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의 ‘사랑’ 공연.
“9만9000원이라는 티켓 값이 비싸다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가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4월 초 가수 이문세의 공연 ‘2011 이문세 붉은 노을’을 본 한 관객이 한 말이다. 공연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삼성홀은 관객 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 이문세는 지난해 말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대형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3회 공연 모두 객석 1만 석을 다 채웠다.
최근 이문세처럼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음에도 소극장으로 향하는 스타가 늘었다. 200~500석 규모의 소극장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 가수는 인기를 얻을수록 소극장, 중극장, 대형 극장으로 공연장 규모를 늘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 공식이 깨지고 있다.
맨 뒷좌석 관객 표정도 생생
싸이는 대형 공연에 강한 대표적인 가수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7년 연속 대형 체육관 공연을 전석 매진시킨 기록이 있을 정도. 이런 그가 2월 450여 석 규모인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메리홀에서 공연을 펼치더니, 이제는 아예 ‘소극장 스탠드’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소극장 공연을 하고 있다. 가수 이적 역시 3월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사랑’ 공연을 펼쳤고, 관객 반응이 뜨겁자 4월 15일부터 2주간 앙코르 공연을 선보인다. 가수 김장훈도 조만간 소극장 장기 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흐름에 동참한 이는 가수만이 아니다. 개그 듀오 컬투 역시 8년 만에 소극장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스타들은 왜 소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이들은 하나같이 “관객과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싸이 측 관계자는 소극장 공연을 기획한 이유로 “대형 공연이나 일반 행사와 비교해 수익은 적지만, 관객과 훨씬 가까이에서 뜨겁게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객과 밀착하는 느낌이 소극장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 이적과 컬투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객석 앞자리에 앉은 사람부터 끝자리에 앉은 사람까지 모든 관객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관객의 반응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소극장 공연의 장점이다.”(이적)
“소극장 공연은 관객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관객 반응에 따라 공연 내용도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변한다.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관객을 무대 위로 부를 수도 있다.”(컬투)
공연 비수기에 일석이조 효과
이문세는 ‘붉은 노을’을, 싸이는 ‘소극장 스탠드’를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한편 소극장 공연은 공연 비수기인 2~4월에 가수들에게 그 나름의 돌파구가 된다. 대형 공연은 비용이 많이 들어 티켓 값도 비싼데, 비수기에는 티켓을 다 소화하기가 어렵다. 결국 소극장 공연은 가수들에게 흥행을 걱정하지 않고 공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음악칼럼니스트 유혁준 씨는 “소극장 공연은 공연 준비 비용이 훨씬 낮아 위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전했다.
또한 소극장 공연은 장기 공연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지도 높은 가수에게는 매력적이다. 보통 대형 공연은 공연장 대관료가 비싸 장기 공연을 하기 힘들다. 인기 가수는 티켓 판매율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장기 공연을 통해 수익을 높일 수 있다. 보통 공연에서 유료 티켓 판매율이 90% 정도라고 할 때 기획사 측이 벌어들이는 순수입은 티켓 판매량의 3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음반 시장이 축소된 현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 공연기획자는 “실력 있는 인기 가수 사이에서 시장 상황에 맞춰 봄에는 소극장 공연을, 연말에는 대형 공연을 하는 방식이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소극장 공연을 하는 이유가 수익 때문만은 아니다. 소극장 공연은 스타에게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이자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 씨는 “대형 공연만 하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소극장 공연을 통해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소극장 무대는 스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8년 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처음으로 공연 ‘컬투쇼’를 펼쳤던 컬투는 “소극장 무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컬투도 없었다. 소극장은 가장 애착이 가는 무대이자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소극장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세시봉’ 열풍,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인기 등으로 아이돌그룹 중심의 ‘보는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에 집중하는 대중이 늘어난 것. 이적의 콘서트를 관람한 직장인 김민정(25) 씨는 “피아노, 키보드,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감동의 여운이 오래갈 것 같다”며 “기회가 닿는 대로 소극장 공연을 보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극장 무대를 누구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공연 관계자들의 중론. 음악에 대한 자신감, 관객 동원에 대한 확신 없이는 소극장 공연을 결심하기가 어렵다는 것. 강씨는 “소극장 공연을 장기간 이어갈 수 있는 음악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며 “목 상태나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가수가 소극장 공연을 하다가 4~5회 때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6회 공연은 다 해내지도 못했다는 말을 들려준 공연기획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