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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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10분 내 끝내주는 베드신 필수

에로영화 감독이 말하는 에로영화 절대 법칙 베드신 최소 6회, 파트너 크로스

  • 공자관 영화 ‘색화동’감독

    입력2007-11-28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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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10분 내 끝내주는 베드신 필수
    1999년 9월, 나는 제대와 동시에 복학해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복학생이라 아무도 안 놀아주는 상황을 기회 삼아 입대 전까지 좋지 않았던 성적을 만회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영화학도였던 터라 그 와중에도 영화잡지를 탐독했는데, 그중 일본의 ‘핑크영화’에 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60년대 일본의 군소 영화제작사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예산으로 3, 4일 만에 완성해 동시상영으로 배급한 에로영화다. 저예산에 속성 제작이지만, 베드신 횟수와 수위 등 제작사가 원하는 조건만 맞춰주면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 의식 있는 감독들의 등용문이 됐다고 한다.

    비디오용 에로영화로 ‘쏘빠때2’ ‘이천년’ 강추

    일본 영화계의 거장 중 하나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멜로영화의 정석을 보여줬던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미쓰 감독,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 등도 모두 핑크영화제 출신이다. “오호, 이거 신기한데….” 흥미롭게 기사를 읽었지만 당시 우리나라 에로영화계 사정을 몰랐기에 큰 감흥 없이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 날 비디오 가게에 영화를 빌리러 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입대 전까진 야한 분위기의 여자가 한복 치맛단을 올려 허벅지를 보여주는 정도였는데, 제대 후 접한 에로 비디오 재킷의 수위는 ‘플레이보이’지 못지않았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은 20대 중반 복학생 청년의 처지에서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껍데기에 낚이는 거 아닌지’ 망설임도 없지 않았지만 이미 손은 에로 비디오를 집어 데스크에 내려놓고 있었다. 이때 본 영화가 클릭영화사 제작, 이필립 감독 연출의 ‘쏘빠때2’다(‘쏘빠때’는 ‘쏘세지가 빠다를 만났을 때’의 준말이다).



    산골의 설경을 담기 위해 강원도에 찾아간 사진작가가 다리를 다쳐 젊은 부부가 사는 외딴 산골집에 머물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사진작가의 여자친구가 찾아온다. 영화는 그 며칠간 벌어지는 산골 부부와 사진작가 커플의 애욕 전선을 담았다. 눈 내리는 강원도 산간의 운치 있는 절경을 잡아낸 영상과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에 나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칸트처럼 시간 맞춰, 해가 지기만 하면 섹스를 하는 산골 남편 역의 박진위 씨 연기는 웬만한 상업영화 배우를 압도했다. 머릿속 퍼즐들이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핑크영화 기사와 한국 에로영화에 대한 충격이 합쳐져 빛이 됐고, 내 미래를 비추는 느낌이었다.

    이후 봉만대 감독의 ‘이천년’을 봤다. 이 또한 클릭영화사 작품인데, 나를 에로영화로 이끌어준 ‘결정적 계기’가 된 영화였다.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감각적인 영상, 방황하는 청춘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한 연출, 에로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은 농도 짙은 베드신까지. 얼마 후 비슷한 내용의 상업영화로 임상수 감독의 ‘눈물’이 개봉됐는데, 에로영화를 나눠 보던 친구들끼리는 “저거 ‘이천년’ 따라한 거 아니냐”며 의심까지 했다. 결국 나는 클릭영화사에 지원서를 보냈고, 수일 후 ‘한국 에로영화계의 차승재’로 불리는 이승수 사장을 만났다.

    에로영화를 ‘비디오 출시를 목적으로 한 야한 극영화’로 한정할 경우 앞서 언급한 두 편이 개인적으로 꼽는 베스트라면, 좀더 개념을 넓혀 ‘에로티시즘을 다뤘거나 그것이 조금이라도 묻어나오는 영화’로 정의한다면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도 좋은 에로영화로 꼽고 싶다. 치정이나 불륜을 잘 다룬 영화는 좋은 에로영화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입영화 중에는 폴 버호벤의 ‘원초적 본능’이나 애드리안 라인의 ‘언페이스풀’ 등이 있겠다. 내친김에 에로영화를 찍어온 감독으로서 에로영화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에로영화의 ‘관습’이랄까, 포인트를 몇 가지 소개한다.

    “에로 배우들 진짜로 하냐고요? 그럴 리가!”

    시작 10분 내 끝내주는 베드신 필수

    공자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색화동’은 에로영화의 촬영 과정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여자는 되도록 많은 남자와 섹스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이는 에로 비디오 위주지만, 대부분의 상업영화에도 적용되는 일종의 ‘원칙’이다. ‘해피엔드’의 전도연은 최민식과도 하고 주진모와도 한다. ‘언페이스풀’의 다이앤 레인은 남편과도 하고 불륜남과도 한다. 그러니까 등장하는 주요 남자 배역과는 다 하는 것이다.

    이를 에로 업계에선 ‘크로스’시킨다고 하는데, 스와핑과는 개념이 다르다. 제작비에 여유가 있던 시절에는 배우 구성을 남자 셋, 여자 셋으로 한 다음 그 세 커플이 상대를 바꿔가며 다 한 번씩 하게 했다. 요새는 제작비 규모가 줄면서 등장하는 배우 수가 줄다 보니 크로스시킬 일도 그다지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 에로영화에는 최소 여섯 번 이상 베드신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빈약한 에로영화의 내러티브 특성상 그 이하로 베드신이 나오면 80분 이상의 러닝타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에로영화사 영업부장의 말로는 러닝타임이 짧으면 판매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 개인적인 경험상 에로영화에 베드신이 없다면 그 영화는 40분을 넘기기 힘들다고 본다.

    또 다른 관습으로는 영화 시작 10분 안에 인상적인 베드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007 시리즈에서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인상적인 오프닝 신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밖에 몰아 찍기라는 게 있다. 이것은 에로영화의 장르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영화 외적인 것이 화면상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에로영화를 찍으면 베드신은 한 모텔에서 몰아 찍게 되는데, 인테리어가 한정된 데 반해 베드신 수가 많다 보니 같은 방에서 다른 베드신을 또 찍게 되는 일이 많다. 이럴 경우 앵글을 조절해 한 방을 나눠서, 침대 쪽을 찍고 소파 쪽을 또 나눠 찍는다.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으나 나중에 에로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겹치는 장면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에로영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진짜로 해요?”다. 결론부터 말하면 에로영화는 포르노와 달리 대부분 실제로 하진 않는다. ‘찍어봤자 쓸데가 없기 때문에’ 진짜로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욕심 있는 감독이라면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로망스’의 카트린 브레야나 ‘숏버스’의 존 카메론 미첼은 실연을 시킨 것인지 모른다.

    나도 필요하다면 실연을 요구할 용의가 있다(배우들이 따라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실연이 아닌 에로영화도 나름의 미덕과 재미가 있고, 그것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컨대 뜬금없는 베드신과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 조악한 배경 등은 우리 에로영화에만 있는 ‘재미’다. 완성도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일반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그 영화들에 실제 정사는 나올지 모르겠지만 재미는 장담하지 못한다. 반면 우리 에로영화는 뜬금없이 베드신이 나오고 배우들 연기도 어색하지만 확실히 재미있다.

    이제는 시장이 죽어 에로 비디오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한때 문화이고 산업이었던 것이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새로운 에로영화가 나와야 할 때다. 베드신을 위한 이야기와 이야기를 위한 베드신, 그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지가 요즘 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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