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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워싱턴 노딜’로 끝난 까닭

한국의 新남방 vs 미·일의 인도태평양 충돌

한미정상회담 ‘워싱턴 노딜’로 끝난 까닭

4월 11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무기 도입 의사에 세 번이나 감사를 표했으나 깊은 대화를 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은 2분 만에 끝내버렸다. [AP=뉴시스]

4월 11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무기 도입 의사에 세 번이나 감사를 표했으나 깊은 대화를 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은 2분 만에 끝내버렸다. [AP=뉴시스]

2년여에 걸친 6·25전쟁 정전협상 때 유엔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찰스 터너 조이 전 미국 해군 제독은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라는 명저를 남겼다. 북한의 집요한 협상술과 심리전을 직접 경험한 그는 “공산주의자의 약속은 어떤 방식이든 절대로 믿지 마라. 공산주의자의 행동만을 믿어라”고 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났을 때 많은 이는 ‘김정은이 당했구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 정세에 밝은 이들의 관심은 달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용차까지 싣고 3박 4일간 8000km를 열차로 달려갔을 때는 확신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 위원장을 찍 소리도 못 하게 물리쳤으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부술을 궁금해했다. 북한은 마지막까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보내 매달렸지만, 하노이 공항으로 가고 있던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 저자는 유턴하지 않았다.


“2분은 라면도 익지 않은 시간”

4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난 시간이 2분이라고 하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분이면 라면도 안 익을 시간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회피한 것일까. 우리는 중국과 북한을 따로 보고 있지만, 미국은 대(對)중국 전략의 일환으로 한반도 문제를 본다. 대중·대북 전략의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개혁·개방으로 갔을 때 누릴 수 있는 번영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미군 유해를 보내고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 등을 파괴하는 것으로 맞장구를 쳤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를 교환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바람이 그러했다면, 그 밑에서 일하는 북한 전략가들은 ‘냉정함’ 대신 김 위원장의 바람에 맞춰주는 분석을 내놨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더 큰 빅딜을 요구했다. 영변으로는 부족하니 강선·태천·희천 등에 있는 핵시설도 폐기하라고 한 것. 트럼프 대통령은 터너 제독의 저서를 숙독한 것처럼 ‘플러스알파론’으로 공산주의자의 허를 찌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당황했고 회담의 주도권을 잃었다. 



4·11 한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이유를 분석한 기사는 드물다.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주도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노딜로 끝내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들고 간 주제(북·미 대화 재개와 남북관계 개선)는 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을 이유로 문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려 한 것일까. 한 외교 소식통은 ‘인도태평양전략’을 거론했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회담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를 요구했는데, 한국이 거절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미국과 갈등했다. 이를 의식한 한국은 사전회담에서 미국산 무기 대량 도입 의사를 ‘선물’로 내놓았다. 조인트스타스와 SM-3 등 북한이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초특급 전략무기를 사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세 번이나 한국의 무기 구매 의사에 감사하다고 인사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전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같은 상황을 다시 만든 것이다. F-35A 40대를 도입한 한국은 20대 추가 구매를 결정해놓았다. “방위비는 깎아놓고 미국 무기는 왜 사주러 갔느냐”는 비판이 일자 군 당국자는 “(트럼프의 발언은) F-35A 등 이미 결정된 무기 구매를 언급한 것이다. 미국산 무기 추가 구매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해명 때문에 한미정상회담 실패는 엉뚱한 데로 관심이 쏠려버렸다. 그러나 노딜을 초래한 진짜 원인은 ‘한국의 인도태평양전략 불참’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해양굴기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때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그는 아베 신조 총리와 함께 인도태평양전략을 양국의 공동외교전략으로 채택했다. [AP=뉴시스]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때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그는 아베 신조 총리와 함께 인도태평양전략을 양국의 공동외교전략으로 채택했다. [AP=뉴시스]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양 국가들에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지어주고, 중국산 물품을 사게 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제성장 덕분에 중국에서는 공산당 1당 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리더십 유지를 위해 팽창주의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구단선(九段線)과 도련(島鍊)을 이용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중국 내해로 만드는 ‘해양굴기’에 나선 것. 중국도 가입한 유엔해양법협약은 사람의 정주(定住) 생활이 불가능한 바위섬과 모래섬은 영해를 갖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중국해의 내해화를 노린 중국은 이러한 섬들을 점령해 영해로 삼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반발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러자 유엔해양법협약 불가입국인 미국이 이 조약을 지켜야 한다며 나섰다. 미국은 중국의 주장을 무력화하고자 7함대와 3함대 함정으로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바다를 관통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을 펼쳤다. 이에 중국은 남해함대는 물론이고 북해함대까지 동원해 미국 함정의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는 ‘꽃놀이패’ 전략의 일환으로 수소탄시험까지 한 북한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남중국해에서 5000~1만t급의 ‘자이언트’들이 견제하게 됐으니 세계는 주목했다. 북한까지 활용한 이러한 대립은 중국 인민에게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에 애국주의가 득세하면 중국의 민주화를 바라는 세력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소수민족은 전체 인구의 8.4%밖에 되지 않지만 이들이 머무는 땅은 60%에 이른다. 이들이 독립하면 중국 영토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중국은 한족 대신 ‘중국인’을 강조하며 이들을 동화시키려 한다.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역사인 고조선·고구려사(동북공정)와,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의 역사(북부공정)는 중국사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경쟁해온 나라는 청일·중일전쟁을 치러본 일본이다. 2001년 일본은 중국에게 세계 2위 경제대국 지위를 넘겨주고 지금은 중국의 3분의 2 수준에서 세계 3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일본 센카쿠(尖閣) 열도가 중국의 댜오위다오(釣魚島)라는 영토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을 포위·견제하려는 전략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인도태평양전략이다. 이 전략은 아베 신조 총리와 당시 아소 다로 외상이 만들었다. 

