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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의 과학

비트코인 시대의 종말은 암호화폐의 개막이 되리니

채굴 10주년 맞은 비트코인의 운명

  • 궤도(예명,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비트코인 시대의 종말은 암호화폐의 개막이 되리니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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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광풍으로 불릴 만한 사건이 종종 있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광풍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비트코인이다. 2009년 1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개발해 2009년 처음으로 채굴됐고, 벌써 10주년이 됐다.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도 10대에 모험을 떠났듯, 무려 10년이 넘어가니 뭔가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완전히 상반된 평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가상화폐시장 투기 열풍의 대표주자’ vs ‘시대를 바꿀 블록체인 기술의 선구자’. 역사 속 동일한 정치인 또는 지도자급 리더도 개인의 관점, 철학에 따라 희대의 폭군이 되거나 줏대 있는 성군이 되기도 한다. 비트코인이 어느 쪽인지 좀 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프로그램 소스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현실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명성이든 악명이든 그만큼 널리 알려졌다는 뜻일 테니까. 

인지도에 비해 정체는 불분명하다. 어쨌거나 코인(coin)이니 사람들은 가상화폐라고 부르며 지폐나 동전처럼 바라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을 거두지는 못한다. 금광을 찾아 나서던 시대에나 썼을 채굴이라는 용어부터 도대체 왜 쓰이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은 그야말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마법의 주문 아닌가. 무엇이 우리를 골드러시(gold rush) 현상으로 이끌었는가.


가상화폐와 암호화폐의 차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의 암호화폐(오른쪽)와 여러 개의 그래픽카드를 연결한 채굴기(일종의 컴퓨터)가 끊임없이 복잡한 연산을 풀어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현장. [shutterstock]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의 암호화폐(오른쪽)와 여러 개의 그래픽카드를 연결한 채굴기(일종의 컴퓨터)가 끊임없이 복잡한 연산을 풀어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현장. [shutterstock]

먼저 가상화폐라는 오명부터 벗어보자. 마치 위조지폐 느낌으로 혼용되는 이 용어는 암호화폐와 구분된다. 가상화폐 역시 온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형태로 활용되지만, 실존하지 않는 통화라고 볼 수 있다. 원조 가상화폐인 싸이월드의 도토리와 비교하면 간단하다. 도토리는 싸이월드가 만들어낸 가상화폐로, 처음 공개 시 부여된 개당 100원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은 하루에도 수백 번 가치가 바뀐다. 원인은 발행 주체에 있다. 

도토리가 많이 팔릴수록 싸이월드는 이윤을 남길 수 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팔면 된다. 물론 잘 팔리는 만큼 도토리 가격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식권 가격을 올린 구내식당 취급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차라리 도토리로 구매 가능한 비싼 서비스나 콘텐츠를 출시하는 편이 기업에게는 유리하다. 발행 주체는 소비되는 만큼 끊임없이 도토리를 가상공간에서 만들어낼 뿐이다. 



암호화폐는 사정이 다르다. 발행 주체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낼 수가 없다. 발행될 총량은 정해져 있다. 미리 발행해두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채굴이라는 방식으로 계획성 있게 찍어낸다. 결국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되는 양보다 구매자가 늘어난다면 가치가 치솟고, 보유한 암호화폐의 판매자가 늘어난다면 가치가 떨어진다. 다만 이것을 기존 실물화폐와 동일시한다면 투자나 투기 대상으로만 보일 수 있다. 최초로 발행된 비트코인이 마침 화폐 기능에만 집중하다 보니 오해를 살 법도 하다.


블록체인으로 가치 보증하는 암호화폐

[www.enpeizhao.com]

[www.enpeizhao.com]

암호화폐가 반드시 기존 화폐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좋다. 굳이 블록체인처럼 복잡한 과학기술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물물교환으로 시작된 조개껍데기에서부터 현 화폐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보다, 내가 보유한 가치를 완벽하게 보증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말이다. 

