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1

2005.02.01

철도공사 ‘배짱 장사’ 출발!

할인제 줄이고 예약제도 제 편한 대로 … 승객들 바뀐 절차 모르고 있다 예매 취소 ‘낭패’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01-26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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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공사 ‘배짱 장사’ 출발!

    철도공사의 졸속 제도 변경으로 승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경영학 원론도 못 읽었나, 고객만족 경영을 한답시고 기존에 있던 서비스를 축소·철폐하고, 일반 기업도 다 하는 학생·장애인·노인 할인제도를 없애겠다니?”

    2005년 1월1일 출범한 한국철도공사(옛 철도청·이하 철도공사)의 ‘경영혁신’ 작업에 대해 고객들의 반발이 거세다.

    철도공사는 철도청의 공사 전환 시점인 1월1일부터 승차권의 예약·구입 절차와 요금 할인, 무임승차제도를 대폭 바꿨다. 변경된 제도의 대부분은 철도공사에 곧바로 수익으로 연결되는 ‘아주 좋은’ 제도. 하지만 소비자인 승객 처지에서 보면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내용 일색이다. 때문에 철도공사 홈페이지에는 1월1일 이후 이를 탓하는 고객들의 ‘실명(實名)’ 민원이 1000건 넘게 올라와 있다. 말 그대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것. 고객들과 누리꾼(네티즌)들은 한목소리로 “기차 타기 싫으면 고속버스를 타라는 것이냐”며 “기차 안 타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숫제 이번 제도 변경이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를 독점한 철도공사의 ‘권력 남용’ 사례라는 지적도 있다.

    요금 결제한 표 바꾸려면 수수료 물어야

    1월1일 이후 바뀐 예약제도를 이용해본 승객들은 익히 경험했겠지만, 철도공사의 이번 제도 변경은 고객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한다. 일단 승차권의 예약·구입 절차 변경 내용을 보자. 불과 한 달여 전인 지난해의 경우 고속철도를 포함한 각종 기차의 승차권을 사야 하는 승객은 열차 출발일로부터 두 달 전까지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출발 시간 전 역에 가 요금을 치르면 바로 표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바뀐 제도는 출발 7일 전까지 예약한 승객은 예약한 후 6일 이내에, 출발 6일 전부터 출발 하루 전까지 예약한 승객은 출발 1일 전까지, 출발 당일 예매한 승객은 출발 30분 전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요금을 결제한 뒤 출발 시간 5분 전까지 역에서 발권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을 이용해 신용카드로 미리 결제할 수 없는 승객의 경우는 예약을 한 후 정해진 기일 내에 가까운 역이나 여행사 등을 방문해 요금 결제를 하지 않을 경우 예약은 자동 취소되는 것. 결국 인터넷과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없는 승객은 예약 후 일주일 이내나 출발일 하루 전에 역을 방문해 돈을 내야 출발 당일 승차권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당일 예약한 사람의 경우는 출발시간 30분 전에 역에 도착해야 기차를 탈 수 있으므로 여행 시간이 30분 더 늘어난 셈.

    1월1일 제도를 시행하자마자 거센 반발에 부딪힌 철도공사는 5일 후인 1월6일 이중 일부 내용을 다시 바꿔 출발 1일 전과 당일 예약한 승객은 출발 10분 전까지 요금을 계산하면 되도록 제도를 바꿨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약 승객이 주말과 휴일 등 일정한 시기와 시간대에 몰려 있는 점과 이때의 기차표는 이미 2일 전에 모두 매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용카드가 없거나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승객들이 열차를 타기 전에 역이나 여행사 등을 중간에 한 번 더 방문해야 하는 고역은 그대로 남는 셈이다.

    철도공사 ‘배짱 장사’ 출발!

    고속철도가 ‘연착철’이라고 불리는 현실에서 각종 할인제도의 철폐는 승객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게 대부분의 평이다.

    승차권 예약·구입 절차 변경의 첫 희생자들은 2004년 12월22일 새벽 6시부터 전쟁을 치러가며 설 기차표를 예매한 사람들. 이날 밤샘 작업을 하면서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족 4명의 KTX 왕복표를 예매한 김모씨(42)는 “당일 좀 일찍 가서 사면 되겠지 하고 가만있다가 11일쯤 확인해봤더니 예약이 자동 취소되었다. 12월22일 당시에는 제도가 이렇게 변한다는 통지도 없었다. 미리 결제하지 않으면 예매한 차표를 취소해버리는 게 공사가 할 짓이냐”고 항변했다.

