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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禪 이야기

‘고통의 바다’로 돌아온 붓다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고통의 바다’로 돌아온 붓다

불교를 흔히 자비(慈悲)의 종교라 한다. 크게 보면 기독교의 사랑과 다르지 않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단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베푼다는 것을 뛰어넘어 ‘내가 깨달은 것을 남과 나누겠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민중의 아들로 태어나 세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밑바닥 민초들과 아픔을 함께했던 예수와 달리 붓다는 왕자로 태어나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로병사’라는 삶의 본질적인 허무를 이기지 못하고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속세를 떠난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자각이 바로 불교적 상상력의 시작임을 붓다는 자신의 극적인 생애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붓다가 자신의 육신을 해할 정도의 극심한 수행과 정진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하지만 붓다의 위대한 점은 깨달은 이후라 할 수 있다. 경전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전한다. 다음은 ‘석가보’에 나온 내용이다.

“내가 얻은 법은 매우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부처끼리만 알 수 있거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바르지 못한 소견에 가려서 지혜가 없는 중생이 어떻게 (이 법을) 알 수 있겠는가. 내가 (깨달았다고) 바로 법 수레를 굴리면(깨달은 바를 가르치면) 그들(중생)은 어리둥절하여 믿지 못하고 도리어 (나를) 비방하는 따위의 나쁜 길에 떨어지게 될 텐데, 차라리 조용히 있다가 열반에 드는 것이 낫겠다.”

성인이 중생이나 할 법한 평범한 고민을 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붓다의 위대한 점은 우리네 인간들과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여기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과감하게 깨뜨렸다는 데 있지 않을까.



붓다는 자신의 삶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은 뒤 이 행복의 순간을 남에게 떠벌릴 필요 없이 혼자 즐기며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이든 말든 가르침을 펴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떠나왔던 고통의 바다 속으로 다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를 다른 말로 여래(如來)라고 부른다. 이는 ‘다시 돌아오신 분’이라는 뜻이다.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그가 바로 붓다다. 여(如)는 흔히 ‘여여(如如)하다’라고 해석하는데 ‘깨달음을 얻어 그 깨달음의 상태가 흔들림 없이 완전하다’는 뜻이다. 다시 돌아온 붓다는 옛날에 속세를 떠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의 바다로 돌아왔어도 고통에 휘둘리지 않고 고통의 바다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 중생에게는 붓다가 ‘깨달았다’는 사실보다 ‘돌아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붓다가 깨달았다는 것은 어쨌든 남의 깨달음이지만, 돌아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그가 전하려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불교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왕자가 세속을 버리고 시작한 구도의 종교라는 점보다는, 이 돌아왔다는 것의 의미가 더욱 중요한 종교다. 따라서 불교는 진리의 종교라기보다 고민의 종교이며 남을 향한 연민의 종교이며, 그리하여 자비의 종교다.



주간동아 2005.12.06 513호 (p86~86)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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