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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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Connect, Create! 서울혁신파크

시민 손으로 새로운 도시 만드는 미래 실험실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jerome363@uos.ac.kr

    입력2015-10-19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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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e, Connect, Create! 서울혁신파크
    4년 전 이맘때쯤 서울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희망제작소와 목민관클럽이 주최한 행사로 ‘지역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이 주제였다. 발제자는 모두 넷이었는데, 필자를 제외한 세 명은 영국에서 지역자산을 활용해 지역을 살려내는 일을 해온 저명인사들이었다.

    첫 발제자는 니콜라 베이컨 ‘영 파운데이션(The Young Foundation)’ 팀장이었다. 영 파운데이션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적 기업의 창업자로 불리는 마이클 영이 1954년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베이컨 팀장은 그동안 이 단체가 해온 다양한 활동, 즉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려고 운영하는 시민대학(The U), 갱단 조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감성회복 훈련 프로그램, 학생들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스튜디오 스쿨 등을 소개하고, 사회혁신을 위한 그들의 접근방법을 밝혔다. 작은 실험에서 시작된 혁신적 제안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고 점차 확대돼가는 나선형 모델도 설명했다. 발제를 마치면서 베이컨 팀장이 강조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혁신은 소통에서 나온다.”

    생각은 국제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다음은 스티브 와일러 ‘로컬리티(Locality)’ 대표 차례였다. 로컬리티의 전신은 개발신탁(Development Trust·DT)이다. 마을 만들기와 지역 회생을 목적으로 1970년대부터 영국에서 만들어진 여러 DT 조직은 93년 전국협의회(Development Trust Association·DTA)로 모였고, 2011년 다른 민간단체와 결합하면서 명칭을 로컬리티로 바꿨다. 현재 800여 개 커뮤니티 조직이 네트워크 형태로 활동 중인데,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은 술집을 주민들이 인수해 마을술집으로 운영하고, 주민 모금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해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꾸는 등 흥미로운 활동 사례가 많았다.

    세 번째 발제자는 제럴딘 블레이크 ‘커뮤니티 링크스(Community Links)’ 대표였다. 그가 소개한 영국 웨스트햄(West Ham) 구청 건물 활용 사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커뮤니티 링크스는 1980년대 문을 닫은 뒤 방치돼 있던 건물을 구의회와 협상을 통해 125년간 무상임대했다. 이후 시민들에게 150만 파운드(약 27억 원)를 모금하고, 128개 기업으로부터 건물 개·보수에 필요한 재료와 서비스도 기부받아 약 2년간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현재 이 건물은 아주 유용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인다. 이 과정에서 찰스 윈저 영국 황태자가 현장을 방문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단다. 1977년 설립된 커뮤니티 링크스는 런던 동부지역에 있는 16개 센터를 통해 41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활동가 300명이 2만5000명 이상의 주민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블레이크 대표가 전한 커뮤니티 링크스의 이념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변화를 이끌어낸다. 증상이 아닌 원인을 해결하고, 완화책이 아닌 해결책을 찾는다. 문제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 그 문제를 가장 잘 안다는 걸 인정한다. 생각은 국제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가르치되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다양성과 그것을 경감하는 불평등을 구별한다.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대하기 위해서 성장한다. 꿈을 향해 움직이고, 실천을 평가받는다. 주민을 대신해 일해주지 말고, 그들을 인도하고 지원하며 교육해 동기를 부여한다.”

    4년 전 그날 필자는 영국 사회혁신단체들과 그들이 일군 흥미진진한 성과들이 무척 부러웠다. 꿈을 꾸었다. 우리 서울에서도 이런 혁신가들이 등장해 모임을 만들고 서로 연대하며 마을과 도시를 살려나가는 흥미로운 실험을 벌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이 간절해서였는지 그때 꾸었던 꿈이 현실이 돼가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도 사회혁신의 거대한 실험실이 생겼다.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서울메트로 불광역 가까이 있는 ‘서울혁신파크’가 바로 그곳이다.

    Come, Connect, Create! 서울혁신파크

    서울혁신파크에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새로운 서울’을 꿈꾸는 단체들이 모여 있다.

    함께 만드는 새로운 서울의 꿈

    이곳은 예전에 국민 건강 증진과 질병 관리를 위해 연구하고 실험하던 국가보건의 최전선이었다. 1963년 방역연구소, 화학연구소, 생약시험소 등 흩어져 있던 보건전문기관을 모아 이곳에 국립보건원을 세웠고, 2004년에는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그러나 기관이 2010년 충북 청주시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빈 공간이 됐다. 약 9만9173㎡(3만 평)의 너른 대지에 건물 32개가 남아 있는데, 이곳 3개 동에 서울혁신을 꿈꾸는 단체들이 들어왔다. 한가운데 위치한 미래청(옛 본관) 1층에는 서울시 청년허브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 2층에는 서울혁신센터가 있고 3층과 그 위에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 111개 혁신활동그룹이 입주해 있다. 정문 안 오른쪽 첫 번째 건물에는 서울 크리에이티브랩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뒤쪽 건물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와 인생이모작지원센터가 입주했다.

    서울혁신파크는 아직 미완성이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미완성일지 모른다. 혁신을 향해 끊임없이 꿈틀꿈틀 변화하는, 늘 깨어 있고 살아 숨 쉬는 리빙랩(living lab)이다. 벌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꿀을 모으는 벌집이고, 다양한 계층과 전문분야와 일과 활동이 모이고 섞이는 거대한 플랫폼이자 용광로다.

    단풍이 짙어가는 가을 서울혁신파크에 가보자.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아래 암탉들이 한가롭게 배회하는 곳. 건물 안으로도 들어가 보자. 엎드려 책을 보고 일할 수 있는 곳, 일하다 피곤하면 잠시 눈 붙일 수 있는 아지트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커다란 벽면 전체가 책장인 곳과 칸칸이 막히지 않은 열린 일터를 볼 것이다. 화장실 안내표지 속에도 깨알 같은 위트가 담겼고, 유심히 살핀다면 그대 가슴을 울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을 넘어 협동으로/ 당신의 두 번째 인생을 응원합니다/ 응답하라 5060/ 그들이 우리가 되는 공정, 나는 공정무역을 지지합니다/ 2030년 당신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다면 꼭 실천할 공약은?’

    역사는 오묘하다. 과거 국민 건강과 보건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던 연구기지가 지금은 서울시민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사회병리를 풀어내는 융·복합 실험실로 변했다. 혁신을 꿈꾸는 시민들이 모이고(come), 소통하며(connect), 창의적 해법을 찾아가는(create) 곳, 서울혁신파크에 가보자. 서울에서 아파하며 살아가는 바로 당신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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