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7

2023.02.17

정찰풍선이 만든 美·中 새로운 戰場 ‘근우주’

위성보다 활용도 높은 정찰풍선… 중국 기관지 “심해 잠수함처럼 오싹한 킬러 될 것”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2-1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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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4일(현지 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상공에 중국 정찰풍선이 떠 있고, 그 아래로 미 공군 F-2 2전투기가 지나가고 있다(왼쪽).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풍선을 관통하자 잠시 뒤 하늘에서 뿌연 연기와 함께 풍선 잔해가 추락하고 있다. [AP 뉴시스· CNN 방송 홈페이지 캡처]

    2월 4일(현지 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상공에 중국 정찰풍선이 떠 있고, 그 아래로 미 공군 F-2 2전투기가 지나가고 있다(왼쪽).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풍선을 관통하자 잠시 뒤 하늘에서 뿌연 연기와 함께 풍선 잔해가 추락하고 있다. [AP 뉴시스· CNN 방송 홈페이지 캡처]

    미국이 자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 정찰풍선을 격추하면서 양국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중국이 정찰풍선을 운용하는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2월 4일 오후 2시 39분(현지 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영공에서 F-22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AIM-9 공대공미사일로 18∼20㎞ 고도에 떠 있던 중국 정찰풍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버스 3대를 합친 크기의 중국 정찰풍선이 1월 28일부터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 알류샨열도 인근에서 비행을 시작해 캐나다를 거쳐 미국 영공으로 들어와 북서부를 지나는 등 미국 본토를 횡단했다”면서 “이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북서부 지역에는 전략폭격기와 150여 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배치된 몬태나주 말름스트롬 공군기지, 노스다코타주 미노 공군기지 등 핵무기 격납고와 군사기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 고위 관리는 “U-2 정찰기가 촬영한 고해상 이미지에 따르면 중국 풍선은 신호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춘 정찰용”이라면서 “중국 정찰풍선 내 장비들은 통상적으로 기상 기구에 탑재하는 장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리는 “중국 정찰풍선에는 통신을 수집하고 지리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다중 안테나와 다중 능동 정보 수집 센서 작동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대형 태양광 전지판 등이 장착돼 있었다”고 공개했다.

    美, 정찰풍선 운용 배후 인민해방군 지목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해군 폭발물 처리반 병사들이 중국 정찰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미국 해군]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해군 폭발물 처리반 병사들이 중국 정찰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미국 해군]

    미 국방부 발표 등을 볼 때 중국이 미국에 정찰풍선을 보낸 이유는 정보 수집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첩보 위성을 통해 미국 군사시설 등을 꼼꼼히 감시하는 중국이 정찰풍선을 운용하는 이유는 정찰풍선이 지닌 장점 때문이다. 우선 정찰풍선은 위성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할 수 있고, 통신이나 전자 신호를 가로챌 수 있다. 또 방향 조종이 가능하며, 오랜 시간 한곳에 머물 수도 있다. 게다가 정찰풍선은 섬유로 만들어 탐지와 식별이 어렵다. 레이더에는 작은 새 크기 물체로 나타난다. 민간용 기상풍선과도 구분이 힘들다. 가격도 저렴해 위성보다 가성비가 좋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정찰풍선은 하늘의 강력한 눈”이라며 “미래에 풍선 프로그램은 심해 잠수함처럼 오싹한 숨은 킬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2월 9일 중국이 북미, 남미,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유럽 등 5개 대륙 40여 개국에 정보 수집용 정찰풍선을 보냈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격추된 중국 정찰풍선은 첩보 신호를 탐지하고 수집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정부는 정찰풍선 운용 배후로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목하면서 주권 침해 행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앞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월 6일 워싱턴에 주재하는 한국 등 40개국 150명의 외교관을 대상으로 중국 정찰풍선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설명회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셔먼 부장관은 중국이 정찰풍선을 이용해 대규모 공중 감시 프로그램을 운용해왔으며 인민해방군과 연계돼 있다고 브리핑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들은 “정찰풍선은 중국 정부 직속 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 산하 우주기술연구소가 개발한 것”이며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우주와 사이버 분야를 담당하는 ‘전략지원부대’가 운용을 맡아왔다”고 지적했다. 전략지원부대는 전자전과 우주전,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부대로 ICBM 등 각종 미사일을 관할하는 로켓군의 핵전쟁을 지원하며, 네이멍구와 하이난성에 있는 위성 발사 기지도 관리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이 남중국해 인근 하이난성을 본거지로 정찰풍선 부대를 운용해왔다”면서 “특히 2018년 이후 일본과 인도, 베트남, 대만, 필리핀을 포함해 중국의 전략적 관심 대상에 해당하는 지역의 군사 자산들을 감시해왔다”고 전했다. 또한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 현대화에 매진하는 한편, 기습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기와 전략을 개발해왔다”며 “정찰풍선도 그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풍선은 허난성에 있는 주저우(株洲)고무·디자인 연구소가 제작했다”고 보도했다.

