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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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지고 싶은 일본인들 “가자! 부산으로”

서면 일대 성형외과 타운 형성 성업 중… 절반 이하 수술비, 쇼핑 관광도 해결

  • 입력2005-05-25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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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뻐지고 싶은 일본인들 “가자! 부산으로”
    “어디서 수술할까. 이틀이면 되겠지.”

    10월25일 오후 2시 부산시 중구 중앙동 국제여객터미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일본 여성들이 입국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거기 가면 다 해결될 겁니다.” 황급히 그들을 맞은, 가이드로 보이는 한국 여성의 응답.

    비밀스런 대화가 오고간 후 그들이 택시로 이동한 곳은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호텔 맞은편 거리. 일명 ‘서면 성형외과 타운’으로 알려진 거리다. A성형외과에 들어간 이들은 30여분도 채 안 돼 이곳을 빠져나온 뒤 바로 옆 건물의 B성형외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의 일본 여성들과 가이드는 성형외과 병원들을 옮겨 다니며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쌍꺼풀 수술을 하기 위해 이날 오후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소문 무성한 부산의 ‘성형수술 관광객’이었다.

    “성형수술도 받고 관광도 하는 ‘부산 성형수술 관광’은 이미 재일 교포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여행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합니다. 수술 자체가 숨기고 싶은 일이라 여행사를 통해 오지 않기 때문에 통계가 잡히지 않을 뿐이죠.” 가이드 김모씨(여·32)는 일본인의 성형수술관광 전문 가이드를 한 지 벌써 1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성형수술 관광객’ 일본서도 소문



    “병원과 계약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원하는 병원을 갑니다. 쇼핑의 개념과 똑같습니다. 제가 만약 특정 병원을 소개한다면 만일의 하나 부작용이라도 생길 경우 나중에 책임질 문제도 생기고….” 김씨가 다른 지역의 성형외과를 접어두고 이곳 부전동으로 관광객을 데려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으므로 일본 관광객 스스로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의원간의 가격 경쟁이 심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수술비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서면 성형외과 타운은 그야말로 부산 성형외과 병원들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형외과 전문의원만 스무 군데, 진료과목이 성형외과인 피부과 의원을 합치면 서른 군데가 넘는다. 연달아 붙어 있거나 한 집 건너 하나가 성형외과인 꼴이다. 일본인을 위해 유리창에 한자로 ‘成形外科’(성형외과)라고 써놓은 곳도 눈에 띈다. 서울의 신사동 사거리와 명동, 신촌의 성형외과가 일본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난 후 부산의 서면 성형외과 타운은 일본 성형수술 업계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쌍꺼풀 수술의 경우 일본이 200만∼400만원이 든다면 서면은 60만원에서 80만원, 유방 성형수술비는 일본의 30% 수준인 400만∼500만원으로 가격 우위가 확실하다. 가장 흔한 성형수술로 일본 중년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주름살 제거 레스틸렌 주사도 50만∼80만원으로 일본의 20%에 불과하다.

    “가격이 엄청나게 헐한 게 사실입니다. 거의 절반 이하 가격이에요. 왕복 뱃 삯과 숙박비, 관광비를 모두 합해도 일본에서 성형수술하는 비용보다 30∼40%, 많게는 60% 이상 쌉니다. 아는 언니가 먼저 이곳에서 수술 했는데 알고 보니 인근 의원이 더 싸다고 해서 그 병원으로 갈까 합니다.” 한 성형외과에서 나온 일본인 관광객 미오코씨(여·23)는 일본에서 쌍꺼풀 수술을 하려면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낸다고 전했다.

    실제로 하루 2회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오가는 고속 쾌속정의 운임비는 왕복 17만원. 3시간이면 도착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부담이 없다.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 얼굴 윤곽 수술까지 이틀에서 일주일이면 해결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쇼핑과 관광, 성형수술을 한꺼번에 해도 유럽이나 미주로의 여행보다 부담이 적다. 항공편을 이용해도 왕복 30만원 전후로 45분(후쿠오카)에서 1시간40분(도쿄)이면 부산에 도착할 수 있어 성형수술을 원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부산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

    부산의 일본인 성형수술 관광붐은 사실 전반적인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 올해 부산 국제여객터미널과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온 일본인 관광객수는 10월 말 현재 55만여명. 지난 97년 한해 55만명과 98년 57만명, 99년 59만명으로 매년 늘어나던 관광객 수가 올해 최초로 60만명을 넘어서 올해 말이면 66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부산시의 분석이다. 특히 20∼30대 여성 관광객들이 지난해와 올해에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행사에서는 일본인 여성 관광객 수가 줄었다고 난리입니다. 이제 호텔과 교통수단만 여행사에 의뢰할 뿐 관광상품으로 오는 사람이 갈수록 줄기 때문이죠. 성형수술을 하려는 사람들이 여행사를 통해 오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죠.” 부산세관의 백승찬 계장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는 젊은 일본 여성들의 입국이 부쩍 늘고 있으며, 이들 여성 중 상당수가 ‘부전동 손님들’이라고 귀띔했다.