내 통장에 있는 500만 원의 가치는 통장 앞면에 적힌 주거래 은행이 보증한다. 하지만 발행한 기관이나 국가가 사라지면 이 숫자는 낙서일 뿐이다. 아무도 나에게 그만한 가치를 돌려주지 않는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이러한 우려에서 시작했다. 

최근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 법정 화폐인 셰켈을 암호화폐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물론 통화를 바꾼다고 정치·경제적 의존도를 낮출 수는 없겠지만, 암호화폐를 통해 화폐 가치의 안전성을 꾀하려는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어떤 원리로 내가 보유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화폐 발행을 주도한 중앙기관이 없는 탈중앙화와 누구도 위조가 불가능한 암호화,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능하다. 

친구에게 5만 원을 빌려준 상황을 가정해보자. 둘만 있는 자리에서 지갑을 열어 5만 원권 지폐를 건네줬다면, 나중에 친구가 돈을 갚지 않아도 속이 탈 뿐이다. 아무도 거래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에 스마트폰 메신저로 거래 기록을 남긴다면? 부도덕한 친구가 내가 도서관에서 잠든 사이 내 스마트폰을 열고 메시지를 지워버린 후 오리발을 내민다면, 역시 5만 원을 돌려받을 길은 없다. 친구가 심지어 은행 전산망 보안을 뚫을 수 있을 만큼 악명 높은 해커라면 메시지가 아닌 계좌이체를 통해 은행에 거래 기록을 남겨놓아도 무용지물이다. 완벽한 암호화는 불가능하며, 중앙에 모든 정보가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 요소다. 

다시 친구에게 5만 원을 빌려주자. 단, 이번에는 거래 증거를 여러 명의 지인이 모여 있는 단체채팅방에 남긴다. 친구가 열심히 채팅방에 속한 지인들을 찾아가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메시지를 몰래 지운다면 역시 증거는 사라질 수 있다. 엄청난 노력이 들겠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단체채팅방에 속한 사람의 수가 수천 명이라면? 나아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원이 채팅방에서 거래 사실을 보증한다면 어떨까. 

이게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다. 유능한 해커라 해도 단체채팅방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스마트폰을 해킹하는 것은 중앙기관의 전산망을 뚫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하나의 금고에 달린 수많은 자물쇠를 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자물쇠가 달린 수천만 개의 금고를 전부 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거래를 확인하고 신뢰도를 부여하는 중앙이 없는 대신, 네트워크에 참여한 모든 개인이 거래 내역을 확인한다. 따라서 많은 이가 참여할수록 높은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고, 이때 개인의 참여를 유도하는 보상은 암호화폐다. 블록체인이 구현해낸 암호화폐라는 가치를 얻고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참여자가 늘어나면 암호화폐의 가치와 함께 네트워크의 신뢰도 역시 증가한다. 중앙의 통제 없이 시장논리에 따라 자생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광풍의 종말과 새로운 암호화폐의 시작

[사진 제공·픽사베이]

[사진 제공·픽사베이]

물론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세청에서는 암호화폐 보유자들에게 세법 위반과 관련된 경고문을 발송했고, 한국 법무부는 암호화폐 관련 범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법규와 충돌 문제도 풀어야 하며, 거래소 등 연관된 업체들에 대한 해킹은 암호화폐 기술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업체 페이스북이 내년 상반기 일명 페이스북 코인으로 불리는 암호화폐 리브라를 출시하겠다고 공개했다 미국과 유럽 등 금융 당국의 집중포화로 출시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전 세계 24억 명 사용자를 보유한 초거대 IT(정보기술) 기업의 암호화폐시장 참여는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페이스북도 리브라를 보유한 구성원 가운데 하나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현실적인 탈중앙화가 이뤄질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지만, 사회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면을 모두 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다.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만 경계하면 된다. 

비트코인이 더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지 않을 때가 온다면, 바로 그때가 비트코인 시대의 종말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흔해빠진 암호화폐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 것이며, 우리는 산업과 경제, 그리고 문화를 통틀어 가장 총체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테다. 부디 그때 우리는 후회 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길 바란다.


궤도_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2019.08.02 1200호 (p50~53)

궤도(예명,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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