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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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에드워드 호퍼의 마음 풍경

토드 헤인스 감독의 ‘캐롤’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2-29 10: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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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리얼리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주로 여성)은 종종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진지해, 설령 옆에 있다 한들 방해가 될까 봐 말도 못 붙일 정도다. 주로 혼자 등장하는 그들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과 함께 식당에 앉아 있어도 진지하고 외로운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법은 거의 없다. 고립된 존재가 갖는 궁극의 고독이 그림 전체 느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 그것은 호퍼의 인물과 관객 사이를 관통하는 피할 수 없는 존재 조건이다.
    호퍼의 그림은 영화 장르로 분류하자면 멜로드라마다. 인물 심리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다. 현재 활동하는 감독 가운데 호퍼의 회화를 화면 구성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인물이 토드 헤인스다. 그가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것이 우연이 아닐 테다. 헤인스는 ‘파 프롬 헤븐’(2002)에서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묘사하며 호퍼의 회화를 적극 이용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세상의 표면을 묘사하는 데 호퍼의 회화를 주로 참조했다. 반면 최근작 ‘캐롤’(2015)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그림이 더욱 참조된 게 다른 점이다.
    ‘캐롤’은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룬 멜로드라마다.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은 중산층 주부로, 미국 뉴욕 근교의 부유한 전원주택에 산다. 반면 젊은 테레즈(루니 마라 분)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기간제 점원으로 도심의 가난한 아파트에 산다. 두 여성이 크리스마스 시즌 백화점에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부터 화면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회 통념은 물론, 경제적 격차와 연령차도 극복해야 하는 큰 모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감독 헤인스는 그런 모험이 얼마나 외로운 여정인지를 묘사하는 데 표현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테면 캐롤과 테레즈가 카페에 앉아 있을 때, 기차를 타고 있을 때, 그리고 모텔방에 있을 때 영화 화면은 호퍼의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카페, 기차, 모텔은 전부 호퍼의 주요 소재다). 적막감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어서다. 두 여성이 함께 있어도 화면엔 방해하지 못할 고요함, 외로움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두 여성은 호퍼의 ‘중국식당’(1929) 속 인물들처럼 고립돼 보인다. 그들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다. 과연 이들이 사회 통념의 벽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당시는 1950년대로, 극단적 보수주의인 매카시즘이 사람들을 옥죌 때인데 말이다. 이들의 불안과 외로움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고 만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은 기다림’이다(‘사랑의 단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늘 기다림의 주체라는 뜻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고 외로운지는 우리 모두 아는 바다. 호퍼가 사랑받는다면, 바로 그런 외로움에 대한 공감 능력 덕분일 테다. 그것은 영화 ‘캐롤’의 미덕이기도 하다. 특히 캐롤을 기다리는 테레즈의 불안하고 외로운 눈빛은 세상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뺏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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