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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심장 두드리는 선율 록 전설이 다시 살아났다”

록밴드 ‘크라티아’

“심장 두드리는 선율 록 전설이 다시 살아났다”

“심장 두드리는 선율 록 전설이 다시 살아났다”

록밴드 ‘크라티아’ 리더 겸 기타리스트 이준일 씨, 드러머 오일정 씨, 베이시스트 김인철 씨(왼쪽부터).

“로커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록밴드 ‘크라티아’ 리더 이준일(45) 씨의 말이다. 1987년 크라티아를 결성해 우리나라에 메탈음악 붐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분명 ‘타고난 로커’였다.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우리나라 헤비메탈 팬이라면 1기로 분류되는 ‘시나위’ ‘백두산’ ‘부활’에 이어 2기쯤에 해당하는 크라티아 이름을 어렵지 않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굳이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오랫동안 대중 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몇 번의 멤버 교체 후 소리 소문 없이 활동을 중단한 크라티아는 최근 23년 만에 앨범 ‘레트로 펀치(Retro Punch!)’로 복귀하기까지 사실상 잊힌 이름이었다.

대한민국 록밴드 2기

한동안은 이씨 자신도 잊고 지냈다. 그는 “1996년부터 13년 4개월간 대형 제과업체 기능직 사원으로 살았다”고 했다. ‘로커 상징’인 가죽 재킷을 벗고 공장 작업복을 입은 건 아들이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 때문이었다. 공연 중 흥이 날 때면 치아로 기타 줄을 물어뜯으며 베토벤 교향곡 ‘환희’를 연주하던 그는 무대를 내려온 뒤 하루 12시간씩 주야 2교대 근무를 하며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직장 생활은 의외로 잘 맞았다.

“‘모범사원’으로 뽑혀 금수저도 받았어요.”



자랑처럼 씩 웃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계가 찾아왔다. 2007년 취미 활동으로 직장인 밴드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기타를 잡자 내 안에 숨어 있던 야수 본능이 깨어났다”고 했다. “내가 원래는 맹수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로커는 태어나는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금세 피가 뜨거워진 그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쇼윈도에 비치는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크라티아 재결성에 나섰다.

쉽지는 않았다. 음악을 떠난 뒤 만나 ‘남편 실체’를 전혀 몰랐던 아내와 이제 중3, 중1이 된 두 아이는 ‘가장’의 새로운 모습에 어리둥절해했다. 밴드 구성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35명이 드나들었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멤버 교체가 이어졌다. 드러머 오일정(38), 베이시스트 김인철(35) 씨가 합류하면서 비로소 지금의 진용을 완성한 것이 2011년. 그해 8월 녹음을 시작한 음반이 올 1월 발매됐으니, 그간 ‘산고’를 짐작할 만하다. 김씨는 “어린 시절 크라티아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밴드 활동을 시작한 뒤 ‘당시 형님들은 어디서 뭐 하며 지내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크라티아 역사의 일부가 됐으니, 좀 힘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라며 “어떻게든 이 음반이 나와야 크라티아가 되살아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오일정 씨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두 멤버만이 아니다. 앨범 녹음 중 보컬이 이탈해 위기에 빠진 크라티아를 구하려고 한국 록음악계의 대표 가수들도 뭉쳤다. 홍경민을 비롯해 ‘H2O’ 김준원, ‘이브’ 김세헌, ‘블랙신드롬’ 박영철, ‘라디오 데이즈’ 김용훈, ‘원밴드’ 손창현, ‘블랙홀’ 주상균. ‘크래쉬’ 윤두병 등이 ‘레트로 펀치’ 수록곡을 부른 것. 이들 목소리가 고루 담긴 앨범에 대해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1980년대 헤비메탈의 영광과 부흥을 위해 제대로 준비하고 결집한 놀라운 한 방”이라고 평했다.

이씨는 “한마디로 감동적”이라며 “한국 록 시장은 여전히 힘들지만, 이들의 열정과 의리가 있어 평생 로커 길을 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한때 록 음악을 했다는 사실을 ‘추억 팔이’하듯 계속 끄집어내며 미디어에서 소비하는 ‘무늬만 로커’는 안 될 겁니다. 평생 록을 하면서 음악으로 후배들과 소통하는 ‘현재진행형’ 선배로 살 겁니다.”

한 단어 한 단어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는 ‘왕년 록스타’를 자임하는 몇몇 가수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왜 아무한테나 ‘록의 전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록을 모욕하는가. 그들이 로커의 말로를 희화화하고, 록 음악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비통하다”는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직격탄 날려

“한때라도 음악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은 사람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듣기 좋은 가요를 해놓고 이제 와 그것이 ‘록’이었다고 포장하는 게 싫은 거예요.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우리나라에는 정말 ‘록의 전설’이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음악인이 많습니다. 지금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밴드 가운데도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이들이 있고요. 정말 스스로 ‘로커’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이 자존심과 긍지를 지키며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씨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는 “앨범 발매를 계기로 여러 록 밴드와 연합해 다양한 활동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이미 지난해 12월 16일 ‘제로지’ ‘나티’ 등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메탈 음악의 황금시대’에 함께 활동한 밴드들과 홍대 ‘롤링홀’에서 합동 공연을 펼쳤고, 4월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록밴드의 밤’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이씨는 “록 밴드 활동이 활성화하고 록 음악이 번성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더 많은 사람이 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록 문화가 뿌리내린 나라치고 못 사는 나라가 없어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록음악이 번성합니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수준 높은 록음악이 탄생하기 어렵죠.”

이씨는 그 이유로 ‘민주주의와 록의 상관관계’를 들었다. 개성 강한 밴드 멤버가 서로 다른 음악적 견해를 조율하면서 창작물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훈련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사춘기 시절 밴드 활동을 하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는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자라야 록 밴드 활동을 잘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며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던 1980년대 후반 록음악이 전성기를 맞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록 밴드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니. “무슨 로커가 이렇게 교훈적이냐”고 핀잔을 줬다. “로커는 아웃사이더에 사고뭉치, 문제아일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라”는 웃음 어린 답이 돌아왔다.

“로커처럼 순수한 평화주의자가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거칠게 노래하는 건 부조리한 세상에 직격탄을 날리려는 거죠.”

크라티아도 이번 앨범에서 “세상을 네 멋대로 조종하지 마/ 달콤한 위선들로 포장하지 마/ 탐욕에 취해 있는 네 모습을 봐/ 영원히 누릴 거라 착각하지 마” 등의 가사를 담은 ‘블러디 네이션(Bloody Nation)’ 같은 노래를 통해 거칠고 힘찬 정통 록밴드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베이시스트 김인철 씨는 “록음악이 가진 강점은 다른 어떤 장르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적 에너지”라면서 “‘레트로 펀치’를 통해 ‘강해서 아름다운’ 록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2월 앨범 발매를 기념해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에너지를 뿜어낸 공연 실황은 3월 28일 EBS TV ‘스페이스 공감’에서 ‘크라티아, 오래된 새로움을 부르짖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된다.



주간동아 2013.03.11 878호 (p64~65)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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