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2015.12.16

‘돈 조반니’에게 보내는 애도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아마데우스’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5-12-15 14: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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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조반니’에게 보내는 애도

    영화 ‘아마데우스’는 작곡가 모차르트를 영원한 자유를 꿈꾼 자기 파괴적 반영웅으로 묘사했다.

    최근 재개봉한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35세에 요절한 작곡가 모차르트의 사인(死因)에 의문을 품으며 시작한다. 다시 봐도 흥미로운 점은 합스부르크가의 궁정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질투심 때문에 모차르트를 과로로 몰아넣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설정이다. 유럽 최고 궁정작곡가를 ‘범재’로 성격화한 설정은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상대가 모차르트라면 수긍 못 할 과장은 아니다. 모차르트는 이미 건강을 심각하게 잃은 상태임에도 돈이 궁해 밀려드는 작곡 의뢰를 거절하지 못한다. 이때 살리에리가 나타나 ‘레퀴엠’ 작곡을 의뢰하며 모차르트를 과로로 몰아넣어 죽게 만든다는 설정이다. 모차르트의 사인은 오스트리아 빈 ‘최고’로 남고 싶은 살리에리의 세속적 질투심인 셈이다.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의 음모와 질투가 시작됨을 알리는 날카로운 음악으로 도입부를 연다. 모차르트가 17세에 작곡한 ‘교향곡 25번’ 1악장이다. 그의 불행한 운명을 예감하듯, 현악기의 빠른 연주는 눈보라를 몰고 올 듯 공기를 휘몰아친다. 그러면서 죽음을 재촉하는 모차르트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곡은 빠르고 날카로우며 간혹 비극적인 선율이 특징이다. 포르만이 해석한 모차르트의 삶에 대한 ‘서곡’인 셈이다. 알다시피 모차르트는 빠르게 살다 간 비극의 주인공이다.
    ‘교향곡 25번’ 1악장이 영화의 전체 성격을 암시한다면, 오페라 ‘돈 조반니’는 주인공 모차르트를 해석하는 틀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포르만은 모차르트를 돈 조반니로 보고 있다. ‘돈 조반니’를 작곡할 때 모차르트는 자신의 평생 후원자인 부친과 결별한 상태였다. 부친은 어린 아들을 위해 잘츠부르크 교회 악장이라는 경력도 포기했는데, 모차르트는 10대 때부터 반항아 기질을 드러내며 부친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런 과정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게 바로 오페라 ‘돈 조반니’다.
    ‘돈 조반니’에게 보내는 애도

    캐나다 공연 단체 ‘오페라 아틀리에’가 공연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한 장면. 사진 제공 · 예술의전당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를 바람둥이라기보다 자기 파괴적 인물로 해석했다.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지만 당대 사회규범을 실컷 비웃는 ‘반영웅’인 셈이다. 돈 조반니는 신분, 교회, 결혼 같은 사회제도를 위반한 뒤 결국 죽음을 맞는다. 더 놀라운 점은 죽음 직전에도 참회의 구원을 거부하는 행위다. 부친을 상징하는 사자(死者)가 참회를 명령하지만, 그는 스스로 지옥의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간다. 이런 혁신적 결말 때문인지 ‘돈 조반니’는 빈에서 발표되지 못했고, 첫 공연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다.
    포르만은 이 영화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를 강조하며 모차르트의 캐릭터를 특징짓고 있다. 즉 모차르트는 참회와 구원이라는 신의 섭리마저 거부한 돈 조반니다. 이 틀에서 영화 ‘아마데우스’는 영원히 자유롭고 싶었던, 어찌 보면 불가능한 꿈을 꾼 반항아가 모차르트라고 묘사한다. ‘살리에리의 음모’로 작곡되는 ‘레퀴엠’이 이해받지 못한 돈 조반니, 곧 어린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헌정처럼 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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