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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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상대 약점을 찾아라”?

수사권 대립 심화 정보 전쟁으로 비화 … 총수 가족 움직임·모임 참석까지 민감한 반응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6-02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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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경 “상대 약점을 찾아라”?

    4월 11일 김종빈 검찰총장(앞줄 왼쪽)과 허준영 경찰청장(앞줄 오른쪽)이 수사권 관련 공청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공청회(4월11일)를 열어가며 첨예한 대립을 보이던 4월 중순, 경기 수원시 팔달구 원천동에서 욕조 관련 제품을 만드는 이○○ 씨는 예기치 않은 전화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라고 신분을 밝힌 한 인사가 “그 회사에 김옥빈이란 사람이 근무하느냐”고 묻고 나선 것. 김옥빈 씨는 김종빈 검찰총장의 친형. 김 총장에게 에쿠스 자동차를 사준 것과 관련, 3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거론됐던 주인공이다. 검찰의 확인 전화를 받은 이 씨는 김 씨의 근무이력과 활동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이 씨는 5월27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검찰 측에서 두어 차례 전화를 해 김옥빈 씨에 대해 물었고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회사 대표를 지낸 사실을 확인해주었다”고 답변했다.

    공청회·언론 플레이·첩보전…

    검찰이 욕실나라 측에 전화를 걸어 김 씨의 근무 여부에 대해 확인한 일은 자체적으로 입수한 정보가 발단이었다. 당시 검찰은 “경찰이 김 총장의 형 옥빈 씨 뒷조사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 검찰은 그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김 씨가 47년생인 김 총장보다 나이가 적었기 때문. 이와 관련 이 씨는 전화통화에서 “우리 회사 대표를 지낸 김옥빈 씨의 나이는 40대 후반(48세)”이라고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즉각 다른 라인을 통해 옥빈 씨의 이력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옥빈 씨는 물론 그의 사업체(흥진유화)가 경기도 수원이 아닌 전남 여수시 교동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즉각 여수에 있는 김옥빈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찰은 전화를 통해 “수원에서 사업을 한 적이 있느냐. 민원 청탁을 한 적 있느냐. 김 총장에게 신용카드를 준 적이 있느냐”는 등 당시 경찰과 검찰 주변을 떠돌던 소문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김 씨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여수에 있는 김 씨와 그 주변 사람들과 통화를 끝낸 검찰은 수원에 사는 김 씨가 여수에 사는 김 총장의 친형과 동명이인임을 확인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이 사건은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검경 대립은 공청회와 언론 플레이는 물론 경우에 따라 정보 첩보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검경 간 대립 양상은 김종빈 검찰총장과 허준영 경찰청장이 서로에게 직격탄을 날릴 정도다. 김 총장이 먼저 “검찰은 경찰과 달리 그동안 약속을 지켰다”며 경찰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약속’이란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가 열리는 동안은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허 경찰청장은 “경찰관들의 인권의식을 거론하면서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검찰”이라고 맞받았다.

    경찰 안팎에서는 허 청장의 이런 맞짱 뜨기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과거의 일부 경찰 총수들과 달리 허 청장은 스스로 자기관리에 철저했기 때문에 ‘누구를 향해서든 할 말은 한다’는 자세를 보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검찰과 경찰의 두 조직 간 대립도 볼 만하다. 올 초부터 검경은 상대방의 정보 및 첩보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물론 검찰의 담당 부서는 주 2~3회씩 상대 조직의 움직임과 관련한 정보 및 첩보 보고서를 올리는 등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경찰은 서로 상대방이 조직을 동원, 상대방 수뇌부의 뒤를 은근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 경찰청 황운하 수사권조정팀장(총경)은 “경찰이 김종빈 총장 형의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도 “경찰이 검찰 수뇌부 약점 및 비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더라”고 말했다. 황 총경은 “반대로 검찰이 경찰청장을 비롯해 경찰청 차장, 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은 말할 것도 없고 수사권조정팀장인 나까지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고 토로했다.

    검-경 “상대 약점을 찾아라”?

    4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공청회'.

    “주요 인사 첩보 수집 정상 활동”

    검찰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뒤통수를 맞을 것 같은 움직임이 경찰 쪽에서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들었다고 해서 다 말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구체적 얘기는 피했다.

    황운하 총경은 이런 움직임을 꼭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태도다.

    “수사권을 놓고 대립하는 검찰과 경찰이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파헤쳐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발상을 한다면 이는 지극히 실망스러운 행위이지만, 경찰청 정보국은 노건평 씨 등 대통령의 가족 및 친인척들을 비롯해 주요 인사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꾸준히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김 총장의 형도 주요 인사의 친인척으로 당연히 정보 수집 대상이 된다. 옥빈 씨와 관련한 정보 및 첩보가 있다면 시점상 굉장히 중요한 정보로 분류될 것이다.”

    의도적으로 악용하지만 않는다면 검찰과 경찰의 주요 인사 및 범죄정보 첩보 수집은 정상적 활동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사권을 놓고 대립 중인 검찰과 경찰 주변을 흘러다니는 정보 첩보전은 다소 의도가 깔려 있음이 느껴지고, 또 저의가 의심스러운 경우도 없지 않다.

    5월 초 김옥빈 씨의 뒷조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던 경찰청 정보 관계자들에게 이번에는 ‘검찰의 반격이 시작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징후가 포착됐다. 3월 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 음식점에서 열린 허준영 청장 취임 축하연에서 허 청장과 초등학교 동창생 10여명이 술을 먹고 심한 말싸움을 했다는 내용이 검찰 쪽에 포착됐다는 것. 경찰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민감한 내용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당시 참석자가 누구인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청장 비서실 관계자는 기자의 확인 요청에 “행사가 열렸다는 그날 허 청장은 다른 행사에 참석했다”며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부정했다. 경찰 다른 관계자도 “허 청장이 초등학교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허 청장과 동창들이 모였던 삼계탕집은 “하루 수백명의 손님이 온다. 특별히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을 부담스럽게 하는 첩보는 또 있다. 1월 청문회 당시 거론됐던 허 청장의 군과 관련한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 신체검사에서 색맹 판정을 받아 보충역에 편입됐지만 경찰 간부로 채용된 점 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 보충역 근무 중 대학을 다닌 부분에 대한 의혹도 다시 유포되고 있다. 경찰 측은 최근 허 청장의 중·고교 및 대학 학적부와 관련된 ‘소문’에 대해 검찰 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허 청장과 관련한 얘기들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뿐일 뿐, 검찰을 거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황운하 총경은 “거론되는 의혹은 청문회 당시 해명됐으며, 더 이상 의혹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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