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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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제 중·러 新밀월관계

정상회담 이은 연합 군사훈련, 경제 협력도 본격화

  • 구자룡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입력2015-05-18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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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소련 붕괴를 전후로 모습을 감췄던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이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신(新)냉전’ 시기가 찾아오면서 지구촌에 거대한 질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이 강화되고 이에 맞서 6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동지 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의 ‘신밀월관계’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이어 5월 11일부터 지중해에서 시작돼 21일까지 계속되는 중국과 러시아 해군의 연합 훈련은 이러한 두 나라 사이의 신밀월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먼저 9일 승전 기념식 군사 퍼레이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3군 의장대 112명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중국군은 러시아를 포함해 총 11개국

    1만6000명이 참석한 행진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며 광장에 들어섰다. 중국군을 ‘특별 예우’하고자 일부러 마지막 순서에 배치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1시간여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오른쪽 옆자리에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앉아 지상과 하늘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양국 정상은 가끔 서로 몸을 기울여가며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양국 간 우호를 과시했다.

    흑해에 등장한 중국 해군



    당초 이날 행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항의해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 행사’가 됐다. 지도자가 참석한 국가는 27개국에 불과해 2005년 60주년 기념식의 절반에 그쳤다. 시 주석의 참석이 한층 돋보인 이유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중국과 힘을 합쳐 일극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중·러 정상은 퍼레이드가 끝난 뒤 진행된 ‘무명용사 묘’ 헌화를 할 때도 나란히 섰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기념식 참가에 대한 답례로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반파시스트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배경으로 펼쳐질 행사에서도 붉은광장에서처럼 중·러 정상이 나란히 자리를 함께할지 관심을 끈다.

    5월 9일 오후 모스크바 시민들이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행진을 벌일 때는 마오쩌둥의 초상화도 등장했다. 류샤오치 전 국가주석의 딸 류아이친 등 혁명 2세대 30여 명이 과거 지도자 7명의 사진을 들고 나타났다. 중·러 간 ‘이데올로기 동지애’를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퍼레이드가 있기 하루 전인 5월 8일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미국 견제라는 공동 전선 구축을 확인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전 세계적인 범위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시스템을 개발하고 배치하는 것은 국제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지구의 전략적 안정과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미국이 중·러 정상회담이 열린 날 발표한 보고서는 의도적으로 날짜를 맞췄다는 오해를 살 만하다. 미 국방부는 이날 발표한 ‘중국 군사 안보 발전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이 2005년부터 10년간 연평균 9.5%씩 국방 지출을 늘렸으며 남중국해 난사(南沙)군도의 전초기지 부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영유권 주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러시아와 중국 해군이 벌이는 ‘해상연합 2015’ 훈련은 그동안 중국 인근 해역에서 벌였던 3차례 연합 훈련보다 긴 최장 기간이다. 중국 해군은 이번 훈련을 위해 5월 4일 처음 군함 2척을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흑해에 진입시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턱밑에서 벌어지는 중·러 해군의 연합 훈련에 NATO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시할 것이라고 홍콩 ‘명보’는 전했다.

    중국 해군은 이번 연합 훈련에 북해함대 소속 054A형 미사일 호위함 웨이팡함과 린이(臨沂)함, 종합보급선인 웨이산후(微山湖)함 등 군함 3척과 함정 이착륙 헬기 2대, 특전부대를 파견했다. 러시아 해군은 흑해함대 소속 군함 9척을 투입했다. 이들 중국 군함은 아덴 만과 소말리아 해역에서 선박 호송작전을 수행 중이던 함선으로, 이번 훈련을 위해 흑해의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군항에 정박해 있었다. 훈련 기간 중국 해군은 본부를 노보로시스크에 두고 있다.

    동반자이나 동맹은 아니다?

    중·러 간 군사 협력은 중국이 지난해 러시아로부터 냉전 종식 후 최대 규모의 무기 구매를 진행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은 러시아 최신예 Su-35 전투기 35대, S-400 대공미사일 시스템 6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인민해방군 해군을 위해 5세대 칼리나급 잠수함도 개발해주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밀월관계가 깊어가지만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는 단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도 ‘동반자이지 동맹은 맺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를 구축하려는 전략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번 퍼레이드에 비전투부대인 의장대를 보내거나 해군 연합 훈련에도 이미 아데 만 등에 파견돼 있던 군함을 참가시킨 것 역시 미국과 서유럽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중국 측의 고려라는 분석이다.

    일단 중국으로서는 자국 주도로 처음 창설해 베이징에 본부를 두게 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미국 금융패권에 도전할 수 있게 키우기 위해 영국, 독일 등 서방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9월 미국을 방문하는 시 주석도 미국과는 ‘경쟁하되 대립하지 않는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톈춘셩 국무원 산하 중국러시아동구경제연구회 비서장은 “현재의 중·러 군사협력은 동맹 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두 나라 사이의 신밀월은 경제 협력에서도 두드러진다. 양국은 시 주석의 방러를 계기로 5월 8일 시베리아 가스 서부 노선 공급 사업의 기본 방침에 합의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육상과 해상 21세기 실크로드 장기 개발 전략)’ 정책과 러시아의 옛 소련권 경제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사이의 협력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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