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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하루 열 명 스무 명…기구한 내 팔자 다 숨겼어”

정부 최초 발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술집 K할머니

“하루 열 명 스무 명…기구한 내 팔자 다 숨겼어”

정부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증언을 담은 구술기록집을 발간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의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를 2월 28일 펴냈다.

우리나라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사람은 2월 현재 236명. 하지만 주변 시선이 무서워 신고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구술기록집에 수록된 위안부 피해자 11명은 모두 2005년 위원회에 신고하면서 피해 사실을 밝혔는데, K(90) 할머니는 2012년에야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주간동아’가 K 할머니 사연에 주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위안부 피해 접수자는 단 3명. K 할머니는 상처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마지막 위안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조사관과 위안부 피해자 K 할머니의 문답으로 구성된 구술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내가) 딱 구십이야. 내 옛날얘기 할까? 열여섯 살 먹어서. 고동 잡으러 바다에 가다가 왜놈들한테 잽힛거든. 고종사촌이랑 둘이 잽히갔는 기라. (흐느낌) 말만 하면 눈물이 난다.

내 데꼬 간 사람은 일본군이지. 군복 입은 사람들이 잡아갔다 아이가. 두 놈이라 두 놈. 덮어놓고 데려다가 잡아끌고 올라갔다 아이가. 차가 큰 차가 아니라 조그만 차라. 그러니까 검은 차, 그거 타고 다녔는기라.

그러곤 일본 나고야라는 데가 있대. 가보니 모두 이래 앉아 있더라고. 여남은 명 되는 모양이라. (눈물 닦음) 뭐 전라도, 경상도 또 뭐 각지에서 오는 기라. 말할 것 같으면 징역 사는 거랑 한 가지라. 거기서 일주일 동안 가둬두고, 밥은 주먹밥을 해다 갖다 줘. 아침때, 저녁때 갖다 주고 그래. 그것만 갖다 주고는 마, 흔적도 없는 기라.



16세 꽃다운 나이에 만주로 끌려가

“하루 열 명 스무 명…기구한 내 팔자 다 숨겼어”

1944년 9월 중국 윈난성에서 심문을 받는 조선인 위안부.

그러고 나서 나오라 그래. 나간께 우리 조선옷을 싹 뺏기삐리. 벗으라 카는 기라 전부 다. 벗어뿌리고 일본옷을 입히는 기라. 요새 생각하면 화장을 싸악 시키는 거라. 그러고 나서 일본옷을 전부 입히드만은 나오라 그래. 그런께 인자 무섭기도 하고 겁도 나고. 나도 어리제. 그래 놓은께 하라는 대로 나갔는데, 나간께 차 타고 가가지고 어디 가서 또 배를 타라는 기라. 배를 죽 타고서는 한 시간인가 넘게 가드만은 내린께 열차 타는 기라. 중국에 만주 데꼬 들어갔어. ‘갑빠’ 가지고 집을 맹그랐는 기라.

‘갑빠’가 뭐냐문, 텐트인 기라. 텐트 그거 갖고 크다랗게 집을 만들었는 기라. 그 안에 (사람을) 갖다 집어넣는 기라. 그 이튿날부터 군인들이 들어오는 기라. 인자. 군인들이 한도 없이 들어와. (울먹임) 무섭기도 하고 한도 없이 무섭고. 처음인께네 즈이 말을 들을 수가 있나. 안 들을라 하제. 이놈들은 자꾸 달라들제. 그런께 인자 말 안 듣는다고 야구방망이같이 생긴 방맹이로 가지고 딱 때려뿐는데 허리가 뿐질러졌쁜는 기라. 즈그 병원에 데꼬 들어가서 진찰을 한 때가 갈빗대 두 대가 뿐질러졌쁜는 기라. 거짓말인가 싶어 이놈들이 만치보고 그래싼께 의사들이 분질러졌다고 그래 놓은께 한 달을 눕히놔.

그러곤 원래 있던 데, 그 ‘갑빠’친 데를 데꼬가. 군인들이 또 들어와. 안 돼, 말 안 듣고는 안 돼. 이제는 억지로, 강제로 달라든다 아이가. 달라든께 못 이기지. 강제로 잡아당기니까, 안 따라 들어갈라고 손을 딱 잡아떼니까 손도 빠지쁜는 기라. (손을 만지면서) 그래서 여기 손도 빠지삔 기야. 강제로 땡기삔께. 인자 그때는 죽도 사도 못하는 기라. 그때부텀 이제 군인들 시중을 들게 되는 기야.

