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광화문빌딩에서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를 기리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최근 타계 10주기를 맞아 대산을 추모하고 조명하는 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한국보험학회는 9월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광화문빌딩에서 ‘한국의 보험산업과 대산 신용호’라는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교보생명은 같은 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대산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추모의 밤 행사와 고인의 발자취를 회상해볼 수 있는 추모 사진전을 가졌다.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남상욱 서원대 교수 등 5개 교수팀이 연구논문 발표를 통해 대산의 경제, 경영, 사회적 업적을 학술적으로 재조명했다. 남 교수는 1970년부터 2012년까지 교육보험의 국가 경제성장 기여도를 연구해 “교육보험은 국가 경제성장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물가 및 실업률 안정, 교육비 지출액 축소 등 경제 안정에도 일정 정도 이바지했다”며 대산의 업적을 기렸다.
대산에게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천인 동시에 전망 있는 사업모델이었다. 김두철 상명대 교수는 “전쟁 상흔으로 국가경제는 피폐하고 보험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대산은) 국민의 근면성과 뜨거운 교육열에 주목해 창업 후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개발, 한국 보험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봉주 경희대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는 대산의 경영철학을 △변화와 혁신 중심 경영 △결단과 추진을 동반한 경영 △업(業)의 본질에 입각한 경영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등으로 분석했다. 또 이런 대산의 경영철학을 잘 살리면 침체에 빠진 생명보험 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교육에 생명보험 원리 접목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1983년 6월 보험의 노벨상인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하는 신용호 창립자(왼쪽). 1994년 6월 현대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왼쪽)와 신용호 창립자가 서울 강남 교보타워 설계를 협의하는 모습(맨 위부터).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교육보험은 6·25전쟁의 후유증을 겪는 국민에게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절약하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교육보험은 출시 이후 30년간 300만 명에 가까운 학생에게 입학금과 학자금을 지급했다. 이렇게 교육 기회를 얻은 인재들은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공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로부터 보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96년에는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며 ‘보험의 대스승’으로 추대됐고, 2000년 1월엔 보험 산업으로 국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아시아생산성기구(APO)로부터 ‘APO국가상’을 받기도 했다. 대산은 APO국가상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키워내고, 민족자본을 형성해 경제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보험 사업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교육과 민족을 사랑한 기업가로 영원히 남고 싶습니다.”
2003년 9월 86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산의 삶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다름 아닌 ‘국민교육’ ‘교육입국’이었다. 이토록 그가 평생 지향했던 교육은 학교교육을 뛰어넘는, 포괄적이고 실전 체험을 통한 ‘산교육’이었다. 실제로 이력서의 최종 학력 칸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고 썼던 대산에게는 만나는 모든 사람,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었다.
대산의 ‘국민교육’에 대한 신념 한 가닥이 교보생명으로 구현됐다면, 다른 한 가닥은 교보문고였다. 광화문 교보빌딩 지하 1층에는 우리나라 대표 지식문화기업 교보문고가 자리 잡고 있다. 연간 판매도서 5000만 권에 연간 방문객 4000만 명. 인터넷 서점까지 포함하면 하루 평균 20만 명이 찾는 ‘국민 책방’이다. 교보문고 입구 벽에 새겨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귀는 대산의 독서철학을 잘 보여준다.
기업 이윤 사회 환원에도 앞장
광화문 네거리,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에 수익성이 낮은 서점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임직원은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대산은 “사통발달 한국 제일의 길목에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렇게 습득한 각양각색의 곰삭은 교양이 어떤 형태로든 나라를 위해 투자됐을 때 어찌 이 자리에 고급 상가를 들인 것에 비기겠습니까”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서도 ‘국민교육’의 신념을 놓지 않았다. 기업 이미지가 목적이 아니었고, 배고픈 사람에게 낚싯대를 구해주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고민했다. 재단을 설립하기 전 각계 인사를 만나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발전해야 하지만 아직 소외된 분야가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리고 마침내 농촌, 문학, 환경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공익재단을 설립한다.
대산은 우리 민족 삶의 뿌리인 농촌을 살리기 위한 대산농촌문화재단, 한국문학 진흥과 세계화를 후원하는 대산문화재단, 교육의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한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을 통해 선진농업연구, 교육 및 문학 지원 사업, 장학 사업 등을 펼치며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까지 교육과 지식의 뿌리가 내리도록 했다.
1991년 1월 광화문 네거리에 ‘광화문 글판’을 처음 내건 것도 그였다.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초기 문안은 계몽적 메시지가 주를 이뤘지만, 97년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산은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을 운영하자고 제안했고, 거기에 시심(詩心)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광화문 글판은 이제 2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시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서울의 문화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교보생명은 올해로 창립 55주년을 맞았다. 총자산은 70조 원에 달하며, 지난해에는 당기순이익 5723억 원을 실현했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4년 이후 줄곧 대형사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는 교보생명의 신용등급을 ‘A2’(안정적)로 발표했다. 2008년 이후 6년 연속이다. 무디스로부터 신용평가를 받는 국내 보험사는 교보생명이 유일하다. 재무안정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2000년 취임한 신창재 회장은 선대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변화와 혁신으로 극복하고 탄탄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