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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난 5월15일 한미합동조사단이 구성된 뒤 매향리 쿠니사격장에서는 사격훈련이 중단됐다. 주변 3000여 주민들은 반세기만에 되찾은 평온함에 놀라 “저녁에 텔레비전 보는 재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전화 통화할 때 악다구니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매향리에 유독 타조 사육농가가 많은 것은 최고 150데시벨에 이르는 사격훈련 소음에 다른 가축들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미국에서는 90데시벨이 넘는 지역은 사람 살기에 부적합하다고 판정하는데 100데시벨이 훨씬 넘는 곳에서 매향리 주민들은 반세기를 버텼다.

쿠니사격장은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주일미군을 포함, 동남아에 주둔하는 미 공군기들의 폭격연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조사 결과 주민피해가 미군의 전적인 잘못이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배상금의 25%를, 미군이 75%를 부담하고, 공동책임일 경우 두 나라가 균등하게 부담하도록 돼 있다. 처음부터 불평등한 관계였던 것이다.

주한 미군은 누구를 위해 주둔하나. 한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인가. 다른 나라에 유례 없이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는 자주국가인가? 매향리 사건은 우리에게 또다시 이런 의문을 품게 했다.

미군은 전국 7400여 만 평에 이르는 95개 기지에 대해 한푼의 임대료도 내지 않으며 임대기간조차 정하지 않고 사용한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주권 침해다. 임대료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군기지나 사격장 주변에서는 소음으로 인한 난청,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환경오염, 사격장 오폭 피해, 가옥균열, 가축불임, 기지주변의 개발제한, 공여지로 인한 사유재산권 침해, 하천변 공사비 협조로 인한 장마철 수해 등 피해상황을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인권침해는 또 어떤가. 최근 전북 군산에서 만취상태인 미군 병사의 운전 중 추돌사고로 한국인 한 명이 숨졌는데도 사고 며칠 뒤 그 병사는 치료를 구실로 유유히 하와이로 떠났다. 통계에 의하면 주한미군 범죄는 하루 평균 5건, 한해 평균 2200여 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조사권과 사법권은 미국에 있다. 무엇보다 주한미군의 구속수사가 불가능한 것이 문제다. 미군이 살인 강도 등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한국 사법당국은 구속수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역시 국가의 주권 침탈이다.



당연히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5월16일 127개 사회단체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이 개정된다 해서 한미관계의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게 간단치 않다.

미국 군산복합체는 매년 평균 10억 달러 상당의 무기와 부품을 한국에 팔고 있다. 우리 군의 무기는 거의 대부분 미국 것이다. 그 예를 우리는 린다김 로비사건에서 볼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군사상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점이다. 작전통제권이 환수되지 않는 한 군사적 종속국가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자주국가가 되지 못하는 한, 지금 한미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조차도 군사적, 정치적 차원에서의 문제일 따름이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와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미국의 손끝에서 춤추고 있다. 어찌 경제적 예속뿐인가. 보다 심각한 것은 문화적 예속이다. 문화적 예속은 한미간의 관계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적 정체성을 좀먹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미관계의 불평등이 유지되고 있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우리 사회 외부(미국)에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적 미국주의자, 미국적 신자유주의자, 미국적 세계화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와 미국의 관련성을 조명하고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지식인과 언론인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매향리 사격장을 폐쇄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0.06.01 236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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