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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근 금감위원장의 ‘고민’

“개혁 칼날 정말 안먹힌다”

취임 100일 제자리 걸음…대우차 처리, 서울은행 매각 ‘꼬인다 꼬여’

“개혁 칼날 정말 안먹힌다”

“개혁 칼날 정말 안먹힌다”
“요리보다 설거지가 귀찮고 표가 안나게 마련이다. 이헌재 전위원장의 후임은 누가 되든 불행한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올 1월19일 이헌재 전임 금융감독위원장이 재경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 금융시장의 전문가들이 내놓았던 촌평들이다. 재경부를 떠난 뒤 오랜 야인 생활을 거쳐 화려하게 장관으로 금의환향한 이헌재 전임위원장과 뒤치다꺼리에 시달릴 후임자의 상반된 처지를 압축한 표현이다. 불행하게도 이같은 촌평에 금감위와 금감원 간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이러한 평가는 이용근(李容根·59)위원장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그의 취임 일성은 ‘대우채 환매에 대한 유동성 대책은 충분하다’는 매우 실무적인 것이었다. 이헌재 시절 해체된 대우그룹의 유탄은 후임위원장에게 ‘태풍의 눈’으로 다가왔다.

이헌재장관은 DJ정권 출범초기 비상경제대책위에서 재벌 금융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한 뒤 청와대의 강력한 신임을 바탕으로 쾌도난마식 행보를 보였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뒤 거국적으로 위기극복의 공감대가 형성, 유리한 환경이 갖추어졌고 공적자금 64조원이란 ‘실탄’도 마련됐다. 그러나 모든 집단을 만족시키는 구조개혁의 해법이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법. 2년 동안 잠복했던 기득권층과 이해집단의 반발은 야당의 승리로 끝난 총선 이후 거칠게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용근위원장의 고민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실탄을 장전하는 작업 역시 순탄치 못하다.

전임위원장은 삼성자동차 부채처리 방안으로 이건희삼성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 출연카드를 덥석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카드는 ‘계약자 지분을 얼마나 인정하느냐’를 놓고 팽팽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은행권의 채권확보에 연결돼 있어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고 어느 쪽 손을 들어주더라도 언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다.



대우차 처리는 또 어떤가.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모두 해외매각을 강력히 반대하는 가운데 개인채권자들까지 ‘차 매각대금을 우선 빚 갚는데 사용하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근근이 버텨오던 대우 워크아웃 절차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대우그룹 해체과정에서 전임위원장은 화려하게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둘렀지만 후임위원장은 아직도 험로를 걷고 있다.

해외매각에 실패, 또다시 공적자금에 기대고 있는 서울은행 처리도 난제다. 사가려는 해외은행은 보이지 않고, 도이체방크의 자문계약으로 정상화 기틀이 마련될지도 미지수다. 문제의 근원은 매각 실패에서 비롯되지만 이제는 공적자금 투입을 피하기 어려워 덤터기만 쓰게 됐다. 이위원장은 광주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 호남인맥으로 분류된다. 과거 정권에서 재무부 통이었지만 88년 이후 관세청 국세심판소 ADB 등 외곽을 맴돌았고 DJ정권 들어 뒤늦게 관운이 트였다. 이 때문인지 언론 등 대외관계에서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위원장의 공식 기자회견은 20분을 넘지 않는다. 서너 차례 기자실에 들르긴 했지만 충분한 배경설명 없이 회견문만 낭독하고 위원장실로 돌아가기 일쑤. 이헌재 전위원장이 수시로 기자실에 들러 평가가 엇갈리는 구조조정 현안의 흐름을 정부 쪽으로 돌렸던 것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취임 100일이 지났지만 이위원장은 여전히 이헌재장관이 심어놓은 ‘인재풀’을 놓지 않고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며 교수-전문가들을 대거 금감위 금감원에 충원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헌재위원장이 재경부로 옮겨가면서 이들의 추진력은 옛날 같지 않다. 한 관계자는 “급한 김에 감독원 사람들을 뽑아 쓰려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현 위원장의 남다른 고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취임 100일이 지났지만 ‘전임 위원장의 그늘만큼’ 이위원장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주간동아 2000.05.11 233호 (p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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