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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전자종이는 움직이는 도서관

디지털과 종이 결합 차세대 정보전달 주자 … 2010년 하반기엔 신문·책 대체 전망

  •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즈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전자종이는 움직이는 도서관

전자종이는 움직이는 도서관
2003년 흥행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갖가지 미래형 과학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톰 크루즈가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동영상과 활자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전자종이 신문’ 때문에 신분이 발각되는 부분이다. 전자종이 기술을 영화 속에 현실화함으로써 미래형 매스미디어의 형태와 발전 가능성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잉크 냄새 진동하는 신문 대신 온라인 신문을 읽고, 편지지와 펜보다는 e메일과 휴대전화를 선호한다. 일정 관리와 가계부 작성에는 편리한 소프트웨어가 동원되며, 정보 검색과 사전 찾기도 인터넷에서 해결한다. 우리는 다양한 활자와 화려한 그래픽이 펼쳐진 모니터 속 세상을 항해하는 와중에 종이와 펜을 차츰 잊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모니터가 종이를 대체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종이의 위세는 여전히 변함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IT(정보기술) 전문가들이 종이 책의 종말을 예견했을 만큼 매스미디어 업계는 기술 변화의 태풍 속에 특히 출판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매체가 계속 공존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두 매체는 각기 다른 독특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 각각의 취향을 지닌 독자들을 흡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작업 문서는 종이로 인쇄해서 펼쳐봐야 맛이 나고, 신문도 잉크 냄새 밴 종이를 뒤적여야 읽는 맛이 살아난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종이의 맛을 모니터로 느껴볼 순 없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전자종이(e-paper)’다. 전자종이는 디지털과 종이의 개념이 결합된 산물로, 디스플레이 소재 자체가 종이처럼 얇은 재질과 부드러운 촉감을 갖고 있어 둘둘 말아서 갖고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수 있다.

얇은 재질 부드러운 촉감 둘둘 말아서 휴대



이 같은 전자종이의 실용화를 예견하는 연구 결과가 영국의 과학 전문지인 ‘네이처’ 최근 호(11월25일)에 소개됐다. 일본 도쿄공업대학의 호소노 히데오 교수팀이 플라스틱 소재의 필름을 이용해 지금까지의 10배에 이르는 성능을 가지며, 가볍고 전도율이 높을 뿐 아니라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박막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 연구팀에 따르면 이 반도체는 투명하기 때문에 집이나 자동차, 얇은 곡면에도 문자와 화상을 구현할 수 있어 둘둘 말거나 접을 수 있는 휴대용 전자책 또는 전자신문의 재료가 되는 전자종이 제작에 응용할 수 있다. 전자종이의 가장 큰 장점은 이동통신 환경의 일상화를 실현해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원을 차단해도 화상이 유지되고, 백라이트 전원이 없어 통신기기의 배터리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경량화와 원가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미래 정보지식 사회는 전자종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정보전달 매체를 필요로 할 것이다. 종이가 인류 문명을 꽃피운 매개체였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동영상을 포함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기존의 종이 매체로는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디스플레이 매체와 종이 인쇄물의 장점을 모두 갖춘 표시 소자인 전자종이는 차세대 정보표시 기기의 대표주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종이는 움직이는 도서관

11월24일 일본 히타치가 발표한 세계 최초의 64색 컬러 전자종이. 유기 박막 트랜지스터(organic TFT)를 사용한 이 제품은 2006년 상용화될 예정이다.

전자종이로 만든 신문은 어떤 모습일까. 전자종이 신문의 하단 모서리엔 배터리와 메모리, 무선데이터 포트와 버튼이 달려 있다. 무선 인터넷을 이용한 실시간 내려받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뉴스를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고, 메모리엔 수십 년 분량의 신문 기사를 고스란히 저장할 수 있어 이전 기사 검색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전기 소모량도 LCD의 10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종이 신문이 상용화되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었던 신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문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소식을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면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광고판·플래카드 용도 … 치열한 개발 경쟁

전자종이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제록스가 전자잉크의 개념을 발표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90년대 들어서면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 제록스 외에도 E링크, 켄트디스플레이 등이 마이크로캡슐·토너·액정 등을 이용한 전자종이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LCD, PDP 등 전자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지만, 전자종이 개발은 뒤늦게 뛰어들어 기술 수준이 미흡한 실정이다.

전자종이는 0.1mm 이하의 작은 공이나 캡슐을 이용해 잉크의 효과를 내는 방식과 기존의 평판 디스플레이를 더욱 얇게 만들어 종이 효과를 내는 방식 등 두 가지 원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잉크 효과 방식의 전자종이 표면을 확대해보면 마치 잉크로 쓴 것처럼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뉜다. 전자종이는 전기를 띠는 특수 플라스틱 트랜지스터 두 장과 지름 0.05mm 정도의 작은 구슬 수백만 개로 구성된다. 작은 구슬의 반쪽은 희고 반쪽은 검은데, 흰 쪽은 음전하를 검은 쪽은 양전하를 띠고 있다. 플라스틱 트랜지스터에 전하를 주면 전기적인 힘에 의해 구슬이 제자리에서 돌면서 흰 쪽이나 검은 쪽이 위를 향하고, 이들이 모여 글씨나 그림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자종이는 아직 화면의 해상도가 낮아 주로 큰 글씨에 이용되기 때문에 책이나 신문보다 광고판이나 플래카드 용도로 쓰인다. 제록스 등 전자종이 분야에 앞선 기술을 가진 업체에서는 이미 전자종이 상품을 개발했으며, 미국의 일부 백화점에서 일종의 광고판으로 시험 사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0년 하반기쯤 오프라인 신문과 책의 상당 부분을 전자종이가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책이나 신문을 전자종이에 내려받아 누구나 자신만의 움직이는 도서관을 소유할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종이 신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잉크 냄새의 정겨움이 딱딱하고 차가운 기기로 완전히 탈바꿈해 사라져버린다면 조금은 서글플 것 같다. 성공한 시골 청년이 어린 시절의 풍경과 정취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465호 (p68~69)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즈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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