인도는 파키스탄은 물론이고 중국과도 카슈미르 분쟁을 겪어왔다. 카슈미르 지역 일부를 차지한 중국은 파키스탄과 협조해 인도를 견제해왔다. 인도는 핵무기와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개발했다. 호주도 전통적인 반중(反中)국가다. 아베 총리는 이에 주목해 1차로 총리를 하던 2007년 인도를 방문했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자는 ‘두 바다의 합류’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존 볼턴과 호흡 맞추는 아베

반중(反中)의 ‘가치관 외교’를 내놓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인도태평양전략을 만드는 데 일조한 아소 다로 전 일본외상(왼쪽). 남중국해가 베이징의 호수가 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그의 세계전략은 아베 총리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상통한다. [AP=뉴시스]

반중(反中)의 ‘가치관 외교’를 내놓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인도태평양전략을 만드는 데 일조한 아소 다로 전 일본외상(왼쪽). 남중국해가 베이징의 호수가 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그의 세계전략은 아베 총리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상통한다.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인 존 볼턴은 2012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남중국해가 베이징의 호수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2012년 두 번째로 총리직을 맡게 된 아베 총리는 미국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지에 베이징의 호수를 막기 위해서는 인도, 호주, 일본, 미국을 엮어 ‘안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을 했다. 

아소 외상은 가치관 외교를 주장했다. 그가 말한 가치관은 자유민주주의지만 실제로는 반중(反中)이었다. 이에 일본 외무성 관료들이 의견을 보태 2017년 내놓은 것이 FOIP다. 일본 외무성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인도(I), 태평양(P) 앞에 ‘자유롭게 열린(Free and Open)’을 추가한 것이다. 

2017년 11월 처음으로 아시아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방문국인 일본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FOIP(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전략)를 두 나라의 공동전략으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그는 공동 언론보도문에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강조했다’는 표현을 넣게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떠나자 청와대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지금 한국은 미국,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교역을 중국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안보는 미국에 의존해도, 경제는 중국과 할 수밖에 없다”며 이른바 미·중 균형외교를 펼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한과 대화창구를 만들어야 했으니, 인도태평양전략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반일(反日)을 강조하면서 반북(反北)을 억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의 안보 정책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발표물은 ‘방위대강’이다. 과거 방위대강은 한국을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안보협력국으로 명기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나온 ‘방위대강’은 한국을 호주, 인도, 아세안(ASEAN) 다음에 다섯 번째로 언급했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은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케 했고, FOIP가 미국의 전략이 됐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올해 2월 초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함으로써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의심 없이 하노이로 가게 하는 데 일조했다.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설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전략은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이다. 아세안 회원국을 대상으로 사람·상생공영·평화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을 모토로 한 신남방정책을 펼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위원장, 5개 부처 차관 등을 위원으로 한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신남방위)를 만들었다. 국가전략은 안보전략을 근간으로 경제전략을 보태고 문화전략, 공공외교 등을 덧붙여 만든다. 그런데 신남방정책은 평화공동체라는 표현으로 안보전략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해놓았다.


공석이 된 신남방위원장

2018년 9월 30일 중국 군함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작전’의 일환으로 항해하는 미국 군함을 추격하는 모습. [영국 국방부 홈페이지, 동아DB]

2018년 9월 30일 중국 군함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작전’의 일환으로 항해하는 미국 군함을 추격하는 모습. [영국 국방부 홈페이지, 동아DB]

신남방위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이끄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있었다. 정 위원장은 안보를 다루는 국제정치학자가 아니다. 신남방위원장을 지낸 김현철 전 보좌관은 기업경영을 연구해온 경영학자 출신이다. 이 때문에 적잖은 전문가는 두 위원회에서는 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가전략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을 해왔다. 그런데 1월 50, 60대를 폄하한 발언 때문에 김 위원장이 사퇴해 현재 신남방위원장은 공석이다. 

신북방정책을 만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신남방위보다는 그래도 체계가 잡혀 있다. 그러나 물류와 문화 등 경제교류를 중심으로 한 전략만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두 위원회가 내놓은 전략에 따라 아세안과 중앙아시아 순방을 거듭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을 하기 전에는 동남아시아를 방문했고, 이후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이다. 

균형외교와 신북방·신남방 외교에 치중해온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려고 했을 때인 4월 10일 미국 상원은 ‘한미일 연대’를 지지하는 전체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도태평양지역 안보와 평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따라서 ‘한국을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여지가 컸다. 상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기조를 적극 지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전략을 거부한 문 대통령과는 어떤 합의도 하기 어려웠을 개연성이 높다. 신남방·신북방, 그리고 미·중 간 균형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노선의 근저에는 반일 외교가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의 신남방전략과 아베 총리의 인도태평양전략 가운데 승자는 어느 쪽이 될 것인가.






주간동아 2019.04.19 1185호 (p50~53)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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