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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만화에 빠지면 진지한 책 멀어진다

연령별 독서·논술 지도법 … 초등생 땐 또래들과 토론·글쓰기, 중·고생 땐 도서 가치 일깨워줘야

학습만화에 빠지면 진지한 책 멀어진다

초등학생



읽기와 쓰기는 들숨, 날숨처럼

최근 초등학생의 일기 작성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일이 있다. 내밀한 것이어야 하는 일기가 숙제와 검사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일기 쓰기가 어린이들의 글쓰기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정해진 틀에 맞추려고만 하지 말고 다양한 일기의 형식을 개발해볼 것을 권한다. 학교 측에서 그 같은 방식을 용납치 않을 경우에는 학교용과 개인용을 따로 정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만의 일기’를 갖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그날의 기분, 생각 등을 담은 간단한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붙이고, 자신에게 소중한 무엇을 상자 안에 차곡차곡 모으는 등의 행위도 모두 ‘광의의 일기 쓰기’다.



뭔가를 읽고 소화하고 이를 다시 자기 방식으로 적는 과정을 마치 들숨, 날숨처럼 자연스럽게 이어가다 보면 학습능력과 사고력, 비판력은 절로 향상된다. 특히 ‘쓰기’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씨 좀 잘 써라” “맞춤법이 틀렸다”며 핀잔 주고 긴장을 유발하기보다, ‘쓰기’도 즐길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학습만화’를 경계하라

어린이 독서사이트 ‘오른발왼발’을 운영하는 오진원 씨는 “부모가 만화의 함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고 나면 굉장히 유식해진 것처럼 보인다. 어른도 읽어내기 힘든 명심보감이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복잡한 가계도도 아주 쉽게 기억한다. 어려운 과학 상식을 풀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려운 건 뭐든지 쉽게, 조금이라도 일찍, 지식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빠지고 만다”는 설명이다. 글로 된 책, 진지한 책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만화로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삼국지’를 익힌 아이들에게 책의 주인공과 배경은 ‘만화에서 본 그대로’일 뿐이다. 그런 만큼 부모가 나서 ‘만화가 아니어도 만화만큼 재미있는 책’을 골라 함께 읽고 독려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청소년이 되어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토론, ‘또래집단의 힘’으로 끌고 가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가 아닌 또래집단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자극을 받고 깨우침을 얻는다. 철학, 글쓰기 등의 사교육이 대개 집단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교원대 조성민 교수(윤리학)는 “토론과 글쓰기, 말하기는 모두 합리적 근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언어 활동이다. 그런 만큼 토론-글쓰기 교육을 병행하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그래서 가정에서라도 가능하면 일종의 ‘탐구공동체’를 꾸릴 것을 권한다. 아이 친구 네다섯 명 정도를 모아놓고 신문활용 교육이나 특정 책,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토론을 할 때는 남의 얘기 경청하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상대 인격 존중하기 등의 기본적 예의와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한다.

그러나 “섣불리 토론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쪽도 있다. 숭문고 허병두 교사는 “토론을 이끄는 데는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가볍게 하라”고 조언한다. 서로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는 대화를 자주 나누고, 도서관·박물관·역사유적지 등을 부담 없이 찾아 함께 배우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부모가 생활 속의 독서로 먼저 시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중·고등학생

‘지금, 내 생활’과 닿은 책을 권한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형식논리적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므로’ 등의 논리연결어를 써가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것.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반이 확립되는 때인 만큼 논증, 추론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성인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책에도 도전이 가능하다.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의 경우 중학생에게는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고전’을 읽힌다. 플라톤의 ‘대화편’, 단테의 ‘신곡’ 등 내용을 간추리긴 했지만 학생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들이다. 임병갑 실장은 “고전은 검증된 책이다. 그만큼 풍부한 생각거리와 근원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다. 교사나 부모가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를 통해 깊이 있는 사고력과 독서의 지구력을 길러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독서 능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오히려 학교 생활, 사춘기의 특성 등 아이들이 ‘바로 내 일’이라 여길 수 있는 주제 및 소재를 담고 있는 책을 추천해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다. 책 읽는 즐거움과 효용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독서 또한 또 하나의 ‘입시 공부’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송희 씨는 “청소년 시기에는 성장소설, 인물이야기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혼란과 방황을 경험하기 쉬운 사춘기에 일종의 길잡이이자 역할 모델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보다 세계관, 가치관이 먼저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글 쓰는 이에게는 세계관이 전부”라는 말을 했다. 좋은 글이란 매끄러운 문장도 중요하지만 역시 그 안에 글쓴이의 ‘삶의 태도’와 사회를 향한 시각이 설득력 있는 형태로 담겨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산고 문재용 교사도 ‘내 것으로 남는 독서’의 가치를 강조한다. 문 교사는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부모, 친구와 대화를 나눠보거나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관점이 서면 배경 지식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론이 명확해야 글도 쉽게 써지지 않느냐”고 했다.

허병두 교사 역시 “독서란 스스로 또 한 사람의 저자가 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저자의 생각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는 ‘나라면’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자녀 사이, ‘토론’은 계속되어야 한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서도 부모가 자녀의 독서와 사고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밑거름은 역시 원활한 대화다.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시사적 문제에 대한 대화를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두발자유화’가 문제이면 그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묻고, 논리적 허점이 있으면 반론을 제기하며, 아이가 다시 자기 논리를 세워 재반론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가 매사에 지나치게 ‘반항적’이라 할지라도, 이를 ‘비판적’인 것과 혼동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최악이다. 임병갑 실장은 “비판적 사고란 어떤 주장에 대해 적절하고 충분한 논거를 댈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올바른 문제제기를 하고 결론을 내렸다면 그것이 부모 생각과 다르더라도 대등하게 인정하고 격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래도 책이 싫다면 차라리 딴 방법을 찾는다

논술지도 전문가인 한효석 씨(전 부천고 교사)는 “그래도 애가 책 읽기를 싫어한다면 강요하기보다는 차라리 포기하라”고 말한다. 너무 독서만 강조하는 것은 활자매체에 매몰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씨는 “예를 들어 몇 십년씩 교회를 다녀도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고, 일자무식인 촌로라도 좋아하는 찬송가 한 구절에서 깊은 뜻을 깨닫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한 씨는 논술 교육에서도 무조건 읽고 쓰기만 강조하기보다 견문을 넓혀주는 데 방점을 찍는다. 연극이건 영화건 상관없다. 강요와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다.

한 씨는 “아버지가 고교 3학년생인 아들을 통닭집에 불러놓고 지나온 자신의 삶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도 훌륭한 ‘논술 교육’일 수 있다. 아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여러 국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한 다음, 어려운 말과 미사여구로 가득한 글이 아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05.06.07 488호 (p34~35)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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