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러시아 약화 틈타 중앙아시아 영향력 확대 나선 中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존 주종관계 붕괴… 중국이 ‘큰 형님’으로 부상할 듯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러시아 약화 틈타 중앙아시아 영향력 확대 나선 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해 9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함께 카자흐스탄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GT]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해 9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함께 카자흐스탄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GT]

카자흐스탄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다. 국토 면적은 270만㎢(세계 9위)로 한반도의 12배나 된다. 또 “화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원소가 존재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석유(세계 12위)와 천연가스(22위)를 비롯해 우라늄(2위), 크롬(1위), 망간(2위), 금·은·구리·아연·철·석탄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중앙아시아 최대 자원부국이다.

이런 카자흐스탄은 18세기부터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다 1936년 소련에 편입됐고, 1991년 옛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2019년까지 친러시아 성향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29년간 철권통치했다. 또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을 옛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의 ‘위성국’으로 만들었다. 후계자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지난해 1월 물가 폭등에 항의하는 사상 최대 반정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비화하면서 정권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최정예 공수부대를 카자흐스탄에 급파해 유혈사태를 수습하는 데 도움을 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철저한 ‘거리두기’

러시아는 이처럼 지금까지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옛 소련에 속했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뒷마당’인 중앙아시아 5개국을 ‘관리’해왔다. 이들 5개국도 그동안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러시아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5개국의 ‘주종(主從)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러시아는 1년 전만 해도 중국의 진출에도 중앙아시아 5개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5개국은 러시아에 대해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5개국 은행이 러시아의 미르 카드 결제를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거리두기 사례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제재로 국제결제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됐다. 이에 따라 세계 3대 카드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 아멕스는 지난해 3월 6일부터 러시아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2015년 자체적으로 만든 국가지불카드시스템(NSPK)인 미르 카드를 통용해왔다. 그럼에도 중앙아시아 5개국 은행이 미르 카드 결제를 중단한 것은 서방을 지지하거나 러시아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자국 국익을 위해서다. 이들 5개국이 서방의 제재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경제가 붕괴하거나 고립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5개국은 지금까지 러시아가 강제로 병합해 자국 영토라고 선언한 우크라이나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 및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를 인정한 적이 없다. 물론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승인한 적도 없다. 이들 5개국은 유엔 총회 등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에 무기 등을 지원한 바도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지난해 10월 독립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지난해 10월 독립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실]

“러시아는 어느 때보다 그들을 필요로 하지만…”

더욱이 이들 5개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고전하고 국력이 약화하자 독자적인 행보에 나섰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떠난 수백 개 서방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또 징집 명령을 피해 탈출한 러시아인 수만 명의 중간 기착지 역할도 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파리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에너지, 교육 부문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한 것은 7년 만이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독립국가연합(CIS: 1991년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가 된 9개국이 결성한 정치공동체)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리도 존중받고 싶다”며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과거 소련처럼 대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정치 분석가 루스탐 부르나셰프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영향력이 약화하는 러시아에 불만을 표시하고 평등한 관계를 수립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이제는 ‘큰 형님’ 역할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러시아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3자 천연가스 연맹’ 결성을 제의했지만 냉담한 반응에 직면해야 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주요 고객이던 유럽이 자국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판매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런 구상에 대해 주라벡 미르자마흐무도프 우즈베키스탄 에너지장관은 “러시아와의 가스 협력은 상업·판매 계약으로만 성사될 수 있다”며 “우리는 절대 가스를 대가로 정치적 상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로만 바실렌코 카자흐스탄 외무차관도 “3자 천연가스연맹 결성은 현재까지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의 제안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자칫하면 서방 제재로 자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국익에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무르 우마로프 미국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연구원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가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다”며 “이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노선 변화 기조에 따라 미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과 일본 등은 5개국과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은 이들 5개국을 방문해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고위대표도 지난해 11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EU는 카자흐스탄을 새로운 에너지 공급처로 삼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도 지난해 12월 24일 도쿄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 외교장관들과 회담을 열고 식량·에너지·물류 공급망 확보와 인적 교류를 통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훔치고 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인 바커투 통상구에 중국 대형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GT]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인 바커투 통상구에 중국 대형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GT]

이들 5개국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와 전쟁에 따른 러시아의 영향력 쇠퇴는 중국으로선 전례 없는 기회가 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2020년 1월 미얀마 이후 해외 방문을 중단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차례로 방문한 것은 이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노골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2013년 시 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곳이고,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이 공을 들여온 상하이협력기구(SCO: 2001년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6개국이 설립한 국제조직)의 지난해 의장국이다. 딩샤오싱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유라시아연구소장은 “올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10주년이 되는 해로 중앙아시아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시범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무엇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더욱 강화하는 등 중앙아시아 5개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올해 자국의 신장웨이우월(위구르)자치구 카스에서 키르기스스탄 카라수를 거쳐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을 잇는 총길이 577㎞의 CKU 철도 건설에 나설 예정이다. 이 철도는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유럽으로 가는 노선으로, 3국은 1997년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하고 철도 연결을 추진해왔지만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러시아 측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열린 CSTO(옛 소련에 속했다 독립한 국가들의 집단안보조약기구) 회의 당시 푸틴 대통령에게 CKU 철도 건설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푸틴 대통령도 더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카자흐스탄에 중앙아시아 최초 위안화 결제·청산은행을 설립했다. 이에 따라 중국 위안화가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 더욱 활발하게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교역 규모는 1992년 3억 달러(약 3825억 원)에서 2021년 252억 달러(약 32조1300억 원)로 늘어났다. 알렉산드로 아두이노 영국 킹스칼리지 차이나연구소 부교수는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훔치고 있다”면서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에너지 등 각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리셔 일카모프 영국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면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의 원심력에서 벗어날 것이 분명하며 중국이 중장기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큰 형님’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간동아 1372호 (p56~58)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74

제 1374호

2023.01.27

일론 머스크 영향력 추월한 정의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