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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이란 자리

서열 2위 … 입법부 예산 인사권 한손에

대통령도 국회에선 壇下…각국서 ‘최고의 VIP’ 예우

서열 2위 … 입법부 예산 인사권 한손에

서열 2위 … 입법부 예산 인사권 한손에
관용차량번호인 ‘서울1가 1001’. 이런 ‘넘버원 번호판’을 단 승용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서울1가 1002’의 주인은 누구일까?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다.

당연히 ‘서울1가 1003’은 사법부 우두머리인 대법원장의 몫이다.

헌법은 오히려 행정부보다 입법부를 ‘중시’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헌법 1장은 총강, 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고 있으며, 3장엔 국회, 4장엔 정부(4장 1절 대통령), 5장엔 법원이 나온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는 헌법 제66조 1항대로 한다면 권력서열이나 의전서열에서 국회의장을 대통령 앞에 놓기는 힘들다. 따라서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서열 2위로 보는 게 타당한 듯하다.

14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상임고문(민주당)은 의장의 권위를 이렇게 표현했다.



“외국의 국가 원수도, 심지어 우리 나라 대통령도 국회에서 연설을 할 때면 사회자인 국회의장 자리보다 아래에서 연설한다. 또한 사회자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 국가 원수도 국회 내에서는 국회의장의 말을 듣는 게 순리다.”

이런 자부심만큼이나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게 국회의장 자리다. 입법활동에 관한 한 의장의 힘은 대단하다.

법률공포는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나 국회의장은 예외적으로 법률공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법률안을 건네 받은 뒤 15일 이내에 공포 또는 재의 요구를 하지 않거나 재의한 법률이 다시 국회를 거쳐 정부로 넘어갔을 때 대통령이 5일 이내에 공포하지 않으면 의장은 뜻대로 그 법률을 세상에 공포할 수 있다.(헌법 53조)

대통령에게는 사후통지만 하면 된다.

국회의장은 국회의원이 품위에 어긋나게 다른 자리를 겸직할 경우 사임을 권고할 수 있다. 국회 폐회 중 국회를 떠나려는 의원이나 상임위원장의 사직서도 수리할 권한이 있다. 국회의원의 휴가 허가권도 의장에게 있다.

국회 안에서 의장은 예산과 인사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3000명이 넘는 국회식구(국회사무처 1166명, 국회의원회관 1794명, 국회도서관 251명)와 1887억원의 예산(2000년도 기준)이 의장의 소관사항이다. 국회에 소속된 5급 이상 공무원의 임용권도 의장에게 있다. 국회사무처가 시행하는 입법고등고시 합격자의 임명권도 의장의 권한이다.

국회의장의 직무는 국회법에 명시돼 있다.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국회의장이 의전적으로 대단한 예우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회의장은 또 국가의전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 각국의 국가원수나 의회의장급의 고위인사들이 방한하면 대부분 국회의장을 예방한다. 국회의장이 외국 정부나 의회의 초청으로 순방외교를 펼치기도 한다.

해외를 오가는 국회의장에게 공항은 ‘최고의 VIP’ 대접을 한다. 의장은 국제선 청사 3층 귀빈실을 이용한다. 출입국검사장도 거치지 않고 전용통로로 비행기에 오른다. 장관과 국회의원은 탑승 때 출입국검사장을 통과해야 하니 격이 확연히 다른 셈이다.

국회의장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다.

의장실에서만 1명의 비서실장(차관급)과 10명의 비서관(1급상당∼5급상당)이 의장을 모신다. 이중에는 의장의 의전을 감안해 외교부에서 파견한 의전담당비서관(외교부이사관)이 포함돼 있다.

의장실 소속은 아니나 국회사무처 국제국에 있는 의전통역관 7명도 의장의 대외활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국회 전체로 보면 의장은 1명의 장관급(국회사무총장)과 4명의 차관급(비서실장 입법차장 사무차장 국회도서관장)을 휘하에 두고 있다. 의장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는 국회사무총장이 따르도록 돼있다. ‘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요인에게 경호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찰청이 파견한 두명의 경찰 경호요원이 항상 의장을 그림자처럼 따른다. 이들은 경찰간부인 경위들이다.

의장실 전체의 크기는 약 400평 정도다. 부의장 사무실이 100평이 채 안되는 것과 비교된다. 의장실 입구에는 예복차림의 의장병이 항상 부동자세로 서있다.

