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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 ⑦

보이지 않는 세상 질서 껴울림과 때맞음의 법칙

존재하는 물질과 사람 서로 영향 주고받으며 현재 만들어

보이지 않는 세상 질서 껴울림과 때맞음의 법칙

보이지 않는 세상 질서 껴울림과 때맞음의 법칙

2011년 흔들림 현상으로 정밀 안전점검을 실시했던 서울 구의동 고층건물 전경. 조사 결과 건물 내 스포츠센터 회원들이 단체로 음악에 맞춰 운동하며 발생한 ‘껴울림 현상’이 건물 흔들림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에게 글 제목이 마치 생소한 외국어처럼 보일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물리학 전공자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우리말 물리교과서는 대부분 껴울림을 ‘공명’으로, 때맞음을 ‘동기화’로 표현한다. 대체 껴울림과 때맞음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일까. 이를 설명하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목적이지만, 잠깐 샛길로 빠지는 것을 양해하시길.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글이 있다 하자. “침대에서 눈을 떴다. 광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읽고서 광자가 사람 이름인지 아니면 빛 입자를 일컫는 광자인지 어느 누가 알겠는가. 이처럼 중국, 일본에서 오래전 직수입해 표준용어가 된 수많은 과학 용어가 있다. 요사이 많은 물리학자가 기존 물리학 용어인 광자를 ‘빛알’이라는 우리말로 바꿔 부르고자 노력한다. 아직 성공적이진 않지만 말이다.

일상에서 어려운 과학 용어

모든 학술 용어를 순우리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필자가 처음 물리학을 공부할 때는 뉴턴의 ‘만유인력’이라고 배웠다. 요즘 강의할 때는 ‘보편중력’이라는 용어로 바꿔 쓴다. 두 용어 모두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끄는 힘(인력)인 중력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 한자어지만 보편이 만유라는 단어보다 과학 용어로 더 좋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편이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훨씬 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반면, 만유라는 단어는 만유인력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과학을 멀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과학 용어는 과학을 사람들의 삶에서 더 멀어지게 만드는 한 원인이 된다. 과학, 특히 물리학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물리학 용어를 외워서 기억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용어 자체가 아니라 그 용어로 표현되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용어는 어떤 것이 돼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처음 새로운 과학 개념을 배울 때는 당연히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자주 사용하는 개념과 연관해 이해하는 것이 쉽다.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만유’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학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더 많이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필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한자를 몰라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 개념이 있다면, 그건 학생의 잘못이 아니라 그 어려운 용어를 쓰자고 고집하는 필자 같은 과학자들 잘못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중고교 때 물리학의 광자는 ‘빛을 이루는 입자 혹은 알갱이’라고 배운다.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앞의 한자어 광자를 좀 더 익숙한 우리말로 직역했을 뿐이다. 만약 광자 대신 ‘빛입자’ 혹은 ‘빛알’이라고 쓰고 그렇게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굳이 광자라는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 광자를 모른다고 학생들에게 ‘빛 광(光)’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아예 ‘광’을 ‘빛’이라고 바꿔 부르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비록 100%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뜻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용어가 더 좋은 과학 용어라고 믿는다.

겨울 김장김치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김장을 담글 때 절이고 양념한 배추와 함께 ‘껴묻은’ 무였다. 마당에 묻은 김장독에서 어머니가 포기김치와 함께 꺼내온 무가 그렇게 상큼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껴’라는 접두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마찬가지로 ‘종이 울린다’의 ‘울림’이 무슨 뜻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테고. 이 두 단어를 붙여 만든 껴울림은 바로 ‘두 물체가 같이 울린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우리나라 한 고층 건물의 이상 진동현상이 널리 기사화된 적이 있다. 음악에 맞춰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의 집단 움직임으로 생긴 울림이 건물 전체가 큰 폭으로 진동하는 울림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껴울림 현상이다.

껴울림 현상이 생기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외부 자극이나 힘 없이도 한 물체가 특정한 진동수(이를 고유진동수라 부름)로 움직인다. 보통 진동의 진폭이 아주 크지 않으면 이 물체의 고유진동수는 일정하다. △이 물체에 외부로부터 특정 진동수(이를 외부진동수라 부름)를 갖는 주기적인 힘이 주어진다. 만약 외부진동수가 고유진동수와 같게 되면 물체는 껴울림 현상을 보이면서 진폭이 상당히 커진다.

