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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불이 이글이글 김이 모락모락

안악 3호분 벽화 ‘부엌도’

  •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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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 벽화 ‘부엌도’, 고구려 357년.

‘부엌도’라 부르는 이 그림은 황해도 안악군에 소재한 고구려 고분 ‘안악 3호분’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안악 3호분 안에 고분을 조성한 연유와 사람, 제작연도 등이 한문으로 기록돼 있어 우리는 시공을 넘어 1660년 전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 특히 식생활 문화를 매우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고분과 관련해서는 당시 귀족 내지 장군이던 동수(冬壽)의 묘라는 학설과 고국원왕의 왕릉이라는 학설로 나뉩니다. 동수는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에 봉사하다 336년 고구려로 망명해 357년 세상을 떠난 장군입니다. 그러나 무덤 규모가 큰 데다 완전 의장을 갖춘 256명 이상의 고구려군 행렬도와 깃발 등으로 보아 고국원왕이란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고분은 357년 조성된 당대 최고 지배계층의 무덤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화면 맨 왼쪽에는 삼각형 지붕으로 된 부엌에서 하녀 3명이 각자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크게 그려진 여인은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왼손에 국자를 들고 시루 속 음식을 휘젓거나 누르는 모습입니다. 여인의 상반신만큼이나 큰 검은색 시루 속에 흰색 음식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분량으로 보면 이 집에 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오른손에 둥글고 큰 표주박 같은 것을 쥐고서 음식을 퍼 담으려 합니다. 표주박 아래 음식을 담을 좀 더 큰 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이 시기 고구려 서민은 조, 피, 기장, 수수 등 다소 거친 음식을 주로 먹었고 쌀은 귀족의 주식이었습니다. 조리도구는 주로 항아리나 시루였는데 흙으로 만든 항아리는 바닥에 구멍이 없어서 음식을 끓일 수 있는 반면, 이물질이 나오거나 흙 맛이 음식에 배어 맛을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한편, 시루는 바닥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쌀이나 곡식을 쪄 먹을 수 있는 도구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쌀을 시루에 담아 쪄내면 여러 날 저장해서 먹을 수 있고, 콩(대두)을 재배했던 고구려에서 된장 같은 발효식품에 두루 활용할 수 있어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작품 속 그릇은 분명히 시루인데 시루 속에 떡 대신 흰죽이 있고 여인이 그 죽을 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솥은 시루처럼 단단한 재질로 만든 항아리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화덕처럼 생긴 아궁이 앞에는 작게 표현된 여인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불씨를 보고 있습니다. 아궁이의 연기는 부엌 출입문 옆에 있는 굴뚝을 통해 배출됩니다. 부엌 오른쪽에는 세 번째 하녀가 다리가 8개인 사각형 소반 위에 2열로 접시 같은 그릇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 식기로 보입니다. 하녀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같은 머리 모양(힐자계)을 하고 있는데, 고구려의 다른 벽화와 부엌을 묘사한 중국의 그림에서도 이러한 머리 모양이 등장합니다.
중앙의 푸줏간에는 4개의 거대한 쇠스랑 고리에 노루, 돼지 등 짐승고기가 통째로 매달려 있습니다. 고구려는 사냥기술이 발달해 상대적으로 육식을 많이 했고, 특히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인은 사냥한 짐승고기를 된장, 간장 같은 저장음식으로 간을 한 뒤 훈제해 구워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국식 불고기 문화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차고의 수레는 소가 끄는 것으로 평남 강서군 약수리 벽화무덤의 ‘행렬도’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엌도’는 무덤 주인공이 살던 당시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해 고구려의 복식, 음식, 건축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주간동아 2016.01.20 1022호 (p77~77)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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