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7

2000.06.08

“할리우드 게 섰거라” 아시아 영화 돌풍

국제영화제 잇따른 수상 ‘달라진 힘’…동양적 현대성·다양성 무장 세계 영화계 중심으로

  • 입력2005-12-20 12: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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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게 섰거라” 아시아 영화 돌풍
    올해 칸영화제의 경쟁작 명단은 다른 어느 해보다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영화제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는 경쟁작 선정을 통해 매번 세계영화의 새로운 흐름과 경향을 이끌어가고, 그럼으로써 계속해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 칸영화제에는 한 해만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새 천년의 영화까지 가늠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칸영화제에서 23편의 경쟁작 명단을 발표하자마자 거기서 어떤 공통분모를 끌어내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명단에는 무려 8편의 아시아권 영화가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2일의 페막식에서 중국 지앙웬의 ‘귀신이 문밖에 왔다’가 심사위원대상, 대만 에드워드 양의 ‘이이’(二二)가 최우수 감독상, 일본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가 국제비평가협회상, 이란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칠판’이 심사위원상, 홍콩 ‘화양연화’(왕자웨이 연출)의 량차오웨이가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최고의 신인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까지 이란 영화 ‘조메흐’와 ‘말들이 취하는 시간’을 각각 연출한 핫산 예크타파나와 바흐만 고바디에게 공동으로 돌아감으로써 아시아 영화가 앞으로 세계 영화계를 주도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올해 갑작스럽게 돌출한 이변이 결코 아니다. 1997년 칸영화제에서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와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가 공동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왕자웨이는 ‘해피투게더’로 감독상을, 일본 가와세 나오미는 ‘수자쿠’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같은 해 베를린영화제의 은곰상은 대만 차이밍량의 ‘하류’에,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은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에 돌아갔다. 1999년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중국의 장이모와 장위엔이 ‘책상서랍 속의 동화’와 ‘17년’으로 각각 황금사자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90년대의 세계영화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주요 감독들과 평론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 시기 최고의 감독으로 대만의 후 샤오시엔과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꼽고 있고, 기타노 다케시, 장이모,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왕자웨이, 관금붕,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베트남 출신의 트란 안훙, 그리고 장선우와 홍상수의 작품을 최고의 영화로 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칸영화제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최근 아시아 영화들에서 보이는 다양성과 현대성이다.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영화가 세계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서구 영화계에서는 자신들과는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도출된 특별한 영화라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의거해서 바라보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커스에게 영향을 미친 구로사와 아키라의 액션 연출, 그리고 미조구치 겐지의 롱테이크와 카메라 움직임, 오즈 야스지로의 360도 편집방법은 그 새로움으로 인해 서구영화계에 충격을 던졌다. 1980년대 5세대 중국영화가 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세계무대에 등장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구영화계는 중국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편집을 ‘차이니즈 몽타주’라고 일컬으면서 이번에는 경극과의 연관성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90년대의 이란영화에서 나타나는 현란한 색채 감각은 종종 페르시아 양탄자의 아름다움과 비교되었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일정하게 만족시켜주었던 아시아 영화는 그 지점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그 문화적 전통의 힘을 바탕으로 훨씬 더 많이, 멀리 나아갔다. 영화라는 기계장치와 조우했던 20세기에 아시아 각 나라에 펼쳐졌던 매우 고통스럽고 파란만장한 역사적 경험들은 영화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2차대전의 패배를 극복하면서 군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중국은 공산화 이후 문화혁명의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중국으로 다시 귀속되면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고, 대만은 중국 본토의 영향력에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고 멀리 이란은 이슬람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고민중이다.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아시아 각 국의 역사적 경험들을 영화는 고스란히 떠안았다. 급속하게 진행된 근대화와 서구화, 자본주의와 경제성장 속에서 심해진 빈부의 격차, 농촌은 파괴되고 전통적 가치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반드시 청산돼야 할 봉건적인 잔재가 버티고 서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영화는 때로는 전통을 완전히 박차고 나아갔다가 다시 전통에의 향수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또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해가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시도해왔다.

    그러니까 각 국의 역사적 특수성에 아시아의 공통된 경험이 겹쳐지고 이제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전지구적인 관심사가 다시 겹쳐지는 것이다. 그 겹겹의 틀 속에서 아시아 감독들은 작업하고 있는 것이며, 그 중첩된 고민의 무거운 고통이 무궁무진한 저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쿼터제가 폐지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영화산업은 거의 궤멸 직전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고 있기 때문에 완성된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시아영화는 서구의 어느 곳보다 활력에 넘쳐 있다. 그리고 아시아 영화의 힘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것은 분투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감독들의 피가 아시아 각 국의 영화계에 쉴새없이 수혈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변함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선배 세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재능 있는 신진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대만에도 거장 후 샤오시엔의 뒤를 이을 확실한 재목들이 버티고 있다. 가장 풍성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일본. 오장, 중견, 신예들이 골고루 뛰고 있고 뮤직비디오, TV드라마, 비디오물을 통해 영화계에 입성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신인류의 감성을 대변하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칸영화제 사상 최연소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란의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이제 겨우 20세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미르 나데이,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 거장 감독들이 터를 닦아놓은 80년대 이후 이란영화는 삼엄한 검열 아래서도 산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크게 번성하고 있다.

    유럽영화는 늙어가고 있고 부유한 할리우드 영화는 상업영화의 피로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지금, 한국영화와 더불어 아시아영화야말로 새 천년의 세계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희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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