위 설명이 너무 어렵게 들린다면 몇 가지 예로 이해해보자. 유치원생 조카가 타는 그네를 밀어주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이때 어떻게 하면 적은 힘으로 그네 움직임을 점점 더 크게 할 수 있는지 여러분은 누구나 경험으로 안다. 그네가 다가왔다 막 멀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그네를 미는 것이 요령이다. 여러분은 몰랐겠지만, 조카의 그네를 밀 때마다 부지불식중에 물리학의 껴울림을 이용한 것이다. 그네가 정확히 3초마다 한 번씩 앞으로 다가온다면 당연히 그네를 3초마다 한 번씩 밀어야 그네의 진폭이 점점 커진다. 즉 그네가 움직이는 주기인 3초에 해당하는 그네의 ‘고유진동수’가 여러분이 그네를 미는 시간 간격인 3초에 해당하는 ‘외부진동수’와 같아지면, 약한 힘으로 밀더라도 곧 그네 타는 조카가 “무서우니까 이제 그만”이라고 부탁할 정도의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상 질서 껴울림과 때맞음의 법칙

반딧불이가 동시에 깜빡이는 현상, 나란히 놓인 진자시계가 같이 움직이는 현상, 유행이 일어나는 현상 등 우리 주위에서는 ‘때맞음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사진은 전북 무주군 백운산 중턱에서 애반딧불이가 발광하는 모습.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한 건물의 이상 진동현상도 껴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12층에서 사람들이 운동하지 않더라도 건물은 특정한 고유진동수를 갖고 미세한 정도로 움직인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집단 운동 때문에 만들어진 외부진동수가 건물의 고유진동수와 같아지면, 껴울림 현상으로 인해 건물 진폭이 커지는 것이다.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주워온 커다란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바닷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를 들어 봤는가. 이것도 껴울림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높낮이(음의 높낮이는 바로 소리의 진동수가 결정한다)의 수많은 소음이 있다. 이러한 소음 중 빈 소라껍질 안의 공기 기둥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정 진동수를 갖는 외부 소음만이 껴울림을 만들어 크게 들리게 되고, 그 소리가 바로 소라껍질에 담아온 지난 여름 바닷 소리다.

소라껍질 바닷소리는 껴울림

믿기지 않는다면 빈 물컵을 갖고 같은 실험을 해보면 된다. 소라껍질뿐 아니라 물컵도 바닷소리를 낸다. 물컵 크기를 바꿔가면서 들리는 소리의 높낮이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물컵이 클수록 소리의 진동수가 작아져 더 낮은 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빈 물컵 안의 공기 기둥이 길어지면 소리가 낮아진다(길고 큰 관악기는 짧고 작은 관악기보다 낮은 음을 낸다. 대금과 피리를 떠올려 보라).

마찬가지로, 불 꺼진 어두운 밤에 또르륵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컵에 넘치지 않게 물을 가득 담을 수 있다. 물이 수면에 닿아 만드는 소리 중 수면 위의 공기 기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고유진동수와 같은 소리만 껴울림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컵 수면 위의 공기 기둥 높이가 작아질수록 진동수가 커져 물소리의 음이 높아지고, 따라서 약간 연습만 하면 누구라도 적당한 양의 물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컵에 따를 수 있다. 물소리가 급격히 높아지는 바로 그 순간을 잘 판단하면 된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다 보면, 특정 악기의 특정 음에서만 방 창문이 울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창문이 갖는 고유진동수가 특정 악기가 내는 특정한 음의 외부진동수와 같아져 생기는 껴울림 현상이다. ‘양철북’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가.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단지 목소리만으로 유리잔을 깬다. 마찬가지로 껴울림 현상이다. 마이크가 스피커와 가까우면 간혹 커다란 소음을 만들어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는 일이 생긴다. 이것도 껴울림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옛날 라디오에서 듣고자 하는 방송 전파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파수를 조정하는 동그란 모양의 다이얼 안쪽에는 돌리면 겹치는 면적이 변하는 축전기가 붙어 있다. 축전용량을 변화시켜 라디오 전자회로의 고유진동수를 조절해 방송 전파의 외부진동수에 맞추면 회로에 큰 전류가 흐르는 껴울림 현상이 일어난다. 또 전자레인지 안에 음식물을 담은 접시를 넣고 작동시키면 접시는 뜨거워지지 않고 음식물만 뜨거워지는 이유도 껴울림 현상 때문이다. 전자레인지가 만드는 마이크로웨이브 전파의 외부진동수를 물 분자의 고유진동수에 맞춰놓아 물을 포함한 음식만 온도를 올린다. 이뿐 아니다. 아마도 머잖아 대중적으로 사용될 것이 분명한 휴대전화의 무선 충전도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서 충전이 가능하게 하려고 바로 껴울림 현상을 이용할 것이다.

