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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꿈처럼 흘러가는 유려한 곡선 [궤도 밖의 과학-26]

지구에 접근한 혜성 ‘니오와이즈’가 남긴 것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한여름 밤 꿈처럼 흘러가는 유려한 곡선 [궤도 밖의 과학-26]

7월 23일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니오와이즈 혜성. [위키피디아 제공]

7월 23일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니오와이즈 혜성. [위키피디아 제공]

뜨거운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면 북쪽 밤하늘에 귀여운 녀석이 풀어헤친 머리를 들이민다. 요즘 맨눈으로도 보이는 외로운 우주 여행자, 니오와이즈 혜성이다. 이 녀석을 처음 발견한 우주망원경 니오와이즈의 이름을 따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정식 명칭은 ‘C/2020 F3’이다. 

이 복잡한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맨 앞 C는 다시 돌아오는 혜성 주기가 200년이 넘어 이제 앞으로 우리의 남은 일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보다 주기가 짧아 또 볼 가능성이 있으면 P를 붙인다. 바로 뒤에 오는 숫자와 문자는 발견된 시기와 순서다. 1년을 24등분한 뒤 구간별로 알파벳을 붙이면 F는 6번째 구간이 되며, 결과적으로 니오와이즈 혜성은 2020년 3월 중순 이후 3번째로 발견된 장주기 혜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간단한 암호 해독에 성공한 셈 치자.

로마시대엔 재앙의 징조

과거 혜성은 조화로운 태양계에 불쑥 침입하는 미지의 존재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누구도 반기지 않았으며, 그래서 늘 불길한 재앙의 징조로 여겨졌다. 심지어 로마의 네로 황제는 혜성이 나타나자 두려움에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귀족들을 전부 처형했다고 한다. 하지만 뉴턴의 절친이자 영국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핼리는 혜성 역시 일정 주기로 어딘가를 돌고 있는 천체일 뿐이며, 궤도만 비슷하게 알아내면 계산을 통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있으니 별것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핼리가 세상을 떠나고 17년 후, 사람들은 그가 생전에 예측한 시기에 밤하늘을 수놓은 한 줄기 빛을 봤다. 바로 핼리 혜성이었다. 평생 이룬 수많은 업적 대신 핼리 혜성 발견자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혜성보다 유명한 혜성은 아직 없다. 핼리 혜성의 인기에 묻힌 녀석 가운데 발음을 조심해야 하는 이케야-세키 혜성(C/1965 S1)은 보름달보다 60배나 밝아 대낮에도 보일 정도였고, 역사상 가장 긴 꼬리를 늘어뜨리며 지평선을 가로지른 햐쿠타케 혜성(C/1996 B2)도 있었다. 

혜성은 종종 소행성이나 유성과 헷갈린다. 우선 유성은 혜성이나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녀석이 태양계를 떠돌다 지구 중력에 이끌려 대기로 들어와 빛나는 것이다. 별똥별이라 부르기도 하며, 게임이나 만화 속 소환사들이 온 힘을 짜내 적의 상공에 떨어뜨리는 게 바로 이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지상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전부 타버리기 때문에 그다지 공격력이 없으며, 혹시 타고 남은 유성이 지상까지 도달하면 운석이라고 부른다. 소행성은 목성 궤도 안쪽에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수많은 천체를 말하며, tvN 시트콤 드라마 ‘감자별 2013QR3’에서는 자칫 지구를 멸망시킬 뻔하기도 했다. 꽤 길었던 공룡의 장기 집권을 종결시킨 대멸종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 실제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요주의 천체로 위험성을 주시하고 있다.



시트콤 드라마 ‘감자별 2013QR3’에 출연해 소행성 충돌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tvN 제공]

시트콤 드라마 ‘감자별 2013QR3’에 출연해 소행성 충돌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tvN 제공]

혜성 역시 소행성처럼 태양 곁을 돌고 있기는 하지만, 매우 길쭉한 타원 궤도를 그린다. 주성분이 얼음과 먼지라 가끔 태양 근처를 지나가면 표면 얼음이 녹으면서 먼지가 궤도 위에 흩뿌려진다. 이게 바로 하얗고 밝게 빛나는 혜성의 먼지 꼬리다. 사실 꼬리가 하나 더 있는데, 태양에서 나온 입자들인 태양풍이 혜성에 부딪혀 만들어진다. 이때 발생한 고에너지 이온들은 다시 태양풍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간다. 그래서 태양이 있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푸른 꼬리가 생기는데, 이건 이온 꼬리라고 부른다. 육안으로는 먼지 꼬리가 훨씬 잘 보이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실제로 본다면 꿈같은 일이다.

