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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善意)와 잰걸음

  •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선의(善意)와 잰걸음

열정보다 냉정이 세상을 바꾼다고 강조하는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열정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플레이펌프’ 사업을 들고 있다.‘플레이펌프’는 식수난을 겪는 아프리카에 회전 놀이기구인 ‘뺑뺑이’를 보급하자는 이색적인 구호 사업이었다. 아이들이 물을 길으러 먼 길을 오가는 대신 뺑뺑이를 타고 놀면 그 동력으로 지하수를 퍼 올리자는 일석이조의 방안이었다.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이 아이디어에 세계적 명사들이 수천만 달러를 내놓았고, 플레이펌프 1800여 대가 보급됐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다. 지하수를 충분히 얻으려면 뺑뺑이를 거의 하루 종일 돌려야 하는데, 그럼 놀이가 아니라 고된 노동이 됐기 때문이다. 또 쉽게 고장 나고 수리할 데도 없어 한 번 망가지면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열정과 선의가 있어야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지만, 냉정한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상을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비단 구호사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대선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구사한 수많은 말을 정권을 잡은 뒤에는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검증할 필요가 있다. 선의를 가진 사람은 ‘정당함’의 포로가 되기 쉽다. 그래서 선의를 가진 사람은 ‘큰 걸음’을 선호한다. 걸음을 크게 내딛어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탈원전’이나 최저임금 인상 논란을 보면서 선의와 큰 걸음의 함정을 자꾸 떠올린다. 어렵고 힘든 문제일수록 선의보다 냉정한 계산으로, 잰걸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구호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었다. 전대협 3기 의장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이 말에 담긴 이념은 그때와 달라졌겠지만 그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정부가 혼자 달려 나가지 말고, 함께 걸어갔으면 한다.

‘구덩이(Holes)’라는 아동소설로 유명한 미국 작가 루이스 새커는 ‘구덩이’의 스핀오프 격인 소설 ‘작은 발걸음(Small Steps)’에 이런 구절을 넣었다. “중요한 건 작은 걸음으로 그저 꾸준히 가는 거야. 삶은 강을 건너는 것과 같아. 만약 발걸음을 너무 크게 하면 물살이 너를 넘어뜨려 하류로 떠 밀어버릴 거야.”








주간동아 2017.07.26 1098호 (p5~5)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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