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5

2021.09.03

의료진 유니폼도 ‘국대’ 수준으로, 의료복 스타트업 ‘피그스’

기능성, 세련미 다 잡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급성장, IPO 성공

  • 뉴욕=강지남 통신원

    jeenam.kang@gmail.com

    입력2021-09-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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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그스 창업자 해더 해슨(오른쪽)과 트리나 스피어. [피그스 홈페이지 캡처]

    피그스 창업자 해더 해슨(오른쪽)과 트리나 스피어. [피그스 홈페이지 캡처]

    서울과 뉴욕의 지하철 풍경은 사뭇 다르다. 뉴욕 지하철에서는 정말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만날 수 있다. 객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힙합 춤을 추는 사람도 자주 보인다. 또 하나 뉴욕 지하철이 서울과 다른 점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쌤’들처럼 수술복과 비슷해 보이는 옷을 입은 승객이 많다는 사실이다. 뉴욕의 의사, 간호사는 출퇴근 시 파란색이나 초록색 의료복을 입은 채 지하철을 타곤 한다.

    의류산업도 기술 경연장이다. 나이키, 아디다스는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유니폼으로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 발휘를 돕는다. 룰루레몬의 레깅스는 뛰어난 신축성으로 좀 더 편안하게 요가 자세를 취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의료복도 고도의 기술을 활용해 의료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제품으로 공급되고 있을까. 미국 의료복 전문 스타트업 피그스(Figs)는 바로 이러한 노력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시보리와 셔링 들어간 의료복

    한국과 달리 미국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는 의료복을 개별적으로 마련한다. [피그스 홈페이지 캡처]

    한국과 달리 미국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는 의료복을 개별적으로 마련한다. [피그스 홈페이지 캡처]

    “이렇게 헐렁하고 불편한 옷을 입은 채로 16시간을 근무했지 뭐야.”

    10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패션 사업가 해더 해슨은 간호사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 이런 하소연을 들었다. 해슨은 첨단기술을 적용해 운동선수용 의류를 만드는 의류업체들이 의료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해슨은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 출신인 트리나 스피어와 의기투합해 ‘국대 유니폼’처럼 성능이 뛰어난 의료복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2013년 피그스를 창업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는 의료복을 개별적으로 마련한다. 보통은 의료기기 상점에서 구매한다. 피그스는 이 시장을 온라인으로 끌어온 최초의 의료복 전문 D2C(Direct to Customer: 소비자직접판매) 업체다. 매출의 98%를 온라인 판매로 거둔다. 오프라인 매장은 운영하지 않는다.



    창업 초기 피그스는 매일 아침 7시와 저녁 7시 근무 교대 시간에 맞춰 병원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다 출퇴근하는 의료인에게 커피를 건네며 제품을 판매했다. 이들로부터 의료도구뿐 아니라, 열쇠나 지갑 등 개인용품을 넣을 수납 주머니도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제품에 반영했다.

    피그스는 신축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것은 물론 냄새, 주름, 습기에 강하면서도 디자인이 다양하고 세련된 제품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테크니컬 컴퍼트(Technical Comfort)라는 자체 원단을 개발했다. 이 원단으로 안쪽에 청진기를 수납할 수 있는 큰 주머니가 달린 재킷, 허벅지 부분에 지퍼 주머니가 있어 소형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넣을 수 있는 팬츠, 밑단을 시보리로 처리해 활동성을 강화한 팬츠, 작은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베스트 등 실용성을 겸비한 제품을 제작한다. 허리 라인이 살짝 들어갔거나 만다린 칼라에 셔링이 들어간 상의 등 여성미를 드러내는 디자인도 선보인다. 색상도 파랑, 초록 외에 검정, 회색, 남색, 자주색 등 다양하다.

    기능성과 세련미를 둘 다 잡은 의료복은 의료인을 사로잡았다. 입소문을 타고 고객이 점차 증가해 2019년 활성 고객 60만 명을 달성했다. 2017~2019년 새로 유입된 고객의 50%가 재구매했고, 이들 중 63%가 재재구매했다. 또 3번 구매한 고객의 70%가 네 번째 구매를 했다. 배우 윌 스미스, 룰루레몬 전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티나 데이, 영화제작자 토머스 툴 등이 투자자로 나서면서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코로나19로 의료복 교체 늘어 매출 증가

    피그스는 내구성과 기능성은 물론, 세련미까지 갖춘 의료복으로 미국 의료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피그스 홈페이지 캡처]

    피그스는 내구성과 기능성은 물론, 세련미까지 갖춘 의료복으로 미국 의료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피그스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19 팬데믹은 피그스에 좋은 기회가 됐다. 감염 예방을 위해 의료인들이 더 자주 의료복을 교체하고, 병원에서 의료복을 착용해야 하는 직군이 확대되면서 의료복 수요도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피그스는 2020년 2억5000만 달러(약 2894억 원)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138% 성장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 5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5억8100만 달러(약 6725억6560만 원) 자금을 조달했다. 최근 발표된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고, 활성 고객은 160만 명을 돌파했다. 예상되는 2021년 총매출액은 3억9500만 달러(약 4572억5200만 원)다.

    피그스의 장기 전망은 밝다. 우선 의료복 시장이 크고, 계속 성장하는 추세다. 미국 의료산업 종사자는 2200만 명으로 미국 전체 근로자의 14%를 차지한다. 또 이 시장은 2028년까지 1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복이 유행에 덜 민감하고 자주 교체해야 해 반복적으로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도 유리한 대목이다. 미국 이외에 캐나다, 영국, 호주에서도 일부 사업을 벌이고 있는 피그스가 좀 더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 또 피그스는 라이프스타일 제품 라인을 강화해가고 있다. 압축양말, 스포츠 브래지어, 레깅스, 내의, 신발 등을 출시하며 의료인의 ‘병원 밖’ 생활에도 침투하고자 한다. 또 의료 분야에 이어 숙박, 건설, 운송 분야 종사자를 위한 전문 의류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피그스가 호의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평판을 계속 유지, 강화해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나이키가 러닝화를, 룰루레몬이 요가복을 평정했듯이, 피그스가 의료복으로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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