사회현상에서도 이러한 껴울림 현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자살률은 계절에 따라 변한다. 독자는 대부분 겨울에 자살률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초여름인 6월 자살률이 다른 달보다 높은데, 이는 매년 반복된다. 참고로 지구 남반구에서는 반대로 그곳이 여름인 12월 자살률이 높다. 이것도 분명히 일종의 껴울림 현상임에는 맞지만, 왜 그런지 필자는 모르겠다.

물체의 시간 움직임 맞춰지는 때맞음

보이지 않는 세상 질서 껴울림과 때맞음의 법칙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윤경식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두 사람이 손가락을 뻗어 서로를 가리키면 손끝 움직임과 함께 뇌파도 일치(동기화·때맞음)한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었다.

때맞음은 말 그대로 ‘때’가 ‘맞음’을 의미한다. 즉, 어떤 물체의 시간(때)에 대한 움직임이 서로 맞춰지는 것을 뜻한다. 필자가 강연할 때 청중에게 자주 부탁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박자에 맞춰 함께 박수를 쳐달라”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많은 사람이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치게 된다.

언뜻 생각하면 신기할 것 없는 현상임에도 필자를 포함한 많은 물리학자가 이 현상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바로 최종적으로 합의된 박자는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자를 맞춘(즉 ‘때맞음’된) 박수에서는 어느 누구도 지휘자가 아니었다. 누가 일어나서 ‘하나, 둘’하고 외치지 않았으니까. 이처럼 누구도 지휘자가 아니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사실 모두가 지휘자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때맞음 현상도 앞의 껴울림 현상처럼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어난다. 벽에 매달린 진자시계 두 개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은 300여 년 전 네덜란드 물리학자 하위헌스가 이미 발견한 바 있다. 또 동남아시아에 사는 반딧불이의 한 종류는 엄청나게 많은 수가 한 나무에 앉아 동시에 박자를 맞춰 깜박깜박 빛을 내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느 한 마리가 지휘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식시장에서 어떤 때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주가가 폭등하거나 폭락한다. 주식을 거래하는 수많은 투자자가 동시에 ‘팔자’ 혹은 ‘사자’ 주문을 내기 때문이다. 이것도 때맞음 현상이다. 무생물인 진자시계, 곤충인 반딧불이, 그리고 사회를 이루는 만물의 영장 사람까지, 이처럼 다양한 집단에서 관찰되는 때맞음 현상의 바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다른 청중의 박수에 맞춰 박수를 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집단적인 때맞음은 많은 경우 되먹임(feedback)으로 말미암아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열 명이 만들어지면 곧이어 열 명이 스무 명이 되고, 그다음에는 더 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소리를 듣고 박자를 맞춰 합류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되먹임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론의 형성, 짧았다 길어졌다 하는 여성의 치마길이, 또 지난번 글에서 얘기한 사람들의 이름 유행 등 많은 사회 현상이 때맞음 현상을 보여준다. 어느 누가 목소리 높여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민주주의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체적으로는 옳은 의견으로 수렴되는 그런 것 말이다. 이번 글에서는 물리학 얘기가 좀 많았다면, 다음 글은 다시 전혀 물리학답지 않은 ‘계층구조와 민주주의’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입력 2013-09-09 10:39:00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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