그래 가지고 살다가 또 상해라는 데로 또 옮겨. 응 그러니까 (한동안 흐느낌) 그때부터 군인들 따라 위안부로 끌려댕긴 거야. 말로 다 못해.(흐느낌) 하루 열 명도 좋고, 스무 명도 좋아. 죽은 송장이나 마찬가지지. 그렇게 남자가 달려드는 기라. 그때 군인들이 미군들하고 한창 전쟁이 붙었다 아이가. 요새 치면 반공일날 공일날에 인자 한도 없이 군인들이 오는 기라. 모두 저 종이쪼가리 그런 걸 주던데, 그거 받아 갖고 주인들 줘버려. 주인은 그걸 받아서 밥값을 다 제하지. 우리는 하나도 안 줬어. 거그 주인이 일본사람이야. 주인이 부부인데 말 안 들을 것 같으면은 총 매서 쏜다고 그래. 권총 매갖고. 말을 안 듣고는 안 돼.

아프면 병원에도 데꼬가. 의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와. 여자들 나쁜 병이 옮았나, 안 옮았나 그 검사한다 아이가. 나쁜 병이 옮으면 즈그 군인들한테 옮은 거 아이가. 그리고 와가지고 또 피 빼가지고 가고. 한 달에 두 번 뺄끼라. 그때 인자 (군인들이) 골이 나믄 머리를 때려쌌거든 이 사람들이. 그래 귀가 먹고 눈이 어두벗는 기라.

“하루 열 명 스무 명…기구한 내 팔자 다 숨겼어”
늦게 할배하고 살았지만 아이 못 낳아

스물두 살 돼 해방이 딱 된 기라. 사촌이 도망을 하다가 밤에 잽혀, 고마 총살을…. 즈그가 망해놓은께 우리가 좋아한다고, 죽일라고 한다 아이가. 응. 그래 겁을 내고 벌벌 떨고 그러고 있는데, 여자 하나가 눈을 깜빡거려. 도망가자 그거라. 위안부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으니 도망가자고 그래. 본께 파수 서는 놈이 있어서 살살 기어 나와 도망을 했어.

나는 대국놈 원수한테 걸렸어. 홀애비라 자기하고 안 살면 이른다 카대. 그래 마, 할 수 없이 또 산다 아이가. 중국 놈하고. (울먹임) 근데 그때부터 중국 놈이 마음을 놓고 돈을 쪼매쓱 주는 기라. 그걸로 매 아껴 가지고…. 해방되고 그런께 3년 있다가 조선에 나왔제. 그러다 (고향이 아닌) 부산에 왔지. 어디 갈 수도 없어서 섰으니께 어떤 할매가 와서 남으 애기라도 봐주는 데라도 갈래 물어. 그래 따라가서 애기 봐주면서 3년을 살았지.

그 후에 고향을 찾아오니까 엄마도 세상 뜨고 없고, 아빠도 세상 뜨고 없고, 오빠가 하나 있는데 전라도로 가버리고 없다고 하대. 사촌들만 있는 기라.

사촌들 만나서 그동안 있었던 야그는 못했어. 사촌들이 모두 자식 낳고 떵떵거리고 잘사는데, 내가 위안부 있다가 왔다는 소리를 못하는 기라. 조선에는 옛날부터 내외 구분이 많다 아이가. 남자들이 지내가면 남자들 건너가기 전에는 여자들이 안 건너는 데라.

그러곤 어디 산골짜기 동네, 거기 혼자 사는 할배 하나가 있었어. 그 할배하고 인자 살게 됐는 기라. 그 할배가 죽어버리고 결국에는 혼자 살았지. 아는 없었어. 위안부 가서 그런 데 있다 보니까 아도 못 낳는다 아이가.

내 고생한 건 형제간도 몰라. 어릴 때 자기들끼리 잊어버렸다 생각하지. 지금은 올케 하나 남았는데 어릴 때 도망갔던 걸로 생각해. 이리 숨겨 놓고 있어. 이리 죽을 때 돼가지고 발표하는 게, 이기 뭐이고. (흐느낌) 나는 다른 게 아니라 옛날에 우리 임금이 잘못해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다, 그거 한 가지가 분하지. (가슴을 치면서) 임금이 잘했으면 조선이 안 망했고 조선 사람이 설움을 그래 안 받았을 기라. 그래, 그 말하면 뭐 할기고?



주간동아 2013.03.11 878호 (p40~41)

  •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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