    극초음속미사일과 ICBM 통과하는 근우주

    중국의 공산당 일당 체제를 비판해온 장톈량 전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중국 정부가 풍선을 민간 기상 연구에 사용해왔다는 주장은 절대 말도 안 된다”며 “중국에서는 민간의 기상 연구 자체가 엄격히 금지된 행위이고 주저우 연구소는 무기와 장비 연구·생산 2급 면허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정부는 “과학 연구를 위한 민간용 풍선이 실수로 미국 영공에 들어갔을 뿐인데 미국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이를 정찰풍선으로 둔갑시키는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이 정찰풍선을 정보 수집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NN 방송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근우주(near space)’로 불리는 지역을 미국과의 ‘21세기 새로운 전장(戰場)’으로 간주하고 정찰풍선을 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우주는 성층권과 중간권을 합쳐 부르는 용어로, 중국에선 ‘임근공간(臨近空間)’이라고 칭한다.

    지구는 대기권이라는 공기층에 싸여 있다. 대기권은 고도별 기온 변화에 따라 4가지로 구분된다. 지표면에서 고도 12㎞까지를 대류권, 12~50㎞를 성층권, 50~80㎞를 중간권, 80~700㎞를 열권이라고 부른다. 외기권은 지구 대기권의 가장 외곽을 형성하는 층으로 고도 700~1만㎞다. 아래로는 열권과 접해 있으며, 외기권 바깥은 우주 공간이다. 인공위성이 운용되는 공간이 외기권과 우주공간이다.


    중국 국영 CCTV가 2019년 극초음속미사일 모형을 탑재한 정찰풍선을 공개했다. [CCTV]

    중국 국영 CCTV가 2019년 극초음속미사일 모형을 탑재한 정찰풍선을 공개했다. [CCTV]

    영국 BBC 방송이 공개한 중국 정찰풍선 제원과 운행 고도. [BBC 방송]

    영국 BBC 방송이 공개한 중국 정찰풍선 제원과 운행 고도. [BBC 방송]

    근우주는 전투기·폭격기 등 군용기와 민간 항공기가 운항하는 상공의 고도보다 높고 인공위성이 돌고 있는 고도보다는 아래에 위치한 중간 공간이다. 고도 12~80㎞인 근우주로는 극초음속미사일과 ICBM 등이 통과한다. 이 때문에 중국군은 2018~2020년부터 근우주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중국 군사 전문가들은 근우주가 미국 등 서방과의 새로운 전쟁터가 될 수 있기에 근우주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등 서방은 태양열 무인기(드론)와 극초음속 비행체 등을 개발해 근우주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중국이 지난해 9월 자체 개발한 태양열 무인 정찰 드론 ‘치밍싱(启明星)50’의 첫 시험비행을 실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날개 길이가 50m 달하는 이 무인 정찰 드론은 최대 비행 가능 고도가 20㎞나 된다. 중국은 미국 헬리오스와 영국 제퍼에 이어 태양열 무인 드론을 보유한 세 번째 국가가 됐다. 주셩리 중국항공공업그룹 책임연구원은 “이 무인 드론은 군사용 고공 정찰뿐 아니라 지리 측량, 통신 등 위성과 유사한 기능의 임무 수행에도 나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군이 정찰풍선을 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목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도 근우주 활용 무기 개발 나설 듯

    중국 정부가 설립한 중국과학원 산하 우주기술연구소는 고고도 풍선과 성층권 비행선을 개발하는 등 근우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발표한 근우주 관련 논문만 1000여 편에 달한다. 특히 중국 과학자들은 정찰풍선을 통해 근우주를 통과하는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도움이 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대기 흐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정찰풍선의 또 다른 임무라고 보고 있다. 인공위성은 중국의 미사일 운용에 필요한 대기 관련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지만 정찰풍선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칼 슈스터 전 미국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 작전국장은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미사일 유도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우주의 대기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찰풍선 사건에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월 5~6일 중국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비롯한 국제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는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2월 7일 취임 후 두 번째 국정연설에서 “만약 중국이 우리 주권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찰풍선과 관련된 5개 기업과 1개 연구소를 수출 제재 명단에 올리는 등 제재 조치를 내렸다. 아울러 미국 정부도 근우주 관련 연구는 물론, 이를 활용한 무기 개발에도 나설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근우주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경쟁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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