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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제 징용의 恨 1,519,142명

일본 측 자료 국내 첫 공개 … “일본 곳곳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유골 정부서 관심 가져야”

아! 일제 징용의 恨 1,519,142명

아! 일제 징용의 恨 1,519,142명

2003년 7월22일 피징용자들과 강제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법정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할린에서 퇴각하면서 패전의 아픔을 달래고자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조선인을 군도로 쳐 죽였다.”

전범 호소카와(細川)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마무리된 뒤 옛 소련 법정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전쟁터를 비롯해 탄광, 벌목장, 비행장 등에 강제로 징용돼 품을 팔다 ‘불귀의 객’이 된 피징용자 수는 명확치 않다. 일본엔 이들의 유골 수천 구가 남아 있고,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발견된 집단 묘지에선 비극의 편모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은 1939년부터 한국인 강제동원에 나서 45년 8월 종전까지 151만여명을 군인 군속 노무자로 혹사시켰다. 피징용자들은 콩깻묵을 쌀과 섞어먹으면서 온몸이 까질 때까지 맞아가며 일했으나 대가는커녕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종전 직후 “‘조선인 개’는 죽여야 한다”며 일본인에게 학살된 피징용자도 적지 않다.

어느덧 광복 60돌, 불행한 과거사를 품에 안고 생존해 있는 징용 피해자는 이제 5000명이 채 안 된다(일제강제연행한국생존자협회 추산). 이렇듯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지던 피징용자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판도라 상자’로 불려온 65년 한-일 수교 협정문서 일부가 1월17일 일반에게 공개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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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회 의사록 방대한 자료



특히 한국 정부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국외로 동원된 생존자,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등 피징용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일본에 청구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제안한 피해자별 보상 대신 국가가 보상금을 일괄해 받는 형식을 취한 게 도마에 오른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75년 군인, 직계가족, 신고한 유족 등 8552명에 한하여 1인당 30만원씩 지불한 게 피징용자들에게 돌아온 보상의 전부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 체결 이후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건네받아 형식적 보상에 쥐꼬리만큼 쓴 뒤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보상금을 썼다. 그중 일부는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도 있다. 정부가 희생자들에게 직접 지급돼야 할 보상금을 전용한 만큼 추가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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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혼이 된 피징용 노무자들의 유골 중 송환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역대 정권은 피징용자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왔다. 강제 동원된 한국인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 정부가 공개한 한일협정 6차 회담 회의록엔 피징용자의 규모와 함께 이에 따른 보상금액을 일본 측에 제시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당시 정부는 피징용자 수가 103만2684명(노무자 66만7684명, 군속 36만5000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수치는 주먹구구식 계산 방법에 의한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는 2003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조사에서 피징용자 수를 126만4000명으로 추정했으나, 이 자료 역시 실제와 동떨어져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학계의 연구 결과와 확보된 자료를 바탕으로 강제동원 인원을 추정하고 있으나 학자들마다 추정치가 다르고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가 부족해 피징용자 수를 파악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피징용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주간동아가 장복심 의원을 통해 입수한 일본 의회 의사록(전후보상문제국회의사록 제1집, 1990년 3월7일)에 따르면 국내 동원(연인원 650만명으로 추정)을 제외한 강제동원 한국인(북한 포함) 수는 151만9142명(1939~45년)이다. 의사록에 명시된 피징용자 수가 연도별로 천단위의 추정치가 아니라 일단위까지 제시됐다는 점에서 151만9142명이라는 수는 구체적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317쪽에 이르는 의사록은 피징용자 수뿐 아니라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될 만한 방대한 자료를 싣고 있다.

피징용자 수를 밝혀놓은 일본 측 자료가 국내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일본이 피징용자 수를 파악해놓은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록에 따르면 일본은 39년 5만3120명을 강제동원했고, 40년~41년엔 12만6092명을 혹사했다. 미국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41년 12월8일) 이후엔 42년 24만8521명, 43년 36만654명, 44년 37만9749명, 45년 35만1006명 등으로 강제동원 인원이 크게 늘어난다. 이렇게 군인·군속·노무자로 동원된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전쟁의 희생양이 됐다.

피징용자에 대한 역대 정부의 무관심은 유골 송환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강제동원됐다가 사망한 이들의 유골은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채 마구 섞여 일본 사찰에 흩어져 보관돼 있다. 찾는 이가 없어 쓰레기처럼 버려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민단체들이 유골을 수습해 국내로 가져온 사례가 몇몇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유골을 송환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외교통상부가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보관 중인 도쿄 우천사(佑天寺) 내 유골을 들여오려다 무산된 사례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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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경 지역의 일본군 강제위안부 학살 현장. 일본은 패망과 동시에 정보가 누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위안부들을 한데 모아 학살했다.

전쟁 기간과 종전 직후 귀환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30여만명(사망자 수는 20만~50만명으로 견해가 엇갈린다)의 사인을 파악하고 유해를 수습하는 일은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역대 정부의 무관심 탓이다. 일본은 50년대 초반부터 원조를 하면서까지 전쟁이 벌어졌던 나라들에서 유골을 찾았다. 유골 수집 횟수가 300차례가 넘고 99년부터는 DNA 추적까지 하고 있다. 일본은 전사자 240만명 중 124만명의 유골을 송환했다(2004년 3월1일 현재). 일본뿐 아니라 미국도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를 발굴해 송환하고 있다.

관련 자료 넘겨받는 게 급선무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지난해 12월 가고시마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유골 송환 문제가 거론됐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일본 후생성 문건에 따르면 후생성이 관리하고 있는 한국인 군인, 군속의 유골만 2300구에 이른다. 일본에 남겨진 유골을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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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회 ‘전후보상문제국회의사록 제1집’ 일부. 317쪽으로 이뤄진 의사록엔 사료적 가치를 지닌 내용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피징용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본으로부터 징용 관련 자료 일체를 넘겨받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후생성과 우정성엔 피징용자의 이름과 본적지 등이 기록된 후생연금 우편저축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일민족문제학회 정혜경 박사는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관련 자료가 일본에 수집 보관돼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자료 제공을 요청해야 한다. 전쟁 기간과 귀환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의 사인을 파악하고 유해를 수습하는 일 역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일 협정문서가 공개되자 예상했던 대로 징용 피해자의 보상금 지급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직접 보상은 어렵다는 의견이다. 75년 8552명에 대해 직접 보상이 이뤄졌고 93년 헌법재판소가 정부에 추가보상 책임이 없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대안으로 징용 피해자들에게 생활자금이나 임대주택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피징용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으나 아직 상정도 되지 않고 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생활안정 지원 법안’을 대표발의한 장복심 의원은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전쟁 희생자 및 그 유족들은 광복 60년이 된 지금까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뒤늦게나마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생활안정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의자 의무이며 올바른 역사관 정립과 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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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5.01.25 470호 (p30~32)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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