의장은 어디에 살까. 공관 주소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728의 48이다. 대법원장공관과 외국공관이 밀집한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대지 2900평, 연건평 660평의 3층 건물로 건축비만 163억원(땅값 111억원 포함)이 들어간 곳이다.

의장공관은 대통령관저와 마찬가지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옥외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장소다. 누구라도 주변 100m 이내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하면 체포된다.

국회의장은 국무총리에 준해 급여와 경비를 지급받는다. 국회사무처 회계과에 따르면 국회의장이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액수는 1540만원대.

우선 일반수당과 입법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매달 564만원을 받는다. 여기에다 일반수당에 대해 연 950%의 상여금(기말수당 정근수당 체력단련비 등 명목)이 나간다. 연 3250만원이니 월로 치면 271만원 정도.

의장은 또 373만5000원의 특정업무비와 200만원의 직급보조비를 받는다. 사무실 운영비와 차량유지비 등으로 매달 받는 돈도 137만원 가량 된다. 이것이 의장의 고정수입이다.

여기에다 의장은 예비금에서 지급되는 기관운영비도 쓸 수 있으니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란 쉽지 않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의장과 부의장 사이에도 예우 측면에서 100가지 이상의 차이가 난다”며 “그러니 의장과 의원은 비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렇게 대단한 자리이니, 이를 마다할 정치인이 거의 없는 게 당연하다. 새로 구성될 16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4·13총선’ 당선자 중 6선 이상은 7명이나 이중 9선의 JP를 빼고는 모두 국회의장직이 마음에 있는 듯하다.

48년 제헌국회이래 입법부가 배출한 의장은 양원제였던 5대 국회를 포함, 모두 16명. 하지만 헌정사에 비친 이들의 위상은 매우 왜소하다.

대부분 청와대(또는 경무대)의 최고통치자를 위한 ‘방패막이’나 ‘로봇’ 역할에 충실했다. 명령만 있으면 악법이라도 만들었고, 야당총재까지도 제명시켰다. 정권이 바뀌어도 되풀이되는 날치기에서도 그들은 주역이나 방조자로 활약했다.

제헌의회의장이었던 이승만 전대통령과 그의 오른팔로 3, 4대 민의원의장을 맡았던 이기붕 전부통령은 권력에 탐닉, 부정선거를 획책하다가 망명과 자살로 최후를 맞았다.

박정희정권에서의 국회의장 중 대표적 인물은 이효상씨. 그는 63∼71년 무려 네 차례나 의장직을 맡은 ‘최장수 의장’이다. 하지만 그가 입법부 위상을 강화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는 지역감정 조장 정치인의 원조라는 오명만을 남겼다. 그는 67년 6대 대선 때 박정희후보를 위한 영남유세에서 “경상도 사람 대통령 만들어 한번 잘살아 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9대 국회의장이었던 정일권씨는 건국이래 최대의 섹스 스캔들로 꼽혔던 정인숙사건과 관련, 풍문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91년 정여인의 아들로부터 친자확인소송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5공화국 이후의 의장은 유난히 비리 또는 투기 연루자가 많았다. 11대 의장이었던 정래혁씨는 투서에 걸려 정치생명이 끝났다. 그는 당시 민정당 대표직은 물론 100억원대 부동산의 절반 가량을 국가에 헌납했다.

13대 전반기 의장이었던 김재순씨와 13대 후반기부터 14대 전반기 의장을 역임한 박준규씨는 93년 재산공개 때 ‘치부’로 곤욕을 치렀다. 김씨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치 뒤켠으로 사라졌다.

YS시대의 의장이었던 황낙주(14대 후반기) 김수한씨(15대 전반기)도 비리사건에서 빠지지 않았다.

존경받은 인물도 없지 않다. 제헌의회 후반기의장과 제2대 민의원의장을 지냈으며, 이승만정권에 맞서 싸운 해공 신익희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54년 의장 임기를 마치고 공관을 나왔을 때 그에겐 자기 소유의 집이 없었다. 56년 3대 대선에 출마, 한강백사장 유세에서 30만 청중을 모았던 그는 48시간 후 호남선 열차 안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미망인 김해화여사는 그후 25년간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12대 국회의 이재형의장과 14대 국회의 이만섭의장도 전임자들과는 좀 다른 인상을 남겼다. 이만섭의장은 “날치기 사회는 보지 않겠다”고 한 취임 초의 공언대로 93년 정기국회에서 예산안과 추곡수매안의 날치기 통과에 협조하지 않았다.





주간동아 2000.05.11 233호 (p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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