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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街 “개도국 국부펀드, 돈 좀 꿔줘”

금융 위기 선진국 은행들 잇단 SOS 굴욕 … 자본의 역류, 세계경제 지각변동 신호탄

  • 김계환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박사

월街 “개도국 국부펀드, 돈 좀 꿔줘”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의 ‘거인’ 국부펀드의 움직임이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위기에 처한 뉴욕과 취리히 은행들을 개발도상국 국부펀드들이 구해주고 있는 것. 자유주의의 사도임을 자처하는 미국 월스트리트가 개도국에 SOS를 보내면서 생긴 현상이다.

아부다비투자청은 75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제1의 은행인 시티그룹 지분의 4.9%를 인수했고, 모건스탠리는 50억 달러에 9.9%의 지분을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에 넘겼다. 유럽에서도 스위스 제1의 은행 UBS가 96억 달러에 상당하는 지분을 싱가포르 국부펀드에 판매했는데, UBS는 싱가포르의 전 총리인 리콴유나 현 총리인 그의 아들을 이사로 앉힐 예정이라고 ‘르몽드’가 보도했다.

상호의존 방식 경제성장 거대한 불균형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07년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들이 국부펀드에서 조달한 자금은 약 500억 달러에 이른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30여 개 국부펀드 규모는 2조5000억~2조9000억 달러이며, 2015년에는 1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주요 국가는 우선 중동 산유국들로 아랍에미리트(UAE)가 8750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가 3000억 달러, 쿠웨이트가 2500억 달러의 국부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9월 2000억 달러 규모의 CIC를 출범시켰으며, 러시아도 내년 초 180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금융위기로 초토화된 개도국과 이들 국가 은행의 구제에 나섰던 선진국 은행들이 석유 수출 수입과 경상수지 흑자를 천문학적 규모로 축적한 개도국의 국부펀드 도움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금융 위기에 빠진 은행을 자금 여력이 있는 정부나 은행이 구제하는 시장경제의 작동과정에 불과하지만, 이면으로는 세계경제의 작동구조에 큰 변동이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흥미롭다.



이처럼 국부펀드가 불어나는 직접적 원인은 석유와 가스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 누적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배경을 보면 세계경제의 성장방식과 관련된 구조적 원인이 있다.

현재의 세계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조건에는 ‘브레튼우즈 II’라 불리는 비공식적 틀이 자리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 부흥을 가능케 했던 브레튼우즈 체제와 유사한 국제경제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레튼우즈 I이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선진국 간 협의와 그 제도화에 기초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과 개별 교역상대국 간의 양자 협상에 기초한다. 이런 틀 속에서 미국은 세계 유동성을 공급하고 개도국에 수출시장을 제공한다. 또한 개도국은 수출에 기초해 급속한 산업화를 실현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위기, 달러의 지속적 가치하락, 개도국 국부펀드에 의한 선진국 은행의 구제와 구매 등 일련의 굵직한 사태는 암묵적으로 ‘브레튼우즈 II’에 기초를 둔 성장방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이런 균열은 앞으로 세계경제의 진행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보호주의 선회·국가의 부활 예고

먼저 중단기적으로 예상되는 주요 변화를 짚어보자. 대규모 여유자금을 축적한,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한 자원 부국들의 전략은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산업적 다각화다. 경제의 자원수출 의존도를 줄여 외적 충격에 강하고 고용 창출력이 높은 산업구조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15~2025년으로 예상되는 피크 오일(peak oil·세계 석유 생산량이 최고점에 이르는 시기)의 현실화에 대응해 새로운 경제성장의 원천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으로 청년실업 문제가 점점 커지며, 이슬람 근본주의 부상과 같은 사회·정치적 압력이 가중되는 현실에 대처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둘째, 포트폴리오 투자, 즉 위기에 빠진 선진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인수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개도국들의 이런 움직임은 선진국의 보호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유럽의 가스 유통망을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영국과 유럽연합의 반발에 부딪혔다. 또 선진국들은 개도국 국부펀드로부터 자국 핵심 산업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주창자이자 강요자이기도 했던 선진국이 오히려 보호주의로 선회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국부펀드가 세계경제에 끼치는 더 장기적인 영향은 유가 상승의 지속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이미 2008년도 국제유가는 배럴당 평균 77.5달러(두바이유)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고유가 지속은 국부펀드의 규모를 팽창시켜 국제 금융시장에서 개도국의 영향력 증가와 금융권력의 세계적 이동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국제금융기구의 역할 조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또 하나의 효과는 국가의 부활이다. 단기적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국가 주도 또는 국가 통제 자본주의의 힘이 커지면서 세계경제의 이념적 지형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선진국에서의 보호주의와 경제적 애국주의 부활은 선진국의 산업적·금융적 파워가 줄어들면서 더욱 강화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국면이 ‘국가의 축소와 시장에 의한 대체’라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갖고 있었다면, 이제 국가의 부활이라는 큰 전환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국부펀드 자산규모 현황 IIMF 추정치(2조8924억 달러)
재원에 따른 분류 경제발전에 따른 분류 지역에 따른 분류
상품펀드 비상품 펀드 선진국 개도국 중동 아시아 유럽 기타
2조414억

달러
8510억 달러 4470억

달러
2조4454억 달러 1조4750억

달러
8356억 달러 4600억

달러
1218억

달러
(70.6%) (29.4%) (15.5%) (84.5%) (51%) (28.9%) (15.9%) (4.2%)


Tips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정부가 통화당국의 외환보유액과는 별도로 재정흑자 등의 외화 잉여자금을 재원으로 조성해 수익성 위주로 운용하는 투자펀드.




주간동아 618호 (p24~25)

김계환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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