪼개 인문학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박사는 “어떤 분야의 경영에서든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것은 통찰의 힘이다. 그런데 그 통찰의 힘을 기르는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이다”라고 말한다. 유필화 성균관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성공한 CEO들은 사람과 조직을 잘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사람을 다루는 노하우를 경영학에서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인간에 천착해온 인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문학 탐구하는 경영’ 출판 트렌드로 반영

AFP에 강연자이자 수강생으로 참여한 조 교수는 달라진 경영환경을 그 이유로 꼽는다. 우리나라가 저개발국이었을 때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가격이었다. 그 다음은 품질, 또 그 다음은 애프터 세일즈 서비스로 발전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문턱에 선 지금, 이 정도로는 기업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조 교수는 “소비자는 상품에서 감수성을 느끼고 의미 있는 ‘관계 맺기’를 원한다”면서 “그러한 높은 차원의 소비자 만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을 탐구하는 경영’의 조류는 출판 트렌드에도 일부 반영되고 있다. 경제경영서를 주로 펴내는 21세기북스는 최근 ‘메디치21’ 강연 내용을 엮은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정진홍 지음)와 ‘시 읽는 CEO : 20편의 시에서 배우는 자기 창조의 지혜’(고두현 지음)를 펴냈다. 유 교수도 철학자 세네카, 석가모니 등에서 경영의 지혜를 찾는 ‘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흐름출판)를 출간했다. 김영곤 21세기북스 대표는 이러한 출판 트렌드가 앞으로 더 깊게 자리잡으리라고 내다봤다. “외국의 경영기법을 우리의 경영 현장에 접목하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하는 때가 됐는데, 인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주고, 통찰력을 길러주며,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문학의 힘이 비단 CEO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문학의 향연(饗宴)에 빠져들고 싶다면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그곳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일반인들이 무료로 참석할 수 있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주관·학술문화진흥재단)가 열리고 있다. 앞으로 최장집(정치외교학) 이진우(사회철학) 이태진(한국사학) 안경환(법학) 최정호(언론학) 이인호(서양사학) 김영식(과학사학) 교수 등의 강연이 남아 있다. 학생뿐 아니라 50대 신사들과 40대 주부들도 찾아올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사전 예약(홈페이지 hlectures.krf.or.kr/ 전화 02-3460-5527)은 필수.



주간동아 618호 (p26~2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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