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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열풍 타고 ‘환상문학’ 다시 떴다

현실 허구성·언어 한계 뛰어넘기로 독자 사로잡기…한국선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주목

‘해리 포터’ 열풍 타고 ‘환상문학’ 다시 떴다

‘해리 포터’ 열풍 타고 ‘환상문학’ 다시 떴다
J.K.롤링이라는 영국의 한 이혼녀가 쓴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천문학적인 판매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 7월8일 0시를 기해 발간된 제4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전 4권)은 초판 380만부에,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60만부를 사전주문받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11월1일부터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서점마다 이 책의 예약주문이 밀려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해리 포터’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소설의 죽음과, 문학의 위기와, 문자매체의 퇴조를 우려하고 있는 이 시점에 불어닥친 ‘해리 포터’ 돌풍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작가 J. K. 롤링은 정말 상상력 하나로, 죽어가는 문학과 사라져가는 문자매체를 되살려놓은 것인가.

악한 마법사의 왕에 의해 부모가 죽자 이모 집에 얹혀 살게 된 해리 포터는 열한살이 될 때까지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사촌형 더들리(역서의 ‘두들리’는 잘못된 발음임)의 온갖 구박과 냉대 속에 생일파티 한번 못해본 채, 층계 밑 옷장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학교의 입학을 허가한다는 이상한 편지를 받으면서부터 해리의 운명은 마치 마술처럼 멋지게 바뀐다.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해리가 마법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모든 마법사들의 존경과 인기를 한몸에 받는 영웅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은 설정은 자신의 현실과 환경에 불만을 품고 운명의 역전을 꿈꾸고 있는 모든 사춘기 아이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다. 어린 시절 ‘피터 팬’이나 ‘홍당무’ ‘소공녀’를 읽고 좋아한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해리 포터의 불행한 어린 시절과 새로운 운명의 변화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리가 마법학교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온갖 모험들-예컨대 급우들과의 우정과 경쟁, 괴짜 선생님들, 스피드와 스릴 만점의 스포츠, 그리고 무섭고 신비스러운 비밀의 방 등-이 전개된다. 즉 ‘해리 포터’는 아이들의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해주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어서,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환상 채워줄 요소 가득



그러나 ‘해리 포터’는 단순한 아동소설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어른과 아동 사이의 경계가 명확한 나라는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 성인문화와 청소년문화가 뒤섞이는 비권위주의적 사회인 서구에서는 많은 어른들 역시 ‘해리 포터’에 매료돼 있다. ‘해리 포터’에는 옥스퍼드 교수작가들의 작품(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J.R.R. 톨킨의 ‘반지전쟁’, C.S. 루이스의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같은 영국 환상소설의 전통이 면면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환상소설이 최근 다시 부상하게 된 이면에는 우선, 현실을 언어라는 매체로 다루는 문학이 현실의 허구성과 언어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과 환상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인식, 그리고 환상문학을 통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현실비판을 수행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최근 환상문학 부상의 한 주요 원인이 된다. 그리고 물론 전세계 아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컴퓨터 게임의 확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해리 포터’의 구성과 해리의 모험 과정은 놀랄 만큼 컴퓨터 게임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해리 포터’가 아이들을 다시 책으로 불러왔다고 하지만, 사실 ‘해리 포터’를 읽는 것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흔히 컴퓨터 게임을 무조건 해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이나 문학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게임이어서, 포나 나보코프 같은 작가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삶과 예술을 일종의 체스 게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 브라운대 교수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로버트 쿠버 역시 “‘디아블로II’ 같은 컴퓨터 게임들과 ‘해리 포터’ 이야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통점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독서는 좋은 것이고 컴퓨터 게임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해리 포터’는 현실과 환상, 그리고 종이 책과 컴퓨터 게임을 효과적으로 혼합함으로써 새로운 개념의 문학 양식을 창출해낸 것이다.

‘해리 포터’가 범세계적인 호소력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거기에 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인식의 변화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소설은 포스트모던시대의 첨예한 관심사인 ‘이분법적 구분과 서열의 해체’와 ‘소외된 주변부 문화에 대한 조명’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위해 저자는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현실과 환상, 머글(인간)과 마법사, 정통과 비정통, 그리고 공식사회와 지하세계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고 있으며, 주변부의 소외계층인 마법사의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물론 마법사의 세계에서도 그러한 이분법적 대립과 경계 해체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해리 포터’는 새로운 상상력만 있으면 문학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또 문학의 영역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환상소설과 달리, ‘해리 포터’는 현대사회를 다루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현실감을 준다. ‘해리 포터’가 현실세계와 상상세계를 부단히 넘나들고 있다면, 국내작가 김민영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은 현실과 가상현실을 절묘하게 교차함으로써 호소력을 갖는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은밀히 배달되는 가상현실 컴퓨터 게임 팔란티아에 빠져드는 사람들, 머드(MUD) 방식 접속을 통해 연결되는 게이머들,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통제자들을 통해 김민영은 통렬한 현실비판과 예리한 문명비판을 시도한다.

현실에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가상현실이 제공하는 것은 일견 꿈과 모험의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가상현실에 빠져들수록 그것은 점점 더 현실을 오염시키는 악몽으로 변해간다. 이윽고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가상현실은 현실을 침범해 장악하게 된다. 정보기관과 사업가들은 그것을 악용해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려 하고, 주인공은 거기에 저항한다. 이 소설의 마직막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회유하려는 통제자를 가상현실의 힘을 빌려 처치함으로써 컴퓨터에 대한 통쾌한 인간승리를 보여준다.

‘현실과 가상현실’ 절묘한 넘나들기

주인공 원철이 전사-용사로서 각종 팀원들과 함께 가상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퀘스트와 원정 또한 현실 속 그의 직장생활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현실에서 그는 각종 팀원들과 함께 ‘블레이드 러너’라는 벤처 팀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인데, 적절하게도 ‘프리랜서’란 특정 영주에 속하지 않고 모험과 방랑 속에서 살던 ‘중세의 기사’-즉 게임 속 원철 자신의 모습-를 지칭한다. 모험(벤처)과 살상을 통한 재물의 취득, 선과 악으로 나누어(그러나 사실은 단지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상은 원철의 현실과 환상 모두에서 똑같이 일어난다.

현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환상소설의 대가 톨킨의 ‘반지전쟁’에 근거한 가상현실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은 환상소설과 추리소설과 순수소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양식의 소설이다.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은 사실 환상소설이 아니라, 환상소설 기법을 이용한 추리소설이고, 추리소설 기법을 이용한 본격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중후한 주제, 고도로 정교한 구성, 유려한 문장, 새로운 상상력, 그리고 고난도 컴퓨터 게임과 신화와 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최첨단 신기술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거는 문명비판서인 이 소설은 오늘날 위기에 처한 문학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해주고 있다.

‘해리 포터’가 문학을 컴퓨터 게임으로 변환한 경우라면,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문학으로 승화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해리 포터’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처럼 재미있는 작품들을 읽고 있노라면, ‘순수문학은 좋은 것이고, 환상문학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인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남녀간의 부질없는 삼각관계나가족간의 갈등, 개인의 신변잡기 같은 것들을 마치 대단한 예술처럼 포장해 내놓고 있는 진부한 순수소설들보다, 복합적인 주제와 참신한 소재와 정교한 구성을 갖춘 환상소설들이 오히려 훨씬 더 문학적이고 가치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0.11.09 258호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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