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3

2013.01.28

운동 강도 숫자로 표시 ‘심박수’에 이의 있습니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3-01-28 10: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운동 강도 숫자로 표시 ‘심박수’에 이의 있습니다

    2009년 12월 27일 축구 국가대표팀 체력테스트에서 셔틀런(구간 반복 달리기)을 마친 이동국 선수(오른쪽)가 심박수 측정기를 제거하고 있다.

    젊은 시절 미국 휴스턴에 있는 심장 관련 연구소에 단기연수를 갔을 때 일이다. 지긋한 연륜만큼 학식도 풍부하지만 농담도 즐기는 연구소장이 어느 날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다 이렇게 물었다. “대화 중에 상대방을 손쉽게 기죽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나?”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연구소장이 웃으며 “첫째는 상대방이 알든 모르든 약자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능한 숫자를 많이 인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살다 보니 대화 중 숫자 인용은 정말 그럴듯한 화법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대통령선거(대선)만 해도 후보자나 각 캠프 참모들 간 토론에서 어느 한쪽이 각종 숫자를 능수능란하게 제시하면 다른 한쪽은 본의 아니게 위축된 듯 보였다. 운동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스포츠과학, 스포츠의학이란 명칭 하에 전문가들이 수많은 관련 숫자를 소개하는데, 일반인의 경우 그저 경외감에 가득 차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의 허점

    피트니스 분야에 널리 퍼진 ‘최대 심박수’와 ‘목표 심박수’도 그중 하나다. 일반인은 관련 숫자를 듣는 순간 그 전문가적 분위기에 압도되기 십상이지만, 사실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최대 심박수는 글자 그대로 어떤 사람이 운동할 때 얻을 수 있는 최대 심장박동수를 뜻한다. 보통 사람은 안정 시 분당 60~80회 심장이 박동하는데, 운동하면 필요한 조직에 혈액을 빨리 공급하려고 심장박동이 그만큼 빨라진다. 그렇다고 심박수가 끝없이 올라갈 수는 없고, 또 그렇게 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최대 심박수는 그 직전 상태의 심장박동수를 의미한다.

    최대 심박수를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가 병원에서 정밀 건강진단을 받을 때 경험하는 트레드밀 테스트다. 일반 헬스클럽에서는 이런 검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손쉬운 대안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 유명한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이다. 즉 220이란 숫자에서 자기 나이를 뺀 값이 자신의 최대 심박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공식은 전 세계적으로 유산소운동의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면서 각종 분야에서 폭넓게 수용됐다.



    최대 심박수가 중요한 이유는 목표 심박수를 계산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목표 심박수는 최대 심박수의 65~85%에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40세 남자 최대 심박수는 220에서 나이를 뺀 분당 180회다. 이를 기준으로 한 목표 심박수는 분당 117~153회. 즉 40세 남자가 유산소운동을 통해 제대로 된 심폐기능 개선 효과를 얻으려면 심박수가 분당 117~153회를 유지하는 운동 강도가 적당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은 어떤 근거로 만들어졌으며, 그 결과에 따라 운동 강도를 조정해야 할 정도로 믿을 만할까. 이런 의문에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파고든 최초 인물이 미국 ‘뉴욕타임스’ 과학 전문기자 지나 콜라타였다. 대단한 유산소운동광으로도 알려진 콜라타는 2001년 4월 24일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최대 심박수 이론의 진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의 탄생 배경을 보도했다.

    그에 따르면, 1960년대 말 당시 미 연방 공중위생국 소속 운동생리학자 윌리엄 헤스켈이 자신의 직속 상사이자 심장의학자인 샘 폭스의 지도하에 심장병 환자에게 어느 정도 강도까지 유산소운동을 시키는 것이 좋을지 조사하던 중 그야말로 우연히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심장병 환자들의 운동 테스트에 대한 정확한 기준 설정을 의뢰받은 폭스는 심장 박동수를 운동 강도 지표로 활용하려고 헤스켈에게 관련 조사를 부탁했다. 조사에 나선 헤스켈은 도서관에서 그때까지 발표된 관련 논문을 바탕으로 연령별 최대 심박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나갔다. 그러던 중 1970년 헤스켈은 그때까지 모은 데이터를 정리한 그래프를 폭스에게 보여주면서 “이 전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면, 대충 20세에서는 분당 최대 심박수가 200회, 40세에서는 180회, 그리고 60세에서는 160회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폭스가 “220에서 나이를 뺀 것이 최대 심박수이구먼 그래”라고 맞받아쳤다. 이것이 오늘날 유산소운동 처방의 핵심으로 알려진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의 탄생 비화다.

    정확히 예측하는 계산법은 없어

    그런데 이 계산공식은 훗날 헤스켈 자신도 인정했듯이 과학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먼저 자료 샘플 자체가 무작위로 추출된 게 아니었다. 자료 조사 대상자가 모두 65세 이하 남성인 데다, 무엇보다 트레드밀 테스트를 자청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다. 이는 대선 여론조사를 하면서 그 대상을 65세 이하 남성으로 한정하고, 그것도 스스로 여론조사기관에 전화해온 사람 의견만 접수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데이터 변동 폭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최대 심박수가 150회로 계산됐더라도 실제 측정치는 최소 120회에서 최대 180회까지 왔다 갔다 했다.

    이런 문제에도 헤스켈과 폭스의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은 외부에 알려지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적당한 운동 강도가 숫자로 명쾌하게 제시된 데 매료됐다. 더구나 계산법도 아주 간단했다. 사람들은 “적당히 땀이 날 정도로 운동하면 된다” 같은 조언을 비과학적이고 비전문가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헤스켈의 공식이 대중화된 데는 기업 영향도 컸다. 핀란드에 본사를 둔 폴라 일렉트로(Polar Electro)가 1970년대 말부터 헤스켈의 공식을 이용해 최초로 심장박동 모니터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회사는 1983년 세계 최초로 신체에 완전히 부착할 수 있는 무선 심장박동 모니터를 개발했다.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 3만5000개가 넘는 판매처를 둘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많은 학자가 헤스켈의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의 부정확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대체할 다양한 공식을 내놓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더글러스 실스가 공동 연구자들과 함께 대규모 샘플 조사를 통해 내놓은 ‘208-(0.7×나이)’라는 계산공식이다. 이 공식은 헤스켈 공식보다 정확하기는 하지만, 최대 심박수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고 계산법도 간명하지 못해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어떤 사람의 최대 심박수를 정확히 측정하는 계산법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최대 심박수가 과연 얼마이고, 이를 유산소운동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획기적인 계산 방법이 등장하지 않는 한 헤스켈의 최대 심박수 계산공식은 그 간명성 때문에라도 한동안 그 위상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 모든 분야가 그렇듯, 과학적 진실과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진실 사이엔 어느 정도 괴리가 있게 마련 아닌가.



    댓글 0
    닫기