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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세상의 중심, 그러나 낯가림 통화

세상의 중심, 그러나 낯가림 통화

세상의 중심, 그러나 낯가림 통화
핸드폰을 받기 위해 한 사람이 멈춰 선다. / 거리의 행인들이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든다. / 핸드폰이 입을 연다. 당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장이지 ‘모바일 오페라’ 중에서

이윽고 휴대전화에 유령이 출몰했다. 진동신호가 왔다고 생각해 황급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지만 액정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이러한 착각을 가리켜 ‘유령 진동 증후군(phantom vibration syndrome)’이라고 한다. 울리지도 않은 벨소리가 들리는 환청(phantom ringing syndrome)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다. 그만큼 휴대전화는 신체의 일부로 밀착돼가고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시각, 청각과 관련된 도구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휴대전화에는 촉각의 요소까지 가미됐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소중한 물건, 애완동물을 쓰다듬듯 심심할 때마다 만지작거리고 들여다보는 장난감이다. 한때 유행했던 다마고치와 흡사하다. 생각해보면 휴대전화도 동물처럼 움직이고 소리내고 반응하는, 일종의 ‘생물’이다.

휴대전화는 나의 분신이다. 의복처럼 패션의 일부로 정착돼간다. 나만의 고유 착신음, 튜닝, 장식용 고리, 닉네임, 바탕화면 등을 계절이나 기분에 따라 바꾼다. 이렇듯 철저하게 개별 사용자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customized) 미디어는 지금까지 없었다. 휴대전화는 제품 종류도 많아 어쩌다 나와 똑같은 모델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정도다. 또한 무려 70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 등장할 정도로 ‘럭셔리 마켓’도 형성돼 있다. 디자인이 상품 가치를 좌우하는 ‘패셔놀로지’의 전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휴대전화=나의 분신’인 이유는 단지 외형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은 나의 인간관계를 그대로 함축한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기계가 아까운 것 이상으로 타인과의 연락 통로가 일시에 두절돼 속상하다. 복구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서로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할 뿐 아니라, 따로 적어놓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듯 휴대전화에는 그동안 쌓아온 ‘인맥 지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 은행에서는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활용했다. 지원자들로 하여금 지인들에게 ‘나를 평가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게 한 뒤 몇 통의 답신이 얼마만큼 빨리 도착하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10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한 시간 안에 8명 이상에게서 답신이 와야 인간관계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네트워크 지수(NQ), 즉 재테크 못지않게 ‘네트테크’를 중요시하는 사회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가끔 이런 궁금증이 든다. 내 전화번호는 몇 명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을까? 그 숫자는 내 휴대전화에 등록된 인원수보다 많을까, 적을까?

이따금 난감한 문자메시지를 받을 때가 있다. 메시지의 내용을 보건대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보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발신인은 자신의 이름이 내 휴대전화에 자동으로 뜰 것이라 생각하고 이름을 입력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일단 전화를 걸어봐야 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목소리를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섭섭해할까 봐 통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아는 체하며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야 할 때는 사뭇 당황스럽다.

이처럼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은 친밀권(親密圈)을 객관적으로 가시화한다. 한 집단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다른 회원들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전화에 입력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어떤 사람을 ‘왕따’시키기도 한다. 예전 대학생 동아리들은 모임 관련 정보를 오프라인 게시판에 공지해두곤 했다. 공지를 보지 못해 결석하더라도 누구를 탓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개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핀포인팅’ 커뮤니케이션이 주를 이루게 됐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챙기겠지’ 하면서 빠뜨리는 회원이 생기기도 한다.

안과 밖 경계 확실, 낯선 번호 뜨면 받지 않아

이렇듯 휴대전화는 소통 기회를 넓히면서도 거꾸로 단절을 가져오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1과 0의 디지털시스템으로 분할되면서 안과 밖의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지는 것이다. 강의시간에 대학생들로 하여금 휴대전화를 꺼내 최근 일주일간의 통화기록을 확인하도록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저장목록에 이름이 없는 사람과의 통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낯선 전화번호가 뜨면 아예 받지 않는다는 학생도 많았다. 워낙 스팸전화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늘 익숙한 사람끼리 알음알음 소통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낯가림이 아닐까.

앞서 인용한 시인의 말대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나를 기점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자유자재로 편집하고 범위를 조절한다는 기분.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중심이 있으면 주변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호감지수에 따라 설정한 친밀권 바깥에서 누군가가 나를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그 누군가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면서 현란하게 증식하는 소통의 회로. 그 뒤안길에는 타자의 관심 자장(磁場)에 들어가지 못한 채 외롭게 서성대는 마음들이 있다.



주간동아 613호 (p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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