    사실 김씨는 많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일 뿐, 지난해 12월22일 인터넷으로 설 기차표를 예매한 사람들 중에는 요금 결제를 제때 하지 않아 자신이 예매한 승차권이 자동 취소된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씨는 “철도공사가 빈 좌석으로 운행되는 피해를 줄이려고 이런 ‘꼼수’를 쓰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예약을 위반하는 사람에게 강력한 과태료를 물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국 주요 역 대합실은 승차권의 예약이 취소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항의하는 승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철도공사는 예약제도 변경을 통해 또 다른 이득도 취하고 있다. 요금 결제를 한 후에 일정이 바뀌는 경우가 빈발하는 까닭에 그에 따른 수수료 이득도 크게 늘 것이 뻔하기 때문. 예전 같으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 사항만 바꾸면 모두 해결됐지만, 이젠 이미 기차표를 산 것이 되므로 일단 반환 수수료를 물어야 하고, 기차표를 다른 시간대로 바꿀 경우 할인 혜택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산행 KTX를 출발 4일 전에 예약하고, 하루 전에 신용카드로 인터넷에서 결제를 했지만 출발 당일 갑자기 출장 일정이 바뀌어 3시간 빠른 기차표로 변경하려 했더니 갑자기 수수료를 내라는 겁니다. 승차권이 내 손에 쥐어져 있진 않지만 이미 승차권을 구입한 상황이라는 거죠. 요금의 10%(출발 1일 전에서 출발 직전 취소할 경우)나 하는 수수료를 낸 것도 억울한데, 다른 기차표로 바꾸려 하니 철도회원 할인(5%) 등 각종 할인 혜택이 없어지더군요. 이래저래 기차표를 바꾸는 데 6000원쯤 손해를 봤습니다.”(대기업 직원 이모씨)

    학생할인 폐지, 무임승차 대상도 축소

    다음은 할인제도. 철도공사는 공사 전환과 동시에 중·고·대학생(24세까지)에 대한 학생 할인제도(총운임의 20%)를 완전히 폐지하고, 정부의 별도 지원 계획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할인제도도 2006년부터 폐지할 예정이다. 철도공사는 학생 할인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청소년 카드를 대안으로 내놓았지만 카드를 사는 데에만 2만5000원(6개월)에서 4만원(1년)이 들고, 할인 혜택도 15%에 그쳐(KTX 주말 30% 할인)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 온 대학생 김모씨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내려가던 집도 6개월에 한 번씩 내려가기로 했다”며 “철도공사 사장은 수십년간 계속된 각종 할인 서비스를 갑자기 없애면 수요가 도리어 준다는 기본적인 경영학 원리도 모르는 모양”이라고 성토했다. 학교 통폐합으로 먼 거리를 무궁화호로 통학하던 학생들은 KTX 개통 이후 무궁화호 운행 대수 자체가 줄어든 데다 할인제도까지 없어지면서 엄청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떻게 하죠, 아가씨. 한번만 봐주면 안 되겠어요. 이렇게 사정할게요. 아이가 이렇게 조그마한데 안고 타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 다른 기차편도 모두 매진되고, 아이를 떨쳐놓고 나만 혼자 타고 갈 수도 없지 않아요.”

    철도공사 ‘배짱 장사’ 출발!

    학생 할인제도의 폐지로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월8일 오후 5시 서울역 대합실. 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역 직원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임승차 대상에 들어갔던 아이가 올해부터 빠지면서 비롯됐다. 철도공사가 올 1월1일부터 수십년간 변하지 않던 무임승차 대상을 만 5세에서 만 3세로 바꾸면서 혼란이 일어난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부모는 “아이를 떼놓고 우리만 가란 말이냐”고 통사정했지만, 철도공사는 이를 끝내 외면했다. 결국 그들은 이날 기차를 타지 못하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발길을 돌렸다. 철도공사의 무임승차 대상 축소는 올 설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설 때 가족 단위 이동이 많은 데다 지난해 12월22일 설 기차표 예매 때에는 무임승차 대상 축소가 알려지지 않은 까닭. 또 지난해 12월 당시는 만 3세였지만 올해 만 4세가 된 아이들도 문제다. 서울 성북구 김모씨(32)는 “다섯 살 난 아이는 무료인 줄 알고 표를 구하지 않았는데, 남아 있는 승차권도 없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며 “이번 설 때 고향 방문을 포기할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철도공사 측은 이에 대해 “승객이 초기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해 비롯된 측면이 있고, 국가기관에서 공사로 전환된 만큼 기업적인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을 개선한 것”이라며 “좀더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철도공사는 승객의 원성을 사는 ‘꼼수’보다 경영 합리화가 수지 개선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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