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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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사진작가 김수남 굿판에서 찾아낸 사람과 삶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입력2016-04-18 11: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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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시 감포의 겨울바다가 싱그럽다. 1993년 나온 4장짜리 앨범인 ‘김민기 전집’의 표지 사진이다. 당시 스튜디오 안에서 촬영하던 다른 앨범 사진들과 비교하면 김민기의 표지 사진은 파격적이었다. 1집은 소극장 안 모습이고, 2집은 볏짚을 태우는 논을 배경으로, 3집은 감포 앞바다에서, 4집은 남산 소나무를 찍었다. 가수 김민기는 그저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모습이다. “김민기 씨는 수줍음을 많이 타서 카메라 렌즈를 보지 않는다. 당시 경주박물관 이영훈 선생 숙소에서 2박3일 함께 생활하며 자연을 배경으로 김민기 씨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이 사진들을 찍은 김수남(1949~2006)의 사진 조교 백지순의 회고다.

    김수남은 사진 작업을 할 때 민속학에서 ‘라포르(rapport)’라고 부르는 피사체와의 친밀감 형성을 중시했다. 그의 대표작인 굿 사진을 찍을 때도 굿판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일까. 동료 사진작가 서헌강은 “김수남의 굿 사진에는 굿도, 신도 안 보이고 사람과 삶이 보인다”고 말한다. 신에게 제물을 바친 후 무당이 나와 노래와 춤으로 절절이 빌며 운명을 바꿔달라는 굿판의 주인은 늘 사람이었다.  


    사진작가 김수남을 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는 ‘동아일보’ 사진기자였고, 예인들을 찍는 사진작가였으며, 굿판에서는 별명 ‘큰 심방(박수)’으로 불렸다. 또 아시아 오지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을 영상에 담는 문화인류학자였다. 무당이 펼치는 굿판 사진은 그대로 기록이 됐다. 1970년대부터 전국 굿판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굿판 사진을 찍었다. 1970~80년대 굿판에서 만난 김수남은 ‘독특한 언론계 선배’였다. 하효길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좋은 장면이 나오면 먼저 자리를 독점하는 김수남이 불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진집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출판사 열화당에서 1983년부터 10년에 걸쳐 20권으로 출간한 ‘한국의굿’ 시리즈는 역작이었다. 한국일보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한국의 탈, 탈춤’ ‘아시아의 하늘과 땅’, 제주 해녀의 삶을 담은 ‘제주바다와 잠수의 사계’는 그대로 역사가 됐다. 사진 속 주인공은 거의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된 예인들인 안사인, 이동안, 김소희, 김숙자, 신석남, 하보경, 성금연, 한영숙, 박송암의 삶을 담은 ‘아름다움을 훔치다’를 보면 시대를 앞서간 그의 시선에 존경심이 든다. 정현기 문학평론가는 책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 김수남의 아시아 문화 탐험’ 발문에서 그를 ‘세계의 낯섦 속에 숨겨진 인류의 친화력을 찾아 나선 방랑자이며, 신성을 찾는 인류의 꿈을 채집하는 순례자’라고 평했다.

    4월 5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로비에서 굿 관련 대표작 100점을 전시하는 특별전 ‘김수남을 말하다’ 개막식이 열렸다. 김수남이 찍은 사진자료 17만630점의 기증을 기념하는 전시회다. 고인의 아들 김상훈은 “아버지의 삶이, 작품이 잊히는 것이 두려웠다. 남아 있는 사진의 가치를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활용되기를 원해 사후 10년 만에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수남은 2006년 2월 태국 치앙라이에서 촬영 도중 숨졌다. 김수남기념사업회장인 김인회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는 인멸돼가는 문화 원형들을 누구보다 빨리 언론인의 감으로 잡아내 영상으로 남겨 사진이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게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이번 전시회는 6월 6일까지 열리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미술캐스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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