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삼성으로부터 인수한 삼성탈레스(현 한화탈레스)는 통신전자, 레이더 분야에 강한 방산업체다. 사진은 삼성탈레스가 전투체계를 담당한 서애류성룡함(KDX-III)의 2011년 진수식 모습. 사진 제공 · 국방부(왼쪽) 두산은 최근 두산DST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사진은 두산DST의 주요 제품 중 하나인 K-21 보병전투장갑차로 2013년 국군의 날 행사에 등장한 모습. 동아일보
삼성 떠나고 두산도 떠날 채비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방산업계의 동향을 보면 의문이 든다. 삼성, 두산 같은 대기업들이 방산 부문을 일찌감치 매각했거나 정리를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왜 서둘러 방산을 포기하는 걸까. 지금 한국 방위산업은 악화되는 수익성과 치열한 경쟁 때문에 진통을 겪고 있다.특히 두산의 방산 부문 계열사 두산DST의 매각 추진은 여러모로 한국 방산업계에 상징적이다. 두산은 매각으로 확보된 자금을 면세점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방산 팔아 면세점, 한국 방위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한편 삼성은 6월 말 그룹 내 방산 계열사였던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삼성과 두산의 방산 부문 매각은 대기업들의 방산 이탈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매물로 나온 두산DST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매각설이 나올 때부터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꼽혔던 한화와 LIG넥스원 모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두산DST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그 분야에서는 (인수를 하더라도)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LIG넥스원 측이 두산DST에 대한 투자설명서(Information Memorandum·IM)를 수령해 언론에서는 인수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관계자 말은 조금 다르다.
“투자설명서를 받아간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 검토 중이고 내부적으로도 그리 적극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방산업체들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두산DST의 재무적 투자자인 한 사모펀드가 경영권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두산DST의 지분구조는 그룹이 51%를 보유하고, 사모펀드인 아이엠엠프라이빗에쿼티(IMM PE)와 미래에셋자산운용PE 등의 컨소시엄이 49%를 가지고 있는 상태인데, 두산그룹의 지분과 미래에셋자산운용PE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것. ‘주간동아’는 사실 확인을 위해 두산DST와 IMM PE 양쪽에 접촉을 시도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삼성은 최근 그룹 내 방산 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했다. 사진은 삼성테크윈의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인 K-9 자주포. 동아일보
한화의 야심…KAI도 인수하나
올해 방산업계 최대 화제였던 삼성-한화 ‘방산빅딜’에서도 옛날 같지 않은 방위산업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말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의 지분을 한화 측에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올해 6월 말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방산 부문뿐 아니라 삼성 석유화학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도 포함된 총 2조 원 규모의 이 빅딜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포석 작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삼성의 사업집중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반면 한화는 방산업계에서 유일하게 여느 대기업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으로부터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과 삼성탈레스(현 한화탈레스)를 인수하면서 한화는 단숨에 국내 방산업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한화는 글로벌 방산시장에서도 35위권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산업연구원은 전망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그룹 모체가 화약 등을 다루는 방위산업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방산을 주력 사업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그 태생이 원래 방산에 있었고 또한 방산을 주력으로 삼아왔다. 아직 세계적 방산기업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 게 사실이나 장기적으로는 세계 일류급 기업들과 어깨를 견주고자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화가 세계 일류급 방산기업이 되려면 아직 인수해야 할 대상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KAI는 생산액 규모로도 국내 방산업계 2위(표 참조)지만 국내에서 항공기 완제품을 생산하는 유일한 방산업체다.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등의 수출로 근래 한국 방산 제품 수출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이기도 하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가 항공우주산업인 만큼, 세계 일류급 방산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한화의 비전을 달성 위해서는 KAI와의 인수합병이 필수적이다. “KAI에 관심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화가) 세계 일류급 방산기업이 되려면 당연히 (KAI 인수를) 생각 안 할 수 없다.” 한화 관계자는 KAI를 인수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br>
이미 금융위원회는 11월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비금융 자회사들을 3년 안에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상태. 그중에서도 KAI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매각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산업은행 측은 “(KAI) 매각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독자적으로 지분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쪽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매각 방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한화는 최근 종합방산기업으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사진은 8월 4일 국방과학연구소 안흥 시험장에서 시험사격 중인 한화의 차기 다연장로켓포(MLRS) ‘천무’의 모습. 사진 제공 · 국방기술품질원
삼성과 두산이 방산 부문을 정리하면서 이제 한국 방산업계는 한화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KAI가 민영화될 경우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자 또한 한화가 되리라는 데는 업계 관계자 모두가 동의한다. 한화가 방산업계 유일자가 되는 것은 과연 한국 방위산업에 긍정적일까. 아직까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화가 지상·전자장비, 정밀유도무기에 더해 항공무기체계까지 아우르는 종합방산기업으로 거듭나면 세계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는 있을 것이다. 반면, 방산업계의 유일무이한 매머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은 약화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정부가 비리 척결 및 경쟁력 강화라는 기치 아래 방산업계를 옥죄면서 목표했던 결과가 과연 ‘경쟁력’을 갖춘 ‘단 하나의 대기업’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한화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한국 방산업계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가질 테지만 그중 어느 쪽도 정부 의도와는 부합하지 않는 듯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국내 유일의 완성품 항공기 제조업체다. 종합방산기업을 꿈꾸는 한화가 군침을 흘리는 것도 당연하다. 사진은 필리핀에 수출된 국산 전투기 FA-50. 사진 제공 · 한국항공우주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