130만 년 후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특유의 화려한 효과로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2016년 혜성 충돌로 사라지는 마을을 소재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을 선보였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시골 작은 마을의 소녀와 도시에 사는 소년이 있다. 어떤 계기로 둘은 서로의 몸이 바뀌게 되고, 지속적인 교체가 반복되는 와중에 1200년 주기로 찾아오는 티아마트 혜성이 마을을 덮치게 된다. ‘그날, 별이 무수히 쏟아지던 날, 그것은 마치 꿈속 풍경처럼, 그저 한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혜성 충돌을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CoMix Wave Films]

혜성 충돌을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CoMix Wave Films]

과연 그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녀의 마을을 구할 수 있을까. 물론 티아마트 혜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천체다. 이 혜성의 질량이나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아마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15층 아파트만 한 우주물체가 지상으로 떨어졌을 때 도시 하나가 파괴되는 수준이니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는 있겠다. 1908년 러시아 퉁구스카에서는 30m 크기의 소행성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수천km 지역이 초토화됐고, 2013년에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떨어진 소행성 잔해로 수천 명이 다쳤다. 

거대한 종합운동장만 한 크기의 천체가 떨어지면 나라가 사라지고, 지름이 수km에 달하는 천체라면 문명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인류가 지구에 자리 잡은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만한 위기가 찾아온 적은 아직 없다. 태양 절반 크기의 거대한 항성이 태양계로 접근하고 있으며, 만약 예상대로 도착한다면 수많은 혜성과 소행성이 거대한 항성의 중력을 따라 지구로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논문으로 나온 적이 있긴 하지만, 130만 년이나 지난 후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일단 한동안은 괜찮다. 

2004년 3월 유럽우주국이 로제타호를 발사했다. 그리고 11년간 여러 행성과 소행성 중력의 도움을 받아 65억km를 비행했고, 무려 10년이 지난 후에야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로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67P)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혜성을 따라잡아 그 위에 직접 무언가를 착륙시키겠다는 정신 나간 아이디어는 그렇게 현실이 됐다.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기도 쉽지 않을 법한데, 날아가는 총알 위에 다른 총알을 묻고 더블로 간다니. 

아쉽게도 로제타호에서 분리된 탐사로봇 필레는 착륙 과정에서 두 번이나 튕겨 나와 그늘진 어둠 속으로 굴러갔고, 태양 빛을 받지 못해 완전히 방전된 채 쓸쓸히 잠들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혜성이 태양으로 접근하자 7개월 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귀중한 사진과 정보를 보내온 것이다. 애초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지만, 잠시라도 필레는 목적에 따라 힘겹게 움직였고, 결국 인류는 해냈다. 굳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도전에 긴 시간과 인력을 들였을까. 혜성이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혜성은 지구 생명체의 근원이 어디서 왔는지 비밀을 풀어줄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감독은 소년과 소녀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마음과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두 주인공은 동분서주하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서로의 이름만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지구에서 살게 됐고, 겨우 얻은 이 기회를 어떤 방식으로 보내야 할지를 반드시 알아내고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만나려면 6800년을 기다려야 하는 니오와이즈 혜성이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날은 7월 23일이다. 다만 태양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지구로 다가오다 보니, 밝기기 점점 떨어져 근접했을 때 오히려 잘 안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1000년 만에 다가오는 혜성 덕분에 몸이 바뀌거나 시간여행을 하게 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충분히 혜성의 덕을 봤고 태어났고 살아왔다. 누구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 점점 지구와 가까워지는 혜성을 올려다보며 한 번쯤 손을 흔들어 감사 인사를 전해보는 건 어떨까. 기억할게, 너의 이름은.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249호 (p58~61)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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