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8

2017.10.04

풋볼 인사이트

약속대로 K리거 배제 노련한 해외파로 성적 내겠다

10월 평가전 앞둔 국가대표팀 발탁 속사정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7-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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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중 앞에 섰다.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 재부임설이 나온 이후 첫 공식석상이었다. 9월 6일 우즈베키스탄전을 끝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그가 이번에는 10월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명단을 갖고 나타났다. ‘히딩크 전 감독보다 잘할 수 있겠느냐’는 날 선 시선 앞, “이제는 보여줘야 한다”는 말로 심정을 대변했다.

    이슈는 평가전을 앞둔 새 얼굴 발탁이었다. 신 감독이 5월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주축 선수로 활용한 백승호(지로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이진현(FK 오스트리아 빈) 등이 성인 대표팀 데뷔의 영예를 안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어도 경기 내용은 성에 안 찬 게 사실. 난세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리라는 기대도 피었다. 하지만 신 감독의 답은 “아직 아니다”였다.



    K리거 제외하니 뽑을 선수가 없더라

    K리그를 향한 배려가 화두로 떠올랐다.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이 불투명하던 8월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에서 뛰는 선수(K리거)들을 조기 소집했다. 국가적 이벤트란 명목 아래 K리그란 상품을 만들어 파는 한국프로축구연맹에 희생을 강요(?)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성공도 1년 넘도록 이어진 대표팀 합숙 덕에 가능했다. 이를 몸소 경험한 이들이 다시 비슷한 행보를 택했다. 다른 스포츠보다 축구에 유독 짙게 드러나는 국가주의, 전체주의 성격이 또 작용했다. K리그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사활을 걸었다.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을 시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떠올리느니 기꺼이 소의를 희생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모두 0-0 무승부에 그쳤으나, 조 2위로 본선에 나갈 자격을 획득했다. 신 감독도 한숨 돌렸다. 신 감독은 본선 진출 과정에서 희생한 이들을 보듬었다. ‘공생’이란 표현을 쓰며 K리그 한 해 농사가 판가름 나는 10월에는 A매치에 소속 선수를 차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사전에 내비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터다. 이 한마디가 가져올 파급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해외파로만 명단을 짜려던 신 감독은 골머리를 앓았다. 부상 여파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래도 기성용(스완지시티 AFC)의 사정은 조금 나았다. 지난여름 무릎 수술을 한 기성용은 재활 과정을 거쳐 최근 소속팀 U-23 경기를 소화했다. 감각을 깨우며 실전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구자철(FC아우크스부르크)은 뇌진탕 증세, 황희찬(레드불 잘츠부르크)은 허벅지 근육 파열로 휘청했다. 기성용, 구자철은 불완전한 몸 상태임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황희찬은 회복이 더뎌 끝내 합류 불가 통보를 받았다.

    K리거의 빈자리를 유럽파만으로는 채울 수 없었다. 선발 출격할 11명 말고도 이를 뒷받침할 선수단을 꾸리기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일본 J리그, 중국 슈퍼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대거 불러들였다. 경쟁력 하락 탓에 대표팀에서 멀어진 이들이 다시 기회를 얻었다. 색다른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도 있지만, 내년 러시아 본무대에 설 선수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다들 회의적이다. K리거 없이 스무 명 남짓한 명단을 채우기도 어려운 게 현 실정이다.

    신 감독은 쉽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하나가 예전과는 다르다. “대표팀 감독이 된 뒤로는 소주 한 잔 해도 주위를 신경 쓰게 된다”던 그의 말이 그랬다. “히딩크 전 감독을 데려오라”는 여론 때문에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하고도 내몰렸다. 귀국 뒤 기다리는 건 진심 어린 축하가 아닌 불면증이었다. 극심한 피로에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 신 감독의 외양은 확연히 변해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특유의 말투는 여전했어도 생기를 잃었다. “얼굴이 많이 상했다”는 말에 “지금 상황에 안 그런 게 비정상 아니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 감독이 택한 길은 정공법이다. ‘사면초가 상황’이라며 현 처지를 표현한 그는 “히딩크 전 감독 얘기에 동요된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솔직히 10월 A매치를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면서도 “여론에 휘둘릴 수도 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히딩크 전 감독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가장 쉽고 빠르게 어필하는 방법은 화끈한 승리다. ‘신태용호 축구가 이토록 매력적’이란 것을 내보이고자 칼을 갈기로 했다. 이번 A매치를 향한 승리 염원은 과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2016 U-20 월드컵,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및 K리그에 나서던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오죽하면 ‘러시아전, 모로코전에 신태용 축구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결과를 못 내면 이민 가야 할지도 모른다”던 한탄은 아직 진행형이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기회’ ‘과정’은 잠시 접어뒀다. 새 얼굴 발탁도 자연스레 미뤘다. 그 대신 ‘결과’를 낼 수 있는 이들로 불러 모았다. 평가전을 발판 삼아 내년 월드컵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검증의 시간이 닥쳤고, 이왕이면 성인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경험한 이들로 명단을 채웠다.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 지동원(FC아우크스부르크) 등에게 다시 기회를 부여한 데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백승호, 이승우, 이진현은 조금만 더 기다려줘

    축구는 선수의 연령대 스펙트럼이 넓다.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의 선수가 대표팀이란 한 울타리로 묶인다. 지속적인 성공에는 적기의 세대 교체가 필수. 베테랑의 경험에 신예의 패기를 버무렸을 때 비로소 건강한 팀이 된다.

    실제 한국 국적 유망주의 흐름은 괜찮은 편이다. FIFA U-20 월드컵으로 국제무대 경험을 쌓은 이들이 유럽 무대에서 분투하고 있다. 백승호는 지로나 소속으로 1군 훈련, 2군 실전을 겸하고 있다. 현 추세라면 올 시즌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뛰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무대를 욕심낼 수도 있다.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한 이승우는 이탈리아 세리에 A 명문 SS라치오를 상대로 프로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교체 출전한 20분 동안 날카롭다는 인상을 남겼다. 오스트리아 빈 유니폼을 입은 이진현은 최근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AC밀란전에 나설 만큼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다만 승리를 우선시한 신 감독은 이들과 관련해 “머잖아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말로 미래를 기약했다. 

    대표팀은 10월 2일 인천국제공항에 집결한다. 곧장 출국해 7일 러시아와 원정 A매치를 통해 본무대를 사전 답사한다. 히딩크 전 감독이 깊이 관여해 성사된 한판이라고 알려졌다. 신 감독도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을 맞대결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경질 후 급히 대표팀 방향키를 잡은 그가 히딩크 전 감독 앞에서 어떤 경기를 펼칠지. 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영웅이 우리 대표팀에게 도움을 준다고 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성공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히딩크 전 감독의 사심 없는 조언을 들어야 한다”며 재회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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