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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세대, 히피문학의 향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인히어런트 바이스’

히피세대, 히피문학의 향수

히피세대, 히피문학의 향수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한 장면.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2014년작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 토머스 핀천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핀천은 꿈, 환각, 정신병이 뒤섞인 특유의 문학세계 때문에 영화계에선 각색 불가로 낙인찍힌 작가다. 전형적인 히피세대에 속하는 핀천은 우리에겐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교적 쉽다는 이 작품도 대마초와 마약 과용, 이에 따른 환각과 편집증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핀천의 세계는 여전히 난해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매력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핀천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각색된 영화다. 앤더슨 감독은 2012년 작 ‘마스터’로 ‘미래의 거장’을 예약한 중견감독인데,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그에 대한 기대가 과장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영화 배경은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다. 누아르의 전형처럼, 도입부에서 사립탐정 닥(호아킨 피닉스 분)은 예상치도 않게 금발미녀인 옛 애인(리스 위더스푼 분)의 방문을 받는다. 그녀는 지금 토건재벌과 사랑에 빠져 있는데, 이 남자가 납치 위험에 처했으니 구해달라는 것이다.

자기 곁을 떠난, 사랑했던 여인이 갑자기 나타난 첫 장면부터 영화는 핀천의 몽상적인 공간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닥은 대낮부터 대마초를 너무 많이 피웠기 때문인지, 지금 자기 앞에 등장한 여인이 진짜인지, 아니면 환영인지 잠시 의심하는 눈치다. 그래서 옛 애인은 마치 공중에 살짝 떠서 걸어오는 것처럼 표현된다. 도입부부터 관객은 꼼짝없이 영화가 안내하는 꿈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히피세대, 히피문학의 향수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주인공 닥의 테마 음악 ‘과거로의 여행’을 부른 .가수 닐 영.

닥이 사건 속으로 들어가면서 영화에서는 미국 사회의 악취가 풍겨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핀천 특유의 테마이기도 한데 유색인(특히 흑인)은 차별받고, 나치주의자는 여전히 설치며, 극단주의자는 조직을 만들어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당하며, 저개발국가는 미국 산업의 식민지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요지경 속에서 의사, 경영인 같은 사회 엘리트들은 마약으로 떼돈을 버는 다국적기업의 하수인으로 일한다. 말하자면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치부(致富)라는 것이 범죄에 의해 성취되는 것처럼 보고 있다. 이것은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세계의 불치병인 ‘타고난 악덕(Inherent Vice)’이라는 의미일 터다.

흥미롭게도 이런 악취 나는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환각이다. 영화는 탐정 닥의 도피주의적 환각 속에 ‘영혼의 순수함’을 심어놓았다. 세상은 히피세대의 순수함을 비웃는 영리한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닥은 여전히 시대를 부정하고 자기 세대의 가치를 고집하는 외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의도적으로 세상과 거리를 둔 닥의 냉소는 오염된 세상에 대한 자기방어라는 것이다. 히피세대의 상징 같은 가수 닐 영의 노래 ‘과거로의 여행(Journey Through The Past)’, 그리고 펑크록 밴드 캔의 ‘비타민 C(Vitamin C)’ 등이 닥의 테마 음악으로 사용되는데, 당대 주류에 반항하던 청년들의 노래는 말하자면 탐정 닥의 개성이자, 감독 앤더슨이 지지하는 가치일 것이다.

입력 2015-06-15 11:20:00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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