    미오코씨와 함께 온 유리씨(25)는 일본인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부산을 찾는 또 다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부산에서 수술하면 소문이 안나요. 성형수술하는 사람치고 소문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일본인 여성에게 부산 성형외과들의 철저한 비밀보장 시스템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저한 비밀보장 시스템은 국내에서 ‘세금 포탈’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이날 오후 가이드 김씨의 귀띔에 따라 바로 그 시간에 일본인 성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서면의 C성형외과를 찾았다. “우린 일본인 성형수술 경험이 전혀 없어요. 지금 수술하고 있는 환자는 부산 사람입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며 일본인의 성형관광 실태를 묻자, 간호사는 정색을 하며 일본인 성형수술을 부인했다. 그러나 C성형외과를 나온 뒤 전화로 일본인의 친척을 가장해 성형수술 의사를 타진하자 이 간호사는 일본인 성형수술이 거의 매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속칭 ‘이쁜이 수술’을 한 일본인 여성이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서면 성형외과 타운의 의원들은 대부분 일본인 성형수술 사례를 밝히기 꺼린다. 일본인 수술비의 경우 100% 현찰 지급이 대부분으로 매출이 드러날 염려가 없기 때문에 탈세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 따라서 일본인이 아닌 일반인이나, 특히 언론에 이를 밝힌다는 것은 탈세의 꼬리가 밟히는 근거가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모임에 참석해도 일본인 수술에 대해서는 말도 잘 안합니다. 언론에 자기 병원 이름이 나오면 세무조사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누구 주머니에 들어가든지 외화벌이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면의 D성형외과 전문의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을 요구한 뒤 이렇게 말했다.

    가격 경쟁력 있는 외화벌이?

    그러나 서면 성형외과 타운에는 일본인 성형수술 사례를 숨기기에 급급한 다른 성형외과와 달리 일본인 성형관광을 겨냥해 브로슈어를 만들어 배부하는 등 공격적인 홍보에 나서는 병원도 있다. 롯데호텔 11층에 자리잡은 로얄빈센트 클리닉이 바로 그곳. 지난 1월 개원한 이래 30여명의 일본인 성형 사례를 가지고 있다는 이 병원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해 성형외과와 안과, 피부과, 미용 마사지실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호텔내 롯데 면세점을 찾는 일본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본과 이곳의 수술비를 비교한 홍보물을 배포하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호텔 안에 성형외과가 있는 곳은 여기뿐입니다. 부산은 일본에 비해 성형수술의 질적 수준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물가가 싸기 때문에 일본인 쇼핑이 늘 듯 성형외과도 이런 가격 경쟁력을 외화벌이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로얄빈센트 클리닉 박승언 대표는 “지금은 세금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인을 얼마나 많이 유치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미국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지만 병원 경영만을 책임지는 전문 경영인이다.

    이곳에서 지방흡입술을 받은 일본인 반노씨(55·남)는 롯데호텔 객실을 입원실로 쓰고 있었다. 병원이 롯데호텔측과 연계해 객실을 절반 가격에 입원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반노씨는 “세상에 호텔 객실만큼 좋은 입원실이 어디 있겠냐”며 “오래 머물러도 비용 부담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반노씨가 지방흡입술을 받으며 지불한 수술비는 무려 1000만원에 달했지만 이도 일본의 절반 가격이었다.

    “태국은 성형외과 수술의 질이 상당히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조차 수술을 받으러 찾아갑니다. 국가 차원의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부산보다 수술비가 쌉니다. 일본에서 인기 최고인 김 100상자를 팔아봐야 일본 여성 한 명이 쌍꺼풀 수술하고 뿌리는 외화보다 적습니다.” 박승언 대표는 부산 성형관광의 활성화를 위해선 국가 차원의 홍보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어둠이 찾아들자 여기저기서 네온사인 간판이 빛나기 시작했다. 서면 성형외과 타운의 밀집된 네온사인은 유난히 빛을 발하며 일본인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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