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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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녀, 우도의 약속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1-07 12: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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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그녀, 우도의 약속
    하나의 주제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를 만드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각기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가진 감독들을 과연 어떻게 아우를 것인가. 만약 그들이 주제에 굴복한 밋밋한 단편을 만들어온다면? 아니면 더욱 곤란하게도 주제와 상관없는 장편을 뚝딱 만들어온다면?

    올해 환경영화제를 위해 제작된 옴니버스 영화 ‘1.3.6.’도 그런 문제를 담고 있었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인 송일곤의 ‘깃’은 기획자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송일곤은 환경을 주제로 한 30분짜리 단편 대신 남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한 걸 빼면 환경하고 아무 상관 없는 70여분짜리 장편을 만들어가지고 왔다.

    ‘깃’은 호평을 받았지만 그 비평적 성과가 옴니버스 기획에 도움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환경영화제 이후 옴니버스 영화 ‘1.3.6.’은 와해되었고, 따로 독립한 ‘깃’은 ‘감성 멜로’라는 장르를 달고 이번 1월 중순에 개봉된다.

    영화의 설정은 ‘비포 선라이즈’의 한국판 속편과도 같다. 10년 전에 우도를 방문한 연인들이 10년 뒤 같은 모텔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한다. 그들의 관계는 여자가 유학을 떠나고 독일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깨지지만 영화감독이 된 남자는 10년 뒤 다시 그 모텔을 찾는다. 여자는 과연 돌아올까?

    답을 말한다면 돌아오지 않는다. 결말을 노출시켰다고 화내지 마시길.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비포 선라이즈’식 설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영화감독과 옛 연인의 재회가 아니라 그 영화감독이 우도라고 하는 안식처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서서히 정신적으로 치유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늘 환상적인 지리적 공간에 관심을 가졌던 송일곤의 작품답게 영화 속 우도는 현실적인 지리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방문자를 치유해주는 마술적 세계이기도 하다.



    ‘깃’은 송일곤에게 치료약과도 같은 영화다. 송일곤이 지금까지 만든 장편 영화들은 흥미로운 예술적 비전과 가능성을 지녔는데도 늘 지나친 예술적 자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전작 ‘거미숲’ 이후 후닥닥 써갈긴 각본으로 10일 동안 뚝딱거리며 찍은 이 영화에는 그런 함정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송일곤 특유의 초현실주의와 상징으로 가득하지만 전작처럼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상징적 무게에 짓눌려 있지 않다. 놀랍게도 영화는 꽤 많은 농담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강행군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와 변덕스럽게 변하는 섬마을 날씨에 자연스럽게 적응한 스토리라인 덕택에 영화는 경쾌한 즉흥 연주와 같은 매력을 발휘한다. ‘깃’은 가볍고 야심 없는 소품이지만 송일곤이 지금까지 만든 어떤 영화들보다 멀리 날았다.

    Tips

    송일곤 1971년에 태어남. 단편영화 ‘간과 감자’(1997)로 영화계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소풍’ ‘꽃섬’ ‘거미숲’을 연출했다. ‘깃’은 제1회 환경영화제를 위해 만들어진 뒤 독립 개봉하는 경우로 7000여만원의 예산으로 70분 분량을 